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포커스] 직장 내 성희롱 2차 피해에 대한 사업주의 불법행위 책임 – 대법원 20171222 선고 2016다202947 판결의 주요 내용
직장 내 성희롱은 어떤 직장에서든, 누구에 의해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이후 피해자가 어떤 상황에 처하느냐는 직장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한 노동자가 2차 피해 입을 걱정 없이 정당하게 자기 피해를 구제받고 사건 발생 전과 다름없이 노동할 수 있는 일터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말하려면 노동자가 사용자의 불리한 조치를 각오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리한 조치는 해고, 징계, 비난, 집단 따돌림, 악의적 소문 유포, 폭행 또는 폭언, 전보, 전근,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 업무상 부당 대우를 망라합니다.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밝힌 후 직장에서 겪는 불리한 조치를 포함한 2차 피해에 대하여 회사가 불법행위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에 관한 명확한 판단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불리한 조치’를 정한「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제14조 제2항이 노동법 영역에 들어온 지 16년 만에 선고된 최초의 대법원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불리한 조치’ 규정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판시했을 뿐만 아니라,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를 도운 노동자에게 행한 불리한 조치가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불법행위가 되는 경우, 직장 내 성희롱 조사를 한 직원이 피해자에 관한 소문을 유포한 행위가 사업주의 불법행위가 되는 경우에 대해서도 별도로 판단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이 판결이 한국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스스로 권리 구제를 위해서 나선 이후 입게 되는 불이익, 그리고 피해근로자를 일차적으로 보호해야 할 사용자가 그 보호의무를 저버리고 새로운 가해자가 되는 현실의 구체적인 모습과 그 효과를 정확히 포착한 다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리를 밝혔다는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이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6다202947 판결)의 주요 내용을 판결 원문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1.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2항의 의미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한 경우 사업주는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여 피해를 구제할 의무를 부담하는데도 오히려 불리한 조치나 대우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피해자가 그 피해를 감내하고 문제를 덮어버리도록 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 이상의 또 다른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다. 위 규정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신속하고 적정하게 구제할 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피해자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때 2차적 피해를 염려하지 않고 사업주가 가해자를 징계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하리라고 신뢰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제14조 2항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시 조치’라는 제목으로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률규정은 「남녀고용평등법(2001. 8. 14. 개정 법률 제6508호)」에 ‘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및 예방’의 장이 신설되면서 제14조 제2항에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주장이 제기되었을 때에는 그 주장을 제기한 근로자가 근무여건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최초 규정된 이래,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 주장을 제기한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해고 그 밖의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개정된 후{「남녀고용평등법(2005. 12. 30. 개정 법률 제7822호)」제14조 제3항}, 2007. 12. 21. 개정된 제14조 제2항에 현재의 문언으로 규정되기에 이르기까지, 문언은 조금씩 변경되었지만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은 제14조 제2항의 입법취지에 관하여, 직장 내 성희롱 피해의 신속․적정한 구제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의 예방,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사업주가 불이익을 줄 경우, 피해근로자 뿐만 아니라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다른 근로자에게도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제14조 제2항의 준수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하여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2. 사업주의 조치가 피해근로자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로서 위법한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
“불리한 조치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 제기 등과 근접한 시기에 있었는지, 불리한 조치를 한 경위와 과정, 불리한 조치를 하면서 사업주가 내세운 사유가 피해근로자등의 문제 제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인지, 피해근로자등의 행위로 인한 타인의 권리나 이익 침해 정도와 불리한 조치로 피해근로자등이 입은 불이익 정도, 불리한 조치가 종전 관행이나 동종 사안과 비교하여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 취급인지 여부, 불리한 조치에 대하여 피해근로자등이 구제신청 등을 한 경우에는 그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
사업주의 불법행위책임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사업주는 흔히 불리한 조치가 피해자의 직장 내 성희롱 문제 제기와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이 판결은 직장 내 성희롱과 그 후의 불리한 조치의 발생 양상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다각도의 판단기준을 제시합니다.
