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포커스] 모든 노동자에게 여름휴가를
근로기준법은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이다. 최저기준이라는 것은 첫째, 최저기준에 못 미치는 노동조건은 효력이 없고 최저기준으로나마 노동조건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 둘째, 최저기준조차 지키지 못하면 그 자체로 범죄행위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근거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노동권을 명시하고 있다. 힘의 불균형을 속성으로 하는 노사관계에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함으로써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함이다. 특히 노조를 통해 집단적으로 대항할 수 없는 노동자에게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정작 누구보다도 이러한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이 절실한 영세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1. 당사자들의 현실
4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 중 임금, 근무시간 및 휴일, 해고에 관한 주요 규정, 즉 노동조건에 관한 주요 규정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부 규정들이 적용되기는 한다.) 연차휴가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여름휴가를 떠날 수도 없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것이 이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휴식이다.
4인 이하 사업장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나 상황을 이야기할 경우 사용자는 가차 없이 해고한다는 점, 둘째, 따라서 노동자들은 자기의 권리를 말하기를 꺼려한다는 점, 셋째, 그 결과 주휴수당처럼 4인 이하 사업장에 일부 적용되는 제도들도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임금도 최저임금에 간신히 맞춰져 있는 상황이다. 4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들도 현재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적용 비율은 35.1%(전규모 평균 71%), 근로계약서도 작성해야 하지만 적용 비율은 33.8%(전규모 평균 61.4%)에 불과하다. 남성보다 여성이 많고, 청소년 및 노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요컨대,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은 지위와 노동 여건이 취약한 사람들, 특히 사용자 대 노동자의 비중이 낮아서 자기 권리를 말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오히려 적용이 안 되는 현실이다. 사용자에게는 법망을 피해가기 위한 탈출구로서, 노동자에게는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게 하는 족쇄로서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4인 이하 사업장은 영세하다는 허구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에 관해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고 판단하면서 ‘소규모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언급했다. 그러나 4인 이하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경영 상태는 제각각이다. 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여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2017년 3월 간호조무사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있었다.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는 16만6000명인데, 이중 64.7%가 의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의원이 4인 이하 사업장이다 보니 시간외수당, 연차휴가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것이 이날 토론회의 주 발제 내용이었다. 고소득 자영업자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직업은 아직도 의사이건만, 이들 역시도 근로기준법을 따질 때에는 영세사업자로 취급되는 것이다.
또한 통계청의 ‘자영업 현황분석’에 의하면, 한 명이라도 고용하는 사업장의 연간 매출액은 1억5천만 원 내지 3억 원이고, 4명을 고용하는 사업장의 68.1%는 연간 3억 원 이상이다. 이는 4인 이하 사업장이라고 하더라도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의 경영 상황은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4인 고용 사업장과 5인 고용 사업장의 매출 규모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만큼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정하는 4인 이하, 5인 이상의 기준은 작위적이고 현실에 맞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들이 앓는 소리를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높은 임대료와 원청이나 가맹본사가 가져가는 막대한 수수료, 카드 수수료 등이다.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몬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4인 이하 사업체는 도소매업(26.0%), 숙박․음식업(22.0%), 공공·수리·개인서비스업(11.0%), 제조업(10.4%), 사업지원·출판영상·방송·오락·문화(9.1%) 순으로 많다. 이들 업종에만 80% 가까이가 몰려 있다. 그런데 도소매업, 숙박․음식업, 공공·수리·개인서비스업은 가맹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위계가 형성되어 있고, 제조업, 사업지원·출판영상·방송·오락·문화은 위탁과 도급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의 위계가 형성되어 있다. 4인 이하 사업주들의 상부에는 재벌, 공공기관, 대기업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은 4인 이하 사업주들을 착취하며 이익을 취하고 있다. 결국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았을 때 당장의 영향은 영세사업주들에게 미치겠지만, 그 본질은 재벌의 이익 극대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물주보다 높이 있다는 건물주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의 효과를 과연 누가 누리고 있는지 따져 볼 일이다.
