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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법 교육·중개

공익변호사 자립지원사업 후기 – 초보 공변, 2년간의 좌충우돌 성장기_송지은 변호사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상근 변호사로 일하는 송지은입니다. 공익변호사 자립지원사업에 선정되고 띵동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 하면서 조금은 낯설고 설레었던 기억이 납니다. 청소년 인권단체에도, 성소수자 인권단체에도 상근 변호사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기에, 처음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상근하는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일을 하자고 다짐하며 의욕만 컸던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하고 한 달 동안, 그동안 띵동에서 이루어진 모든 상담 기록을 읽고, 법률이 문제되거나 범죄, 인권침해 상황과 관련된 상담사례를 모두 분류, 정리했습니다. 2017년까지 띵동의 위기지원 중 법률지원으로 체크된 것은 1건에 불과했지만, 실제 600건이 넘는 상담기록의 면면에는 가정 내 폭력과 아동학대, 학교폭력, 성폭력 등의 범죄피해, 상담기관이나 국가기관에서의 차별과 혐오 등의 인권침해 문제 등 법률조력으로 구제가 가능한 사건들도 적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담사례에서 파악할 수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상황을 상상하며, 이들이 인권침해에 대처하거나 침해구제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인권을 침해받는 상황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띵동 변호사로서의 첫 활동은 띵동에 오면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그 이들의 편에 서는 변호사가 있다’, ‘청소년이라도, 성소수자라도 마음 놓고 법률상담을 받고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알리는 작업이었습니다. 홍보의 첫 시도로 띵동 법률사무소라는 제목을 내걸고 법률 상담의 날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신청자 0!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인데도, 당시에는 의아하고 고민스럽기도 했습니다. 변호사가 있다고 홍보하지 않아도 이미 수 십, 수 백 건의 상담내용은 인권침해나 범죄피해를 호소하고 있는데, 정작 법률상담을 받고 싶은 사람이 없다니. 나는 과연 띵동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필요한 존재인걸까? 활동 6개월 만에 자괴감이 먼저 들고 만 신입활동가, 신입공변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띵동에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날을 거듭할수록 더 많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띵동의 상담지원팀원으로, 다른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모든 고민상담에 함께하고 법률지원 외의 위기지원에도 동행했습니다. 띵동의 대표 프로그램인 띵동식당을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단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또래 성소수자와 교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자긍심과 행복을 느끼는지를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매 달 첫 번째 주 토요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루어지는 아웃리치 프로그램인 띵동포차에 찾아오는 청소년들의 수가 계속 늘더니, 한 여름에는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초유의 사태도 맞이했습니다. 태어났을 때 주어진 이름 외에 내가 불리고 싶은 멋진 이름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외의 엄청나게 다양한 단어들로 그들의 정체성을 말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새로운 개념을 탐색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내가 느끼는 나를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시도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며, 저는 어쩐지 법률상담의 날에 신청자가 0명이었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이렇게나 사회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싶어 하지만, 그에 대한 풍부하고 제대로 된 정보는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물으러 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띵동의 상근변호사로 맞는 두 번째 해에는 사단법인 한결의 공익활동 기금을 따 내어 청소년 성소수자 이의 있습니다! <띵동 법률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인권 침해의 경험을 나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응 가능한 법/제도적 방법에 대해 정보까지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기존 간판 프로그램의 후광에 힙입어, 2018. 3.부터 11.까지 총 8회의 띵동 법률식당에 79명의 청소년 성소수자가 참여했습니다. 프로그램에서 다룬 주제는 아우팅 협박에 대처하기, 참정권과 청소년 인권, 트랜스젠더 관련 법제도, 성폭력, 노동권 침해, 학생인권침해 등이었습니다. 특히 매 년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혐오세력의 혐오폭력이나 아우팅 위험, 축제 전후에 가족에게서 겪는 폭력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기 전 자기방어프로그램을 기획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예상되는 위험상황을 상상해 보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알고 있으면 좋은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에는 호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법률지원도 점차 늘어갔습니다. 현재의 법적 구제 방법들이 청소년, 성소수자 친화적이지 않고 오히려 차별적임을 몇 차례의 법률지원 과정에서 깨닫고, 이후에는 상담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침해 상황을 파악하게 되면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 띵동의 이름으로 학교나 상담기관, 쉼터에 항의하고 개선을 요청하는 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성소수자 정체성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학대 받은 청소년과는 함께 경찰신고를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띵동 활동가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이 더 이상 머쓱하지 않게 되었을 때 쯤, 띵동에 자주 방문하는, 저와도 친한 청소년이 제 정체성을 알아버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지은, 변호사였어요?”

 

  매일 자신의 고민을 나누고, 뭔가 하나 빠진 맛이 나는 볶음밥을 만들어주던 띵동 활동가가 변호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

 

  그 후로 그 이와 저의 관계에 달라진 점은 하나도 없지만, 최근 서울 퀴어문화축제 집회신고를 방해하려는 혐오세력에 맞서 경찰서 줄서기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야간에 줄서기에 참여하겠다는 그 이에게 몸조심을 당부했더니 만약에 제가 혐오세력이랑 싸우면, 지은샘이 와주면 되잖아요! 변호사잖아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간 잊고 있었던 띵동에 가면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변호사가 있다!’ 라는 최초의 홍보문구가 떠올랐습니다. , 성공 한 걸까요?

 

  공익변호사 자립지원사업이 없었다면, 2년간의 든든한 비빌 언덕이 없었다면 저는 아마 신청자가 0명이었던 활동 6개월 차에 이미 공변을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지요, 애초에 공익변호사로 띵동과 함께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겁니다. 자립지원사업은 저와 같은 초보 공익변호사에게, 공익변호사의 존재의미와 역할에 대해 몸으로 부딪히고 깨칠 수 있는 시간을 가능하게 해 준, 너무나 감사한 기회였습니다.

 

  공익변호사 자립지원사업의 마지막 한 달은, 띵동에 변호사가 계속 함께 해, ‘원스톱지원이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모금홍보로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쌓여있는 일들을 해나가면서도 모금홍보 영상을 함께 구상하고 촬영하고 멋진 영상을 만들어 주는 띵동의 모든 활동가들에게 무엇보다도 미안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영상이 홍보되자, 띵동에 상근변호사가 계속 있기를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띵동으로 도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미안한 마음보다는 한 명의 든든한 동료 활동가로, 공익변호사로, 띵동과 함께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힘을 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맨날 걱정만 끼치는 저를 넓은 마음으로 만나주시고, 항상 지지와 따듯한 위로의 말을 건네 주셨던 존경하는 선배 공변님(제 마음 아시죠?) 모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렇게 좌충우돌 하겠지만 잊지 않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더 성장해 나가려 합니다. 홍보 영상의 마지막 문구를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적어봅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자립과 함께, 저도 띵동의 변호사로 잘 자립할 수 있겠죠?”

글_송지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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