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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함께 '사람'이 다가왔고, 단지 그 '곁'에 있고 싶었습니다 1_ 황필규 변호사 2018.04.18 16:04 4758
작성자 공감지기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4년 말, 공감사무실에 첫 발을 내딛으며 꿈을 이뤘습니다. 변호사가 되어 오로지 인권을 위해 일하고 싶었던 꿈, 국제인권법 등 인권 관련 전문지식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었던 꿈을.

 

  이주민들에 대한 단속과 구금의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받아냈습니다. 억울하게 강제퇴거된 몽골 고등학생의 재입국을 도우면서 체류자격이 없더라도 고등학생까지는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법무부 지침을 이끌어냈습니다. 국내 최초로 미얀마와 중국 민주화활동가들의 난민인정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7년간의 노력 끝에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 제정을 이루어냈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장기간 구금되어 부당한 조사를 받은 탈북자들을 위해 국가배상을 청구하고 인신구제청구를 했습니다.

 

  해외진출 한국기업들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며 납치피해자인 필리핀 여성노동자를 만나고, 강제이주당한 미얀마 아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엔인권이사회, 조약기구 심의에 참석해 한국의 인권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영역에서 국제인권규범에 입각한 권고에 기여했습니다. 아시아 내 난민지원단체들의 네트워크 결성을 주도하며 일본 이주아동, 태국 난민들의 구금 문제 해결에 개입하고, 네트워크 의장으로 아시아를 누볐습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몸이 하나밖에 없고 하루가 24시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권의 길은 끝이 없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며 여전히 해결해야할 것들이 많은 인권의 현장에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고 대한민국은 그 이전의 대한민국이 아니었습니다. 제 삶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416 세월호 참사, 그 현장 속으로 몸을 던지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오면서, 소통과 대응이 제대로 되면 그래도 아직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현장에서 소통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면 지금과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그 날 하루 종일 저를 지배했습니다. 퇴근 후 늦은 밤 TV를 계속 보며 마음은 이미 진도에 가 있는데... 인생을 살면서 한번쯤은 마음이 간 곳으로 몸을 맡겨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진도행을 결심했습니다.

 

  417, 개인 자격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대한변협 협회장님께 연락드려 재난 상황에서의 외국 법률가의 공익적 역할을 설명 드리고 대한변협 차원의 법률지원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진도행을 허락받았습니다. 퇴근 후 대통령의 진도 방문 뉴스를 보면서 이제는 아무도 책임질 일을 하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고,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피해가족들의 짤막한 입장문을 접했습니다.

 

  418,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몇몇 공익변호사들에게 연락했습니다.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계속 울고 있었다는 한 후배 변호사와 함께 내려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재난현장에서 피해가족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정리되고 들리도록 하는 역할, 제가 하고자 하는 이러한 역할이 변호사의 역할인지, 제가 평소에 해왔던 인권의 영역인지 잘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419일 새벽 후배 변호사가 모는 차를 타고 진도로 향했습니다.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분위기를 살폈습니다. 분노와 불신의 도가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팽목항을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피해가족들의 상황 설명 요구에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해대는 해경 간부를 목격했습니다. 결국 피해가족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도 이곳에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 현장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물기로 결심했습니다.

 

  420일 피해가족 대표로 보이는 분을 찾아 어떠한 형태로든 피해가족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421일 피해가족 대표분이 회의 결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도움이 절실한 분들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현실이 너무도 슬펐고, 이제는 더 이상 살리기 어려울 수 있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진도에서 이미 사실상 여러 차례 죽은 피해가족들을 또 다시 죽게 할 수는 없다, 앞으로는 피해가족들이 힘을 유지하고 그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며 첫 진도행을 마무리했습니다.

 

 

2014-2015년 세월호 가족과 함께 한 1: 재난은 인권이다

 

  세월호 피해가족들과 함께하게 되기까지는 꼬박 한 달이 걸렸습니다.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대한변협에 제안해서 대한변협 세월호 피해대책 TF와 법률지원 변호사단이 구성했습니다. 5월 중순부터 진도에 1, 안산에 저를 포함한 2명의 변호사가 상주하며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피해가족조직의 운영, 피해가족들간의 관계 유지, 정부, 국회와의 협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배보상 및 성금 관련 원칙, 국제교류·협력 등에 대하여 자문했습니다. 안산, 인천에서 진도까지, 청와대, 국회에서 세종시 정부청사까지, 그리고 광화문, 시청에서 청운동 길거리까지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했습니다.

스스로 자임한 세 가지 임무가 있었습니다. 첫째, 세월호 가족들이 다치지 않도록 한다. 또 다른 물리적, 정신적 상처를 받지 않도록 내외부의 위험을 막기 위해 몸을 날린다. 둘째, 세월호 가족들이 원하는 바가 어떻게 표현되든, 어떻게 분출되든 냉정하게 가족들이 원하는 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바를 정리하여 제기한다. 셋째, 참사의 원인, 정부의 재난대응, 진상규명에 대한 방해, 피해가족과 국민들에 대한 공격의 부당성, 불법성을 지적하고 바로잡는다. 피해가족들이 깨어 있었고 많은 분들이 함께 했기에 그나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참사 1년이 지나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더기로 타협된 특별법이지만 그 법에 의해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인권단체들이 안정적으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게 되었고, 안산에서 함께 상주했던 변호사가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가족분들께 말씀드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수의 인권단체들의 관심 밖에 있는 힘없는 이들, 이주민과 난민, 탈북자의 인권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제가 필요하게 되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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