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 해설서 출판기념회 및 설명회 후기 _ 서민근 (공감 26기 자원활동가)
12월 4일 월요일에 열린 장애인차별금지법 해설서의 출판기념회 및 설명회 장소에 도착했다. 토론회, 발표회 등 여러 가지 행사에 참가해봤지만, 오늘의 행사 장소에서는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행사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발언자의 말을 실시간으로 타이핑해서 스크린에 글로 발언 내용을 보여주는 분이 회장 앞줄에 앉아계셨다. 책상의 간격은 휄체어가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넓었고, 의자가 배치되지 않은 책상들이 눈이 띄었다. 공간이 행사의 주최자들이 지니고 있는 인식의 지평을 보여주는 동시에, 좁은 나의 인식을 꼬집는 것 같았다. 휠체어를 탄 사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 그 밖에 비장애인에게만 맞춰서 설계된 공간에서는 차별을 겪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다양한 참가자들과 함께 이루어진 행사, 그 자체가 장애인차별금지법 해설서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를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에 대한 이질감이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잔인할 만큼 자연스럽게 사회구성원들을 사회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해설서는 총 6개 장, 50개 조로 이루진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을 각 규정별로 입법취지, 조문해설, 관련사례, 더 나아가서는 입법과제까지 세세하게 설명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은 장애인법연구회에서 출간하였다. 장애인법연구회는 장애인 관련법과 제도를 연구하고 장애인 인권 신장을 위한 이슈를 발굴하며, 법조인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장애인 인권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출판기념회 및 설명회는 각 조문의 해설을 맡은 당사자의 발표가 먼저 이루어지고 뒤이어서 발표내용에 대한 토론을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각 순서에서 이루어진 논의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고, 자세한 내용은 해설서를 참고할 것을 추천한다.
첫 순서에서는 총칙, 고용, 교육에 대한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의 발표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차장의 토론이 있었다. 총칙 부분에서는 장차법의 목적, 장애와 장애인, 차별행위 등이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고 고용과 교육 영역에서의 차별금지 조항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장차법 제2조와 제4조 등에 관한 이야기가 이루어졌다. 이문희 차장은 장차법 제2조가 채택하고 있는 장애의 정의가 1970년대에 형성된 장애이해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정의는 장애를 ‘장애인이 갖고 있는 손상이 일상 및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도미노 구조’인 것으로 본다. 토론자는 이러한 정의를 기초로 할 경우 장애인이 경험하는 사회적 불리를 없애려면 사회적 차별이 아니라 결국 손상을 치유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결국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 개인이 가진 손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우려가 있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문희 차장은 해설서에는 장차법의 장애정의가 가진 한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제4조와 관련해서는 본 조항이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 및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차별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서 정당한 사유를 판단할 때 ‘도달 가능한 최선의 노력과 방법을 동원했느냐’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이문희 차장이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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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순서에서는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사법, 행정, 모·부성권에 대한 법무법인 태평양 윤정노 변호사의 발표와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윤삼호 소장의 토론이 있었다. 장애인 차별이 가장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재화, 용역에 관한 영역이라는 발표자의 말을 증명하듯이 장애를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사례, 장애인 이동권 미확보로 인한 학습권 차별 사례, 지하철 역사 장애인 화장실 남녀 미구분 사례 등 아주 많은 사례들과 함께 관련 규정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사법, 행정과 모·부성권, 성 등에 관한 조항에 대한 설명도 잇따랐다. 토론자인 윤삼호 소장은 여러 나라의 장차법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장차법에도 사용되는 모호한 개념들의 문제에 대해 지적하였고, 장애인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조항에 대한 의견 등을 제시하였다. 토론자는 ‘정당한 편의제공’과 같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개념들 때문에 법원이든 국가인권위원회든 장차법에 따라 차별을 판단할 때 매 사안을 개별적,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개념을 구체화하는 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판단의 조건, 절차, 원칙 정도라도 법률에 기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이어서 윤삼호 소장은 장애인 개인정보와 관련해서 제22조 개인정보보호 조항에 ‘장애인의 개인정보는 반드시 본인의 동의하에 수집되어야 하고, 당해 개인정보에 대한 무단접근이나 오, 남용으로부터 안전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음에도 장애인 시설들이 이용 및 거주 장애인의 사진 등 개인정보를 홍보 목적으로 홈페이지 등에 무단 게재하는 사례가 빈번한 현실을 지적하였다.
