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법제포럼’
5월 4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공감과
한국장애인복지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주관한 법제 포럼이 열렸습니다.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 주제가 크게 화두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듯 많은 분들이 오셔서 태평홀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무카이야치 이쿠요시 교수의 베델의 집에 관한 주제 발표를
시작으로 제1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다수 국가가 정신병동 수를 줄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이런 추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병동 수를 늘리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런 증가세가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두 나라가 형제 국가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무카이야치 교수의 농담을 듣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공통점이 있을 법한데 굳이 이런 점을 닮아야 했나 했지만 이를 통해 문제를 더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카이야치 교수가 보여주는 베델의 집은 마치 동화 속 마을을
연상시켰습니다. 정신 장애인들의 작은 공동체인 베델의 집은 치료가 중심이 아닌 병 그 자체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곳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락우
대표가 공유한 한국에서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가며 겪는 고충은 베델의 집에서 제가 그릴 수 있었던 완전한 공동체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깨부수며 저를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인도해 주었습니다. 베델의 집 같은 완전한 대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 인간으로서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하지만, 이 사회는 아직 정신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이 아닌 환자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서초열린세상의 박재우 소장 역시 김락우 대표의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만 쥐어짜는 한국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꼬집었습니다. 당사자의 결함을 사회에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그의 마지막 발언은 그동안 치료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관념이 얼마나 크나큰 장애물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온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의 김도희 변호사는
그녀가 베델의 집을 다녀와서 느낀 점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녀가 참관했던 당사자 연구에서 만났던 정신장애인의 사례는 많이
흥미로웠습니다. 조현병이 있는 이 정신장애인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환청씨’로 일컬으면서 ‘환청씨’의 존재를 거부하고 그와 싸우는
게 아니라 ‘환청씨’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서 공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당사자 연구 역시 한국에서 조속히 도입하고 참고할 만한 연구법이라고
느꼈다는 김도희 변호사의 발언을 들으며 일본에서는 적어도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습니다.
제1세션 이후 잠시 휴식 시간이 이어졌고, ‘정신장애인의
탈원화’라는 주제로 제2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베델의 집 정신장애인 주치의인 카와무라 토시아키 원장의 발표는 베델의 집에서 그가 어떻게
정신장애인을 대하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상대로 베델의 집에서는 의학적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베델의 집
구성원들이 다른 시설의 정신장애인들보다 건강하게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로 자신이 의사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은 카와무라 원장의
유쾌한 발언 속에서 저는 치료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가장 중요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정신장애인들을 치료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증상이 심해질 경우에만 잠시 처방을 해주는 그의 모습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뉴스에서 보는 정신과 의사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놀라기도 했지만, 그만큼 우리가 정신장애인을 도와주는 방법에 대해 무지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용표 교수가 지적한
한국의 정신장애인 탈원화 현황 및 전망은 우리가 베델의 집을 꿈꾸기에 너무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해마다 정신병상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에서 입원자의 70% 이상이 강제 입원되었다는 것, 그리고 입원자의 약 60%가 의료급여
수급자인 극단적 빈곤층이라는 점은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이 너무 멀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들이 우리가 아직은 미래 탈원화 전망을
논할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뒤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공감의 염혐국 변호사는 보건복지부
정신보건법 개정 및 정신병원 강제입원제도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 대해서 개괄적인 설명을 이어 나간 뒤 탈원화 정책으로 나아가기 위한
법 개정 필요성을 피력했습니다. 정신장애인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염형국 변호사의 발언이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을 참석한 저에게는 더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염형국 변호사에
뒤이어 토론을 이어나간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전명숙 서기관 역시 앞선 토론에 대해 전반적으로 찬성한다며 앞으로 관련 단체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부가 협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으로 노력하겠다는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정부가 어느 정도의 노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관련 법 개정안이 조속히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습니다.
포럼의 주제는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이었지만 포럼이 끝나고
제가 느낀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정신장애인을 바라보는 태도였습니다. 자연스레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인식 변화로 귀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정신장애인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정신병동을 떠올린 건 아닐까요? 정신장애인도 같은
사회 구성원인데 우리는 왜 그동안 그 사이에 보이지 않은 벽을 만든 걸까요? 아마 우리 사회가 조만간 베델의 집을 만들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포럼에서 발언을 해주신 전문가분들의 의견과 포럼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이 보여주신 뜨거운 열기가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변화들이 이미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태평홀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글_강지애(공감 23기 자원활동가)
편집_박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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