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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등의 피해를 입은 내·외국인 여성의  인권옹호를 위한 법률자문·소송지원·법률교육 등을 지원합니다. 또한 여성의 인권보호·복지증진·사회참여를 위한 법제도 개선 활동 및 연구 조사 활동을 진행합니다.
[자원활동가 후기]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기-‘관습에 의한 젠더폭력과 혼인취소를 둘러싼 불평등’ 포럼에 다녀와서 2017.04.04 12:04 1620
작성자 공감지기

  



  2013년 8월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 ㅎ씨는 혼인 취소 소송에서 피고 자리에 섰다. 납치혼으로 출산했던 사실을 혼인 전 한국인 배우자에게 직접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까지 이 소송에 대해 네 번의 선고가 있었고, 다섯 번째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 포럼은 이 사건에서 촉발된 두 개의 문제의식을 다뤘다. 하나는 관습에 의한 젠더폭력을 바라보는 재판부의 협소한 시각이며, 다른 하나는 혼인취소를 둘러싼 성별 간 불평등이다. 이 포럼을 위해 아동과 여성인권 부문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시민단체와 변호사 단체가 힘을 모았다. ㅎ씨의 소송 대리인인 김용혁 변호사와 장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자로서 발제를 맡았으며,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와 김양희 국민건강보험공단 개발협력부 부연구위원, 레티마이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인권팀장이 토론을 진행했다. 전수안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이사장이 전체 발제와 토론을 이끌었다.

 

 

 

 

발표1 : 아동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경험에 대한 소송 경과와 소송 쟁점

 

  포럼은 김용혁 변호사의 발표로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소송의 진행 과정과 내용을 간단하게 전하고, 소송의 쟁점을 알렸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ㅎ씨는 납치혼의 피해자였다. ㅎ씨는 한 남성에게 납치된 뒤 성폭행을 당했다. 따이족의 ‘빳뻐(아내를 강탈하다)’ 문화를 따른 행위였다. 성폭행 후 가해 남성은 ㅎ씨 부모에게 찾아가 혼인에 동의할 것을 요구했다. ‘여성으로서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한 ㅎ씨 부모는 어쩔 수 없이 혼인에 동의했고, ㅎ씨는 가해 남성의 가족과 살게 됐다. 가해 남성은 ㅎ씨에게 생계를 책임질 것을 요구했으며, 돈을 벌어오지 못할 경우 ㅎ씨를 구타했다. 폭력을 견디지 못한 ㅎ씨는 여러 번 부모에게 돌아왔으나 가해 남성은 번번이 ㅎ씨를 데리러 왔다. 이 관계에서 ㅎ씨는 임신을 하고 아이를 출산했다. 출산 뒤 ㅎ씨는 가해 남성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ㅎ씨는 마을을 완전히 떠났다.

 

  ㅎ씨는 도시에 정착해 직장을 다니는 중 현지 결혼중개업자의 소개로 한국인 남성을 알게 됐다. ㅎ씨는 중개업자에게 자신이 출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으나, 중개업자는 괜찮다고 답했다. ㅎ씨는 그 남성과 혼인하기로 결심했다. ㅎ씨는 한국에 입국해 혼인신고를 올리고 배우자의 부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혼인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만에 ㅎ씨는 시부에 의해 강간피해를 입었다. 시부는 징역 7년의 형을 선고 받아 확정되었다. 그러나 형사재판 과정에서 ㅎ씨가 출산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ㅎ씨의 남편은 혼인 취소의 소를 제기했다. ㅎ씨가 출산전력을 적극적으로 은폐하고 결혼했기에, 사기에 의한 결혼이라는 주장이었다. 

