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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명의 성소수자, 국가인권위에 동성혼 파트너십 권리 보장을 요구하다 _ 백소윤 변호사 2019.11.20 17:11 147
작성자 공감지기


관련 유튜브 : 1056명의 동성커플, 차별을 말하다!

1.

  산골짜기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는 오래된 커플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둘을 알게 된지 10년 정도가 됐는데 사는 곳이 멀어지면서 운이 좋으면 1년에 한번 그 커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면 보통 거실에 앉아 셋이 밤새 이야기를 나눕니다. 제 앞에서 서로의 흉을 보며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며 편들어 달라고 할 때는 영락없는 애증의 ‘부부’사입니다.

  커플의 집안 곳곳 둘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파트너의 지병을 걱정하며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밥이 차려지고, 출근을 위한 새벽 운전을 걱정합니다. 휴가 일정을 맞춰 여행계획을 짜면서 의견차이로 다투기도 하고, 명절에 양가 부모님 댁을 어떻게 방문할 건지 논의합니다. 이사는 벌써 5-6번은 함께 한 것 같고 2년 전인가 부터는 각자의 소득을 합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의료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될 수 없고, 자동차보험도 각자, 병원에 입원할 일이라도 생기면 보호자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걱정, 갑작스런 사고에 대비해 서로 입양을 고려할 정도로 상속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2.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가구넷)는 지난 6월, 동성 동거 커플 차별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설문 참여자들은 주거, 의료, 사회보험 및 연금, 직장, 상속, 재생산권(임신·출산) 및 입양 등의 주제에 관해 답했습니다. 설문지 완성 전 쯤 산골짜기 커플에게 설문테스트를 부탁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이랬습니다.

“워낙 제도적으로 보호 받는 게 없다보니 뭘 차별받는지도 몰랐던 거 같아. 자꾸 차별 받은 거 없냐고 물어봐서... 답하려니 그게 더 슬퍼”

  설문에 답을 하다 보니, “이게 다 차별이었구나를 깨달았다”는 겁니다. 380여명이 설문에 응답했습니다. ‘가족’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 갈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에는 10년, 17년 함께한 아주 오래된 커플부터 1년차 기념일을 챙기는 풋풋한 신혼, 성별정정 전의 트랜스젠더와 그의 파트너도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따뜻함과 끈끈함도 담겨있지만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불편함과 서러움도 가득합니다. 가족이 되기 위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 토대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신혼부부 중심 주거정책에서 동성커플은 주거비용을 1인 명의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고 대출한도 등에 제약이 많아 일반가구에 비해 자가 비율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의료영역에서 가족관계 불인정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선 파트너를 위해 보호자가 될 수 없었고 사회 안전망인 보험제도에서의 배제로 직장가입자의 동거 중인 파트너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아 지역가입자로서 별도의 부담을 지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직장 내 ‘가족’ 위주의 복지제도 하에서 차별은 더 두드러집니다. 경조사·휴가 비용이나 가족수당은 남의 일이며, 연말정산 소득공제에서 불이익도 감수해야해야 합니다.

  파트너와 사별한 경우, 남겨진 파트너의 지위는 십수년 떨어져 지낸 혈연가족보다 후순위로 밀려나 장례를 치르거나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거나 기르고자 하는 이들도 있지만 임신·출산·입양이라는 부모가 될 권리는 상상도 어렵다는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국가가, 제도가 동성 동거 커플의 배제를 전제로 계획되고 움직이는 걸 확인하며, 막연한 불안과 위기들이 짐작이 아니라, “동성혼 배제”라는 실체가 분명한 “차별”에서 비롯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집단진정을 준비했습니다. 전국에서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3.

  11월 13일 1,056명의 진정인들을 대리하여 가구넷은 인권위에 집단 진정 신청을 하였습니다[각주:1]. 집단 진정을 통해 동성혼 및 파트너십 관계를 사회제도에서 포섭해야 할 필요성을 인권위가 직접 살펴보고 차별 인정 및 제도 개선을 권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9.11.13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동성혼 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 집단진정' 기자회견

 

  이미 21개국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었고 올해 5월 아시아 최초로 대만이 동성혼을 보장하는 법안이 통과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쿄 시부야, 세타카야 구를 포함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파트너십등록제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OECD에서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 조차 동성커플을 인정하는 어떠한 제도도 두지 않는 몇 개 남지 않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국내에서도 이미 동성 커플의 혼인 신고 불수리에 대한 소송이 진행된바 있고, 외국에서 혼인 후 재입국하는 내국인 커플사례, 내국인과 외국인배우자의 관계[각주:2]나 주한외교관의 동성파트너에 대한 배우자 인정[각주:3] 등 결단을 요구하는 다각적인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답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4.

  다른 한편 동성혼에 대한 공적 인정은 성소수자 자신의 자긍심은 물론 그들이 속한 사회 구성원의 인식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성소수자의 가족, 성소수자의 가족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을 지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고 다양성 존중과 평등을 위한 용기를 내도록 도울 것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의 변화 시기를 앞당기는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인권위는 동성애 비하·혐오표현을 문제 삼지 않고 판단을 회피[각주:4]하는가 하면, 일부 국회의원들은 인권위법상 차별금지 사유에서의 성별정체성 및 성적 지향 삭제하는 인권위법 개정안을 발의[각주:5]하는 등 차별과 혐오를 적극 조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혐오발언, 혐오 보도나 광고가 대중에 노출될 때, 혐오범죄가 늘어나고 10대 성소수자들의 우울과 자살 상담이 눈에 띄게 높아진다고 합니다. 혐오와 차별이 규제되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입니다.

  공감은 집단진정을 대리하는 성소수자 가족구성권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각주:6]의 연대 단체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향후 인권위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관련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글_ 백소윤 변호사



  1. 관련기사 2019.11.13. 한겨레 “동성커플 이유로 차별·불익”…성소수자 1056명 인권위 집단진정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6865.html [본문으로]
  2. 관련기사 2018. 6. 8. 연합뉴스 한·영국 동성커플 "합법부부인데 한국은 결혼이민 안된데요“ https://www.yna.co.kr/view/AKR20180602051400004 [본문으로]
  3. 관련기사 2019. 10. 21. 한국일보 주한 외교관 ‘동성배우자’ 지위 인정한 청와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201790755799 [본문으로]
  4. 관련기사 2019. 11. 11. 경향신문 인권위, "세월호 죽음의 관광·동성애 담배보다 유해" 김문수 혐오표현 ‘면죄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11111321001#csidxc71f73cfcb092c3b9213d92d774a751 [본문으로]
  5. 관련기사 2019. 11. 19. 한겨레 성소수자 차별 ‘인권위법 개정안’ 역풍…인권위원장 “엄중 우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7543.html#csidxa1a4d9179732e299f2c7c5f55ab869f [본문으로]
  6. 가구넷활동이 더 궁금하다면, http://gagoonet.org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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