■ 불리한 조치의 시점(직장 내 성희롱 문제제기와의 근접성)
■ 불리한 조치의 경위와 과정
■ 사업주가 내세운 불리한 조치 사유의 존재 시점(직장 내 성희롱 문제 제기와의 선후)
■ 타인의 권익 침해와 피해근로자의 불이익
■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 취급인지 여부
■ 피해근로자등이 구제신청 등을 한 경우에는 그 경과 등 종합 판단
3. 사업주가 피해근로자등을 가까이에서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한 경우
“우리 사회에서 직장 내 성희롱의 특수성에 비추어 피해근로자 등과 그에게 도움을 준 동료 근로자는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갖는 밀접한 관계에 있을 수 있다. 피해근로자등은 동료 근로자가 자기 때문에 불리한 조치를 당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 밖의 다른 근로자들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어 피해근로자등에게 도움을 주거나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심화 되면 피해근로자등은 직장 동료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직장 내에서 사실상 고립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피해근로자등은 동료 근로자에 대한 사업주의 불리한 조치를 보고 구제절차 이용을 포기하거나 단념하라는 압박으로 느껴 성희롱 피해에 대해 이의하거나 구제절차를 밟는 것을 주저할 수 있다. 사업주가 동료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를 함으로써 피해근로자등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이러한 사정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그 조치의 내용이 부당하고 그로 말미암아 피해근로자등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혔다면, 피해근로자등은 불리한 조치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더라도 사업주에게 민법 제750조에 따라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시 남녀고용평등법령에 따라 신속하고 적절한 근로환경 개선책을 실시하고, 피해근로자등이 후속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적정한 근로여건을 조성하여 근로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사업주가 피해근로자등을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부당한 징계처분 등을 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업주가 피해근로자등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했을 때 피해당사자에게 가장 가혹한 것이 직장 내 따돌림, 조직적 고립입니다.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와 친하게 지냈던 동료나 선후배에게 ‘앞으로는 예전처럼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직접 말하기도 하고, 피해당사자에게만 전체 일정을 공지하지 않거나, 전체 메일에서 제외하거나, 동료들이 점심 식사를 같이 하지 않도록 지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피해당사자가 직장에서 맺은 인간관계를 모두 끊어버리는 사례는 사용자의 공통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쉽게 발견됩니다. 피해당사자를 돕는 동료나 선후배 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자를 표적으로 징계하거나 불이익한 처우를 하여 결국 피해당사자 주위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도록 만드는 경우도 이러한 조직 내 고립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판결은 그러한 상황이 피해당사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사업주가 피해당사자를 도운 동료를 부당하게 징계한 것이 왜 사용자의 보호의무 위반인지, 왜 피해자에게 불법행위가 되는지를 상세히 판시하고 있습니다. 이 판결의 백미와도 같은 부분입니다.
4. 직장 내 성희롱 조사참여자의 의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꺼리는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이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입니다(국가인권위원회의 2016년 성희롱 2차 피해 실태 연구결과). 모든 여성폭력피해자가 겪는 ‘피해자책임론’은 직장 내 성희롱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판결의 사안에서는 피해자가 문제라는 식의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직장 내 성희롱을 조사한 인사팀 직원이었습니다. 법원은 비밀을 지키고 공정하게 사건 조사를 하여야 할 조사참여자의 의무와 의무 위반을 방치한 사용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개인의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 위 헌법 규정, 직장 내 성희롱의 예방과 피해근로자등을 보호하고자 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의 입법취지와 직장 내 성희롱의 특성 등에 비추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 조사참여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밀을 엄격하게 지키고 공정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조사참여자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언동을 공공연하게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보아야 한다. 위와 같은 언동으로 말미암아 피해근로자등에게 추가적인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결국 피해근로자등으로 하여금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하는 것조차 단념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조사참여자에게 위와 같은 의무를 준수하도록 하여야 한다.” |
5. 입증책임
이 판결은 남녀고용평등법 제30조이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분쟁에 적용될 때의 입증책임 배분의 기준에 대해서도 최초로 대법원의 판단을 밝혔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분쟁에서, 사업주는 불리한 조치가 성희롱과 관련성이 없음 또는 불리한 조치의 정당한 사유 존재에 대하여 증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관련 분쟁의 해결에서 사업주가 증명책임을 부담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제30조), 이는 직장 내 성희롱에 관한 분쟁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피해근로자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가 성희롱과 관련성이 없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 사업주가 증명을 하여야 한다.” |
6.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 법률
대법원 판결을 소개에 덧붙여 개정 법률의 내용도 함께 읽어 봅니다. 오랜 입법운동 끝에 2017. 11. 18. 개정되어 2018. 5. 29.부터 시행되는「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 법률 제14조 제6항은 직장 내 성희롱 이후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행하는 불리한 처우를 유형별로 상세히 예시하고 있습니다. 개정된 법률이 사용자가 자신의 의무를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고 준수하여 직장 내 성희롱 2차 피해를 구제하고 예방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14조 ⑥ 사업주는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등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파면, 해임, 해고, 그 밖에 신분상실에 해당하는 불이익 조치 2. 징계, 정직, 감봉, 강등, 승진 제한 등 부당한 인사조치 3.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그 밖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조치 4. 성과평가 또는 동료평가 등에서 차별이나 그에 따른 임금 또는 상여금 등의 차별 지급 5. 직업능력 개발 및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기회의 제한 6.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등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를 하거나 그 행위의 발생을 방치하는 행위 7. 그 밖에 신고를 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우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제기 후 회사의 불리한 처우를 받고 있는 당사자를 법률지원하고 있으며,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_차혜령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