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민주주의는 이런 거야! – 유엔인권이사회 참관기
” 법의 지배의 핵심 요소인 책임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정부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2016년 한국방문보고서 중)
민변, 참여연대, 민주노총, 유엔인권정책센터, 국제민주연대 등은 국내 인권단체들을 대표하여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가 참가했다. 올해 초 한국을 공식 방문했던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방문보고서가 정식으로 제출될 예정이었고, 여러 인권 현안에 대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국제인권단체 관계자들과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5일간의 일정 동안 말레이시아 인권단체 SUARAM, 아시아 인권단체 Forum Asia, 국제인권단체 CIVICUS, FIDH, Article 19, ISHR, 국제노동단체 IUF, 국제구호단체 Good Neighbors,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동아시아, 인권옹호자특보, 자의적구금실무그룹, 진실화해특보, 표현의자유특보, 집회결사특보, 유엔기업인권실무그룹 등 담당 실무관, 그리고 법무부 인권국 인권정책과 관계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6월 14일, 국내외단체들이 공동으로 “집회 관리에 대한 실천적 권고의 국가이행 (National Implementation of Practical Recommendations for the Management of Assemblies)” NGO 행사를 개최했다. Forum Asia 관계자의 사회로 진행된 본 행사에서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난 3월 비사법적 살인 특별보고관과 공동으로 제시한 집회 관리에 대한 실천적 권고에 대해 설명했고, SUARAM, 참여연대 관계자가 각 국가의 상황에 대해, 그리고 공권력 남용의 피해자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자녀가 구체적인 피해 사례에 대해 증언했다. 담담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행사였지만 한국의 가슴 아픈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리였다.
6월 15일, 공권력 피해자의 치유를 기원하고 집회의 자유 행사를 이유로 구속된 노동자들의 석방을 촉구하고 평화로운 집회를 보장을 요구하는 거리 캠페인을 유엔 본부 앞에서 전개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고, 설명을 듣고 동의하는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마침 국제노동기구 회의에 참석하러 왔던 노동자대표들이 대거 자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유엔본부 바로 앞이었지만 집회 신고에 아무런 무리가 없었고, 집회 도중에도 경찰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정부기관 앞 집회라고 온갖 호들갑을 떨고 경찰이나 경찰버스로 집회장소를 둘러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떤 나라와는 많이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6월 17일, 드디어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2016년 한국방문보고서가 발표됐다. 집회·결사의 자유에 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여기에서 그 일부만을 소개한다. 특별보고관은 한국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는 억압받고 있으며 이는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뒤로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민들의 필요와 열망에 대한 표현은 사회적 갈등의 척도이면서 이를 해소할 평화로운 수단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의 기회를 억압한다면 폭력적인 저항이라는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결국 대한민국이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합법성”과 “평화로움”에 대한 자의적인 잣대가 오히려 불법과 폭력을 유발하고 조장하여 정당한 권리 행사를 침해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집회는 평화적인 것으로 추정되어야 하며 주최자의 목적과 집회가 열리는 방식에 대해 이러한 원칙이 고려되어야 한다. … 소수의 폭력적인 행동을 이유로 집회를 불법으로 지정하고 이를 해산하는 것은 평화로운 집회 결사의 자유가 개인의 권리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 대대적인 경찰 병력 배치와 더불어 물포(때로는 물에 캡사이신을 첨가하여 최루가스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와 차벽을 사용하는 방식은 이러한 경찰의 조치를 이유 없는 공격으로 해석하는 집회 참가자와 경찰 간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종류의 공격은 더 많은 공격을 야기한다. … 집회 참가자들을 일반교통방해 등의 범죄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평화로운 집회를 할 권리를 사실상 범죄화하는 것이다. 다수의 참가자들이 모이면서 길을 조금도 막지 않을 방법은 없다. 이에 대해 기소를 하지 않을지 아니면 중한 범죄인 일반교통방해로 기소할 것인지의 선택은 거리에서의 집회를 탄압하려는 당국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법의 지배의 주요 요소인 책임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를 정부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집회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불만족의 표현을 억압하는 접근방식의 전형적인 예인데, 이러한 접근은 달리 접근했더라면 인식된 문제점을 다루기 위한 연대와 협력을 장려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슈에 대한 입장의 극한적 대립을 초래한다.”
이어서 백남기 농민 자녀의 구두발언이 있었다.
“사과도 없고, 수사도 없고, 정의도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철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제 언니를 한번 부른 것이 7개월 동안 정부가 한 일의 전부입니다.
당신을 공격하지 않는 사람을 치게 되면
당신은 사과를 해야 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사과, 철저한 수사,
우리가족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정의를 원합니다.”
지난 10년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접했던 국내 집회 중 집회 자체가 처음부터 폭력적인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집회를 막고 표현을 억압했을 때 집회를 지키고 의견을 펼치려는 이들과 공권력이 충돌했던 것이다.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평화적 집회에 대한 억압은 (민주주의의 부정이나 폭력의 유발 등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의식이나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민주주의와 국민에 대한 확신 결여의 표현이다. 민주주의를 이해 못하고 국민을 불신하는 이들이 지배하는 나라, 유엔인권이사회는 그 나라의 현주소를 확인해주는 장이었다.
글_황필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