3. 영세사업주와 노동자들을 오히려 힘들게 할 것이라는 주장의 허구
4인 이하 사업장은 영세하다는 논리는 따라서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할 경우 사업주가 인력을 감축하고 도산해서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런데 한국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고용을 줄이겠다는 비중은 4%에 불과하고 고용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비중이 94%에 이르렀다. 사업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원이기 때문에 고용을 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4인 이하 사업체들은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도소매업, 숙박․음식업, 공공·수리·개인서비스업)이기 때문에, 전체 노동자의 18.7%를 차지하면서 소득 하위계층인 4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들의 삶의 수준이 나아지면 경기 활성화로 인한 매출 확대로 일자리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역이론도 가능하다. 노동 빈곤층의 축소, 사회 양극화의 축소를 통해 사회의 불안정성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국가 경제에도 이롭다.
4. 근로감독이 어렵기 때문에 적용 배제한다는 논리에 대한 반박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의 근거로 근로감독의 어려움도 자주 지적되었다. 근로감독의 한계가 헌법상 기본권의 제한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은 차지하고서라도, 실제로는 4인 이하 사업장에까지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할 때 근로감독은 보다 편이하고 강력하게 집행될 수 있다. 최저임금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최저임금이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됨으로써 최저임금 적용 사업장인지 여부를 두고 복잡하게 판단해야 하는 불편은 사라졌다. 또한 그만큼 최저임금의 의미 및 최저임금 미지급에 대한 단속의 효과는 커졌다. 지금은 어정쩡한 상태로 적용되는 조항과 그렇지 않은 조항이 나뉘어 있다 보니, 근로감독을 하면서도 하나하나 따져야 하는 불편이 크다. 특히 4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되는 조항과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 서로 얽혀 있다 보니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면 근로기준법의 의미와 효과도 새삼 강조될 것이다.
5.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로운 제도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면 그간 적용에 있어서 애매모호했던 부분들이 해소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의미도 강조되고 근로감독도 수월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5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도 이득이 된다. 법의 적용 여부를 두고 시비할 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본은 그동안 끊임없이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으려 시도했고,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는 노동자들을 줄이려 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는 노동자들이 줄어들게 되면 근로기준법의 적용은 원칙에서 예외로 변질되고,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특권이나 시혜인 것처럼 오해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근로기준법에 따른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귀족 노동자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게 뻔하다.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한 것이 근로기준법이기 때문에 모든 노동자들이 빠짐없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때에 노동권의 의미도 되살아난다.
6. 외국법과의 비교
일본 노동기준법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며, 우리나라처럼 사업장의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하여 적용상의 예외를 두고 있지 않다. 독일은 근로시간․휴가․해고 제한에 관한 각각의 개별 법률(근로시간법, 영업법, 폐점시간법, 연소자보호법, 임금계속지급법, 연방휴가법, 해고제한법 등)을 두고 있는데, 해고제한법이 1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적용을 제외시키고 있는 것을 빼고는 특별히 사업장의 노동자수를 적용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단일 노동법전을 가지고 있는데,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 미국의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의 적용범위는 개인과 기업에 대한 것으로 나뉘는데, 개인 적용의 경우 공무원을 제외한 노동자가 이에 해당하며, 기업 적용은 사업자가 2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을 것과 연간 매상․거래총액이 50만 달러 이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듯 외국의 경우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법적용을 배제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7. 시대에 맞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된 이래 적용 범위에 변동이 있어 왔다. 15인 초과 사업장에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던 것이 몇 번의 변동을 거쳐 1998년에 지금의 제도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동은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반영한다. 특히 87년에는 민중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파급 효과로서 적용 범위와 적용 규정의 대폭 확대가 있었다. 노동기본권의 적용 범위는 고정된 원칙이 아니라 시대의 산물로서 시대적 배경과 투쟁 속에서 쟁취되어 온 것이다.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정 속에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노동기본권의 적용 확대가 이루어진 적이 있다는 점도 새겨야 한다. 적용범위의 변화가 멈춘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노동기본권 전면 확대를 주장할 시기다.
글_윤지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