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중개업자의 횡포, 강제추행으로까지
아니,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인가! 약 1년 전쯤 국제결혼 중개업자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려는 필리핀 여성들을 상대로 위아래 속옷까지 탈의시키고 임신 출산 여부를 육안으로 검사했다는 기사를 봤을 때의 심정이었다. 당시 기사는 한 필리핀 여성이 경찰에 고소한 후 유사한 피해를 입은 다른 필리핀 여성들의 사례가 드러나 가해자가 구속되었다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공감으로 공익소송 신청이 들어왔다. 위 신문 기사 사건을 고소한 피해자의 남편이었다. 기사가 나간 후, 가해자는 피해자들을 회유해 합의를 하고 고소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해 결국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했다. 자신의 아내와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사건만이 재판 진행 중이라고 했다. 미성년 피해자도 다른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가해자와 합의를 하고 고소를 취하했지만 피해자가 미성년자여서 그나마 사건이 유지되고 있었다.
중개업자의 처벌을 강력히 원하는 피해자 부부만이 홀로 남아 싸우고 있었다. 본인들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느낀 부부는 외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오랫동안 국제결혼 중개의 구조적 문제와 국제결혼 중개업자에 의한 피해 문제에 주목해왔던 공감은 바로 사건을 맡았다.
가해자는 대전지역에 근거를 두고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의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중개업자였다. 물론 한국인이다. 피해자인 필리핀 여성은 2011년 가해자의 소개로 필리핀 현지에서 현재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피해 여성은 관행대로 비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가해자가 운영하는 필리핀 숙소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가해자에 의해 3차례의 강제추행 피해를 입었다.
첫 번째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안마를 하게 하던 중 피해 여성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두 번째는 피해 여성이 가해자에게 남편이 맡겨 놓고 간 용돈을 달라고 하니 자신에게 뽀뽀를 하면 주겠다고 하며 피해자를 안고 엉덩이를 만졌다. 세 번째는 늦은 밤, 숙소에서 자려고 누워 있는 피해자에게 접근하여 피해자의 성기 안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어 추행을 했다.
고소가 취하된 다른 피해자들의 사건은 맞선 전과 결혼식 당일, 2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임신 출산 검사 명목의 알몸 검사에 대한 것이었다. 피해 여성도 알몸 검사를 거쳐야 했지만 고소기간의 도과로 그 부분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피해자 부부와 함께 끝까지 처벌을 원했던 또 다른 필리핀 결혼 이주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필리핀 현지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도착 후에도 가해자로부터 수차례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건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로 끝나고 말았다. 남은 사건에 대해 가해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으로 기소되었다.
가해자는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심지어 필리핀 현지에 있는 피해자 가족까지 접촉해 사건 중단을 회유했다. 결국 다른 피해자들은 모두 가해자와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했다. 가해자의 소개로 결혼했다는 한국-필리핀 수십 명의 국제결혼 커플들은 가해자 덕분에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며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강제추행이 일어난 장소가 가해자가 운영 관리하는 필리핀 현지의 숙소이다 보니 추가로 증인이나 증거자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제 추행 당일 피해자와 같은 방에 머물렀던 필리핀 여성과 연락이 닿은 것이었다.
피해 여성과 증인으로 출석한 필리핀 여성은 법정에서 진술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임신과 출산 여부를 검사하고자 했다면 병원에서 의사가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필리핀 여성들의 지극히 상식적인 반문이 법정을 맴돌았다.
지난 11월 7일 1심 판결 선고가 있었다. 징역 2년이 선고되었고 가해자는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되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가 워낙 극렬히 다투었기에 맘 졸이고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알몸 신체검사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일단 피해 당사자가 알몸 검사에 동의했다고 진술한 점이 결정적이었다. 동의가 있었다면 “강제” 추행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아쉬운 점은 ‘위력’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결혼 전과 후로 나누어 위력 여부를 판단했다. 결혼 후 가해자의 숙소에서 한국 입국을 대기하는 단계에서는 가해자의 지위가 피해자의 의사를 실력적으로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라고 보았다. 반면 결혼 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알몸 검사 시에는 가해자에게 “위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원치 않으면 다른 중개업자를 찾아가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결혼 중개 구조의 문제점을 간과한 결정이다.
표면상으로는 필리핀 여성, 중개업자, 한국인 남성은 모두 결혼 맞선의 계약 당사자로 보인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려는 한국인 남성 수보다 한국인과 결혼하려는 필리핀 여성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필리핀 여성은 선택을 당하는 지위이다. 중개 수수료 부담도 한국인만이 한다. 한국인과의 결혼을 원하는 필리핀 여성에게 국제결혼 중개업자는 한국인 남성과의 맞선, 성혼, 한국으로 가는 키를 쥔 자이다.
따라서 한국인과 결혼을 원하는 필리핀 여성은 중개업자의 알몸 검사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가해자는 필리핀 여성의 이러한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그 결과 강제추행, 강간 피해를 호소하는 필리핀 여성들이 우리 앞에 있다. 이 판결로 한국인과 결혼하려는 이주여성들에게 알몸 신체검사를 요구해도 괜찮다는 잘못된 메시지가 전파될 것이 우려스럽다.
글_소라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