세 번째 순서에서는 가정·복지시설, 건강권, 장애여성·아동, 차별시정기구·권리구제·벌칙에 관해서 법무법인 한누리 구현주 변호사가 발표하고, 사단법인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가 토론을 하였다. 발표에서는 메르스 사태 당시 장애인에 대한 활동 보조 서비스 중단, 장애인 보호작업장 내에서 발생한 괴롭힘을 인정한 결정례 등을 들어서 건강권, 괴롭힘 금지 규정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고, 장애여성·아동 관련 규정과 권리구제, 손해배상 및 벌칙 등에 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발표 중 권리구제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진정시효의 개정, 진정에 대한 불복이 가능함을 고지하는 규정의 마련, 권고에 대한 통보 규정의 마련 등의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토론자 배복주 대표는 장차법 전반에 대해 장애인의 일상적 차별과 폭력의 문제를 입법화하기 위해 장애계가 한 목소리로 투쟁했다는 점, 입법을 통해 사회환경과 대중인식에 대한 변화 요구를 실체적으로 드러냈다는 점 등의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법안에서 사용하는 장애유형, 차별영역 등의 개념 중에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상징적으로 구성된 것이 많다는 점과 기존의 사회법과 상충되는 조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리고 장차법에 젠더적 관점이 부재하고 섹슈얼리티 관점에서 내용이 보수적이라는 점 또한 지적했다. 개별조항에 대한 의견으로 배복주 대표는 장애여성, 아동에 관한 조항의 내용을 언급하였다. ‘장애여성 및 장애아동’ 조항을 별도의 장으로 구성한 입법취지가 장애인 남성 및 비장애인 여성에 비해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해당 조항들이 이러한 입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였는지 의문스럽다고 하였다. 해당 조항들은 장애여성이 특별히 차별 받는 지점, 예를 들면 젠더 기반의 폭력, 학대, 고립 등에서 필요한 권리 보장, 재생산 권리 보장 등, 에 대한 내용 대신 극히 제한적인 이슈인 노동 및 노동현장에서의 모성보호만을 다루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별도의 조항으로서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지 못한 것이 되어, 상징성만을 갖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첨언으로 토론자는 장애여성과 장애아동이 별도의 장으로 묶인 이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것이 여성과 아동이 취약하다는 공통성이 전제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동을 돌보는 주체가 여성이라는 성차별적인 인식 때문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종합토론과 플로어토론의 시간이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1과 정호균 팀장의 종합토론과 행사 참가자들의 열띤 플로어토론이 이루어졌다. 정호균 팀장은 앞서 총칙에 대한 발표에서도 지적되었던 장차법 제1조의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는 표현의 문제에 대해서 공감한다고 하였다. 정호균 팀장은 해설서에도 나와 있듯이 이러한 표현을 좁게 이해하면 장애인에 대한 직접적 차별만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장애와 장애 이외의 요소가 함께 요인이 된 복합적 차별에는 이 법의 직접적 적용을 배제하는 듯이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고 하였다. 토론자는 장차법의 개정방향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는데, 접근성, 편의제공, 실효성 강화를 위한 벌칙 개정 등의 측면에서의 개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토론자는 접근성 측면에서 기술적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의 접근성 제한, 예를 들어 비장애인에게는 편리한 터치 방식의 도어락이 시각장애인에게는 큰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 그리고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대한 접근 제한을 지적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2014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음식점의 96%, 수퍼마켓의 98%, 이·미용실의 99%가 ‘장애인등의편의법’ 상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없는 바닥 면적 기준 300제곱미터 미만의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이라고 한다. 장차법의 벌칙 조항에 관련해서는 제49조 1항에서 ‘이 법에서 금지한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은 차별을 한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마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처벌이 임의적으로 이루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벌금에 처할 수 있다.’라는 부분이 규정의 실효성 강화를 위해 ‘벌금에 처한다.’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정호균 팀장은 말하였다. 이후 이어진 플로어 토론에서는 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행사 참가자와 토론자 모두 법이 마련되어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는 더딘 현실에 대해서 공감하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아직 많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며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플로어 토론을 마지막으로 행사의 모든 순서가 마무리 되었다. 대개의 행사가 그렇듯 참가자들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대개의 행사와 공적 공간에서 만날 수 없었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얼굴이 담겼다. 이 사진은 오늘의 행사에서 깨달은 나의 무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무감각과 무지가 장애인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이로 인해 초래된 공공장소에서의 장애인의 부재가 무감각과 무지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그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공유되는 일상이 장애인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허무는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 탈시설 운동, 이동권 보장 운동, 장애인차별금지법 해설서 출판과 같은 노력을 오랜 시간 이어오신 분들이 계셔서 나 같은 사람의 무지가 조금씩 깨워지는 것 같다.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하다.
글_서민근(공감 26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