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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는 '혁신'될 수 있을까 - 국가인권위 혁신위 위원 3개월간의 활동을 마치며 2018.03.08 14:03 4858
작성자 공감지기

 

 

  2004년 사법연수생 시절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 변호사들을 따라 화성외국인보호소를 방문했습니다. 바쁜 변호사들을 대신해 방문보고서를 작성했고 그 방문보고서의 내용은 외국인 구금시설에 관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진정사건에 제출되어 미등록이주민의 단속, 구금의 법적 근거의 미비와 관행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권고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인권위와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2005미등록 외국인 단속 및 외국인 보호시설 실태조사’, 2008국내 난민 등 인권실태조사’, 2013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실태조사 및 법령제도 개선방안 연구등 인권위의 지원으로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각 영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인권위 주최 여러 토론회에 사회자, 발표자, 토론자로 참여하였고, 다수의 진정 사건 관련해서는 당사자를 대리하거나 전문가 자문의견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함께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권적 상상력과 감수성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협소하고 형식적인 법적 접근은 점점 강화되고, 일부 진정사건의 경우 심할 정도로 처리가 지연되고, 다양한 연구용역의 결과는 낭비되고, 시민사회와의 소통은 약화되고. 그러다가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고 인권과 무관한 인권위원장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권력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사람들로부터는 독립된 기이한 기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정치꾼의 스펙 쌓기 수단으로 위원 자리가 전락되기도 하고, 인권위원장 이하 일부 위원들의 인권에 대한 무지, 정치적, 사회적 편견이 인권위 활동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인권위가 어떻게 어렵게 만들어졌는지, 인권위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알기에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인권위의 요청으로 3개월 임기로 20171030일 설치된 인권위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혁신위는 내부위원 3명을 포함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고, 인권위의 과거활동 중 지난 수년간 논란이 되어 왔던 문제들, 인권위의 독립성과 책임성, 조직과 예산, 조사, 인권정책, 인권교육 및 시민사회와의 협력 등에 관해 13건의 권고를 마련했습니다. 국가기관 내 다른 개혁, 혁신 혹은 과거사 위원회들과는 달리 최소한의 실무적 지원을 받으며 비상근인 위원들이 직접 자료를 검토하고 관계자를 면담하고 보고서와 권고문을 작성하는 강행군의 과정이었습니다. 비록 혁신위 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했다는 해명이 있었지만 혁신위 활동과정에 대한 인권위원장과 위원들의 철저한 무관심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었고, 문제의식을 가진 인권위 직원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은 가장 반성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주로 3건의 권고와 관련하여 사전 조사 등을 통해 초안을 작성하고, 다른 권고들을 함께 검토하고 논의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혁신위 활동과정은 인권기준을 잃어버린 인권위 흑역사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첫 번째 권고는 한국 내 인권과 관련한 주요 이슈들을 정리해 유엔에 제출하는 역할을 담당한 인권위가 주요 이슈들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2015유엔자유권위원회 쟁점목록 의견 축소사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유엔자유권위원회 쟁점목록에 관한 인권위 의견의 작성 매뉴얼과 상임위의 심의과정은 쟁점목록의 의미, 국제인권기구의 최근 동향에 대한 무지에 기초하고 있었습니다. 특정 상임위원이 인권기준이 아닌 본인의 정치적, 사회적 편견에 기초하여 자유권 쟁점목록에 관한 상정 안건 중 다수 항목을 삭제토록 개별적으로 지시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다 밝혀졌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광범위한 인권보장은 아니다등의 기존 인권위 입장과도 다른 개인의 편견을 드러내는 발언이 이어졌고, 이러한 발언에 기초한 주장들이 관철되었습니다. 인권위 위원들과 직원들에 대한 국제인권기준과 국제인권기구의 메커니즘의 교육, 훈련, 위원들과 인권위 직원들과의 협력적 관계에 기반한 민주적 조직문화 구축 등의 권고가 제시되었습니다.

 

  인권위는 국제인권기준에 반하여 베이비박스를 옹호하고, 관련 기사를 쓴 기자에게 인권보도상을 수여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고, 예산을 들여 전문가 자문까지 요청한 탈북자 관련법에 대한 의견 표명은 소리 소문 없이 없었던 일로 만들어 버리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인권위의 평가와 성찰, 반성과 청산은 단지 조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 즉 기존 정책권고, 진정결정(그리고 권고나 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 포함)의 내용, ()결정과정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평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권고는 인권정책 기능 실효성 제고 방안이었습니다. 국가의 전반적인 인권정책 혹은 여러 정책의 인권적인 측면을 모니터링하는 기능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것, 인권위원장과 위원들이 인권정책 관련 활동을 입안하는 데 사실상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것, 정책권고 등의 이행 점검, 감시가 전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등 자세히 사정을 들여다보니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전반적인 체계의 구축, 개혁의 방향, 향후 정책권고 등의 내용적 평가에 대한 계획 수립과 이행 등이 권고에 담겼습니다.

 

  마지막으로 국가인권위의 계속적인 혁신을 위한 방안을 준비했습니다. 혁신위는 규정상 인권위의 단기 비상근 자문기구에 불과하고 결국 인권위 혁신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는 온전히 인권위원장 이하 위원들, 그리고 직원들의 몫입니다. 따라서 혁신위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제시된 권고들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인권위에 촉구하고, 그 이행을 실질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라고 권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혁신위가 모든 권고를 제출하고 그 임무 수행을 종료한 지 벌써 한 달이 훨씬 넘었습니다. 인권위는 이제야 혁신위 권고의 최종본을 정리하고 그 활동보고서의 편집, 교정을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인권위가 예전보다는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눈에 띠는 권고를 좀 더 자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인권위 혁신의 징조로 평가될 수는 있을지언정 혁신의 시작은 아니며 그 끝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권위원장 이하 위원들이 혁신위의 권고를 얼마나 진지하고 자세하게 검토하고 수용하고, 그 이행에 필요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질적으로 이행하느냐가 관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기준에 대한 무지 혹은 왜곡, 제대로 된 시스템 없는 진정사건 조사, 정책권고 등 입안과 처리의 전 과정, 인권의 주체인 사람들에게 책임지는 자세나 절차의 미비 등에 대한 철저한 자기 평가와 대안 제시를 통해 인권위 혁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인권위의 본연의 임무 방기는 필연적으로 2차적인,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글 _ 황필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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