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정신장애인 체크리스트 긴급집담회 후기 – 체크리스트라는 그물, 사로잡힌 정신질환자 인권
국내를 떠들썩하게 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은 피의자의 ‘조현병’(정신분열증)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종결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같은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 ‘정신장애인 체크리스트’를 도입했다. 고위험군 정신질환자를 체크리스트를 통해 분류하고 그들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 자구책은 경찰이 ‘정신질환으로 자·타해 위험이 의심되는 사람에 대한 강제입원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의 근거자료가 된다. 하지만 그 내용과 도입 절차에서 정신장애인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15일(수), 국회의원 진선미 의원실과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추진 공동행동(△공익인권법재단 공감 △ 서울 사회복지공익법센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은 ‘정신장애인 체크리스트 긴급집담회’를 개최했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우려되는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국회의원회관에 마련된 토론장은 뜨거웠다. 결국 개방형 토론이 됐다. 공감에서는 염형국 변호사가 집담회 사회를 맡았고 자원활동가 방준휘, 최윤영(25기)이 동행했다. 두 자원 활동가는 이번 집담회의 핵심 내용을 짚고,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기로 했다.
체크리스트의 도입은 합당한가?
방준휘 체크리스트를 하나의 검열 도구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경찰은 체크리스트라는 검열 도구를 통해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검열은 차별과 배제의 도구로 밖에 사용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토론회 내내 지적된 바와 같이 체크리스트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이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이에요. 토론자가 지적했듯이 리스트가 발표된 이후 그 내용을 가상으로 적용해 보았을 때 피실험자들이 전부 중·고 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는 사실은 그 유효성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합니다. 또 이번 체크리스트는 영국의 PolQuest(폴 퀘스트,‘형사사건으로 구류된 사람 중 정신건강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을 구분하기 위한 것’)를 차용하고 있는데 그 역시 구금자를 전제하고 있으므로 수정이 필요해 보여요. 이런 부분들이 체크리스트 제작에 있어 연구가 거칠게 진행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의문을 갖게 했어요. 근본적으로 체크리스트가 정교하게 제작된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그것이 실제로 유효한지, 효과적으로 적용된 사례가 있는지 근본적으로 질문하고 전문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하는 건 기본이고요.
체크리스트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도 특수합니다. 더욱 보호받고 관심 받아야 할 존재가 검열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그림이 어색합니다. 여기에 경찰은 ‘참고자료’ 정도로 후퇴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참고자료가 유효하려면 어떤 쓸모를 기대하고 있을 텐데, “참고자료를 통해 사전에 검열해 예방 수 있었다.” 이상의 무엇을 생각하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최윤영 그리고 사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한 기초자료 및 예방책으로 쓴다고 해도 미흡한 점이 많아요. 체크리스트를 살펴보면 정신질환을 현재의 위험성보다는 과거의 경험으로 판단하게 돼요. 예를 들면, 고위험군 질문사항 중에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사람 목소리가 들린 적이 있으세요?”가 있겠네요. 이렇게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범죄자 낙인을 찍게 되면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를 꺼리게 되죠. 그렇다면 범죄율은 더 늘어나지 않을까요? 체크리스트 도입으로 인해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 당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길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정신장애인뿐 아니라 노숙자나 에이즈 환자 같은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비슷한 인식을 조장할 수도 있어서 더더욱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경찰 측에서는 체크리스트 결과 하나만으로 응급입원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강조하긴 했지만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체크리스트를 쓰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적절치 않은 기준으로 영장도 없이 강제 구인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체크리스트를 보완한다고 해도 비차별적인 도구로 쓰일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어요.
경찰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방준휘 하지만 경찰의 입장도 이해가 돼요. 경찰의 기본적인 역할은 범죄를 미리 예방하고 사회 치안을 유지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를 위해 적합한 수단이 개발되어야 하고 또 도입에 사회적인 합의나 전문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거죠. 특히 이번 논란처럼 잠재적 인권 침해의 위험이 있다면 더더욱 철저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체크리스트는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비껴가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 질환의 경우 일반적인 외과 질환보다 진단이 더 까다롭고 오랜 관찰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어요. 이런 측면에서 체크리스트로 짧은 시간에 진단을 내리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저 목적을 위해 수단이 동원되는 양상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저는 정신질환자 집단을 특정하기보다 더욱 촘촘한 치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쓰는 편이 어떨까 생각해보았어요. 물론 이 과정이 체크리스트를 도입하는 것보다 훨씬 고되고 어렵겠지만 올바른 길을 선택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도 하고요.
최윤영 저도 경찰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분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토론에서도 강조되었듯 경찰은 의학지식이 없는데 자체적으로 체크리스트를 임의로 제작하고 실행할 근거가 부족해요. 저도 박재우 위원님(서초열린세상 관장, 한국사회복귀시설협회 정책위원)이 말씀하셨듯이 자타의 위험을 판단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현행법상 경찰의 직무를 특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지만 미래의 위험성을 의학 전문지식이 없는 경찰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인가 싶어요. 특히 체크리스트와 같이 단순한 질문 몇 개로 판단하려고 한다면요. 그래서 안전과 인권을 모두 지키려면 체크리스트가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전까진 더 신속하게 위험에 처한 시민을 안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더 효과적인 시스템 만드는 것에 힘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방준휘 경찰이 기대하는 것처럼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체크리스트를 통해 관리 되었다면 끔찍한 비극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참극을 예방하기 위한 거라면 저는 그들에게 감시가 아닌 관심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체크리스트는 분명 관심보다는 감시 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관심과 감시는 둘 다 사회의 눈을 특정인 혹은 집단에 집중시키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 온기는 다른 것 같아요. 관심은 포용이라면 감시는 검열이고 배제를 목적으로 하니까요. 집담회에서 실제로 정신 질환을 겪고 계신 분들이 토로한 것처럼 사회가 얼마나 그들에게 냉정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사회적 약자 안에서도 또 다른 배제의 대상이 되고,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가면을 써야만 하는, 숨어 들어가야만 하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더군다나 개인의 문제를 특정 집단으로 확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분열과 갈등은 책임을 물을 대상을 만들기 때문에 당장 갈등을 봉합하는데 더 쉬운 길이죠. 하지만 그 방법은 새로운 분열을 낳기 때문에 미봉책밖에 될 수 없습니다. 포용하고 함께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최윤영 정신치료가 장려되고 정신질환자들 같은 약자를 수용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정신질환은 사실 아무나 생길 수 있고 그걸 가지고 있다고 해서 격리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해야 한다는 거죠. 정신장애라는 주제가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기도 하고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줄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치료를 받고 있거나 과거 정신질환자였던 사람들이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들도 보통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요? 물론,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과 복지프로그램 등 제도적인 부분도 같이 되었을 때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미국에서 HIV/AIDS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는 데에는 교육이 큰 몫을 하고 있어요. 학교 수업 시간에 HIV 보균자를 초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든지 HIV/AIDS에 관한 편견들에 대해 쉬쉬하지 않고 충분히 의논하고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요. 또 관련 단체들에서도 공개적인 발언들과 광고를 통해 HIV나 AIDS 환자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고 그 전보다 예방과 치료가 잘 되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면 감금과 격리보단 교육을 통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했으면 좋겠어요.
글_방준휘, 최윤영 (공감 25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