  1심과 2심의 쟁점은 ‘당사자의 의사에 반했던 출산 또한 혼전 배우자에게 고지해야만 하는가? 이 사실을 고지하지 않으면 기망행위가 되는가?’였다. 두 재판 모두 ㅎ씨의 배우자인 원고의 손을 들었다. 1심 재판부는 성폭력이라는 ㅎ씨의 출산경위를 고려하지 않은 채, ㅎ씨가 출산전력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사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ㅎ씨의 출산이 성폭력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했으나, 여전히 출산전력은 혼인의사를 결정하는 데 중대한 사유임을 강조하며 이를 알리지 않은 피고의 행위는 기망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ㅎ씨 대리인단은 재판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리인단은 3심에서 ‘허용되지 않는 질문’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정보를 고지하는 행위가 정보 담지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한다면 정보 담지자는 이 정보를 고지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대리인단은 ㅎ씨가 성폭행 피해 경험을 밝힐 경우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현저하게 침해당할 위험이 있었기에, ㅎ씨가 원고에게 직접 고지하지 않았더라도 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3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수용했다. 대법원은 미성년자로서 납치, 강간을 당해 출산한 사정이 있다면 그러한 출산경험을 배우자에게 고지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2심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재판할 것을 주문했다.

 

 

발표2: 젠더 관점에서 분석한 성폭력 경험과 출산전력 고지 의무

 

  두 번째 발표자인 장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된 파기환송심의 쟁점을 다뤘다. 정 연구원이 정리한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ㅎ씨의 출산은 성폭력의 결과인가. 둘째, 혼인 전 여성은 배우자에게 출산전력을 고지할 의무가 있는가. 셋째, 베트남의 납치혼 풍습인 ‘빳뻐’로 인한 출산전력도 고지의무 대상이 되는가. 그리고 ‘빳뻐’로 출산한 자녀에 대해 ㅎ씨가 책임을 의무가 있는가.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첫 번째 쟁점에 대해 ㅎ씨의 출산은 성폭력의 결과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납치로 인해 혼인한 것은 맞으나, 혼인 직후 ㅎ씨가 가해 남성의 집에서 도망가지 않았으며 임신하고 출산한 사실에서 출산은 ㅎ씨가 자유에 따라 선택한 결과라고 판단한 것이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출산전력이 혼인의사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다고 판단하고, 출산전력을 고지의무 대상으로 인정했다. 세 번째 쟁점에 대해서 재판부는 두 의무를 모두 인정했다. 베트남 정부가 ‘빳뻐’의 혼인 효력을 인정하지 않아도 ㅎ씨의 납치혼을 법적 효력과 관련 없이 사실혼으로 인정할 수 있으며, ㅎ씨는 그 사이에서 출산한 아들에 대한 부양 내지 양육의 의무를 진다는 이유였다.

 

  장다혜 연구원은 재판부의 입장에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첫 번째 쟁점에 대해 재판부는 납치혼을 일종의 혼인 관습으로 보고 보호할 대상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빳뻐’와 같은 신부납치행위는 국제인권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이며, 베트남 및 한국 또한 법적으로 금하고 있다. 따라서 장 연구원은 ‘빳뻐’를 전통으로서 법이 보호할 영역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장 연구원에 따르면 재판부는 부부 간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성폭력은 피해자의 저항을 반드시 수반한다는 편견을 전제했다. 장 연구원은 ㅎ씨가 가해 남성과 사실혼 관계를 맺고 있어도 얼마든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당시 만 13세였던 ㅎ씨가 가정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력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성폭력에 저항하기 어려운 약자의 피해를 부정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된다는 우려도 표했다.

 

  출산전력을 고지 의무 대상으로 판단한 부분도 비판을 받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혼인 취소를 위해서는 특정 행위가 혼인 질서를 중대히 위반했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출산한 자녀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혹은 가족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출산전력을 혼인 취소 사유로 인정하고 있다. 장 연구원은 혼인 전 출산한 자녀와 관계가 단절돼 양육의 의무가 없는 경우에도 출산전력을 고지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출산 경력을 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출산전력 고지 의무가 성차별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남성은 출산과 임신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며 출산전력도 확인하기 어려운 반면 여성의 출산전력은 쉽게 확인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다혜 연구원은 청중에게 세 번째 쟁점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도 검토해볼 것을 청했다. 유엔이 1993년 채택한 <여성폭력철폐선언>은 여성폭력을 성별 간 권력관계에 기초한 폭력행위 혹은 그러한 행위를 하겠다는 협박, 강제, 임의적인 자유 박탈로 정의하고 있다. 납치혼은 협박과 납치, 감금, 강간 등 신체적 폭력을 수반하고, 결혼에 있어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할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침해하며, 교육받을 권리와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게다가 주로 15세 미만의 여성이 납치혼의 피해자가 되기에 피해 여성들은 가해 남성으로부터 쉽게 도망가기 어렵다. 이에 기초해 정 연구원은 ‘빳뻐’와 같은 납치혼은 명백한 여성폭력이며, 납치혼 관계에서 발생하는 출산 또한 성폭력 피해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재판부가 납치와 감금으로 성립한 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정하고 출산의 원인이 성폭력이 아니라고 판시한 것은 납치혼이라는 젠더폭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토론1: 아동 성폭력 사건의 특징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아동 성폭력 특징을 설명하고 이를 간과한 재판부를 비판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아동 성폭력의 주요 특징은 그루밍(grooming)이다. 취약한 아동이 사랑을 주는 이에게 성적으로 길들여지는 것을 칭한다. 길들여진 아동은 납치와 협박이 없이도 쉽게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 타인의 도움 없이 아동 스스로 가해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어려우며, 이로 인해 성폭력 피해 아동이 오히려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대표는 아동 성폭력 사건의 경우 맥락과 그루밍 여부를 꼭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동 성폭력 특징을 간과한 채 형식적 동의를 합의로 판단할 경우, 아동 성폭력 피해는 포착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더해 재판부가 ㅎ씨가 납치혼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혼인관계를 인정했다는 의미로 해석한 것은 아동 성폭력 피해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며 부당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토론2: 사회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조혼과 납치혼 근절운동

 

  두 번째 토론을 맡은 김양희 국민건강보험공단 개발협력부 부연구원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을 근절하는 것을 사회발전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여성은 수많은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여성폭력이 능력의 발현을 제한하며 여성이 사회, 경제, 정치 부문에서 자원을 취득하는 것을 막고 여성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한다. 김 연구원은 대표적인 여성폭력으로 조혼과 납치혼을 꼽았다. 이어 여성의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을 제거해야 하며, 조혼과 납치혼 또한 근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토론3: 베트남 북부에 만연한 불법 납치혼

 

  세 번째 토론자 레티마이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인권팀장은 납치혼은 명백한 납치와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베트남 정부 정부가 법률로 납치혼을 규제하고 처벌하고 있으나, 현재 베트남 북부에는 여전히 약탈혼 풍습이 만연하며 피해 사례들이 베트남 언론에 계속 보도되고 있다. 어린 여성들은 어디를 가든 납치혼 피해 대상이 될 위험에 노출돼있다. 납치혼의 과정에서 어린 여성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으며, 모든 것은 가해 남성과 여성의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레티마이투 팀장은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와 같은 납치혼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피해자인 ㅎ씨에게 처벌을 내리고 있다고 규탄했다.

 

 

 

 

  사회를 맡은 전수안 전 대법관이 포럼을 마무리했다. 전 전 대법관은 ㅎ씨는 지속적이고 극단적인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이기에, ㅎ씨가 패소하게 된다면 ㅎ씨보다 정도가 약한 피해자는 법적으로 구제받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곧 있을 판결은 소수자의 법적 구제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점, 그리고 이번 포럼이 재판부의 부족한 상상력을 다각도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기환송심 판결문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현 재판부의 빈약한 상상력을 드러냈다. 베트남 현지에서 납치혼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을 위해, 한국에 이주했거나 이주할 베트남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그리고 성폭력 피해에 쉽게 노출되는 한국 사회의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공감에 기초한 새로운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

 



 

글 _ 은연지 (공감 25기 자원활동가)


'관습에 의한 젠더폭력과 혼인취소를 둘러싼 불평등' 토론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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