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센터] 방콕 기업과 인권 주간 참석
OECD Watch의 Global Gathering에 참여하기 위해 도착한 태국 방콕의 카오산 거리는 습한 열기로 가득하고 일상의 삶이 이어지는 불빛이 휘황합니다.
방콕 현지 습도가 90% 이상을 넘는다는 정보에 습도 비율이 100%가 되면 물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일까? 하는 생각에 혼자 피식 웃습니다. 하지만, 물을 생각하자 방콕에 온 목적과 라오스 아따쁘 지역이 떠올라 이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라오스의 아따쁘 지역.
물이 들어온다는 비명 같은 외침이 들리던 순간, 평화롭게 일상을 꾸려나가던 주민들의 삶은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파괴되고 실종되어버렸습니다.
SK 건설이 시공하고 우리 정부의 막대한 공적자금이 지원된 세피안 세남노이 댐의 보조댐 붕괴로 일어난 갑작스러운 비극. 느닷없이 한순간에 물이 밀어닥쳐 마을이 통째로 쓸려 내려가고, 온 힘을 다해 기둥을 붙들고 버티던 이웃들이 거센 물길에 쓸려 사라지는 것을 피할 길 없이 그대로 마주했던 이들. 그들이 누리던 일상의 평범함이 무참히 깨어진 순간.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과 함께 그들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마음도 솟습니다. 소모적인 비난과 공격에 앞서 최대한 빠르게 피해자들이 그들의 삶의 일상 속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더는 인재로 인한 비극이 거듭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열악한 임시 거처에서 지내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속히 책임자를 가리고 응당한 보상으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이번 주 방콕에는 기업과 인권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정부, 국제기구, 기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Bangkok Business and Human Rights Week을 맞아 다양한 포럼과 모임, 대화의 장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공감이 그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 (KTNC Watch)는 여러 시민단체가 모여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서 인권 침해적인 기업활동을 하지 않도록 모니터링 등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라오스 댐의 붕괴라는 비극에 대한 규명과 대응 노력을 지난 1년간 해오며 현지와의 물리적 거리 등의 어려움으로 더 활발한 활동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던 저희로서는 방콕에서 듣고 배우고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이 반갑기만 합니다.
방콕의 이 시기는 매우 덥고 습하더군요.
조금만 걸어도 어느새 콧등에 땀방울이 맺힙니다. 저희는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실내에서 머무르며 다양한 포럼에 참여하고 의견을 나누느라 방콕의 습한 더위를 느낄 겨를이 거의 없었음이 어쩌면 다행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출장 새내기인 제게는 모든 순간이 참으로 의미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분의 목소리로 다양한 시각과 입장들을 직접 듣고 접하니 문제의 핵심이 더 뚜렷해지면서, 이렇게 많은 분의 의견과 관심이 합해지면 어떤 거대한 문제라도 끝내 열어낼 수 있는 문고리가 있을 듯 희망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OECD 가입국의 해외 기업활동을 감시하는 대표적인 단체인 OECD Watch가 주관한 이틀간의 세미나에서는 그동안 기업과 인권 분야에서 일해 온 다양한 단체가 모여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앞으로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는 모호하고 낯선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전심을 다 한 경험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힘과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따로 없이 많은 활동가와 다양한 주제로 활발히 나누었던 시간은 그 어떤 수업보다 강렬한 배움으로 꽉 찬 전진의 시간이었습니다.
뒤이어 유엔개발기구와 경제사회이사회, 태국 정부 등의 주관으로 이틀간 열린 기업의 책임경영 포럼에는 앞서 만났던 활동가와 단체에 계신 분 대부분을 발표자로, 혹은 참석자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저희 KTNC Watch 일원들은 라오스 댐 진정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유엔 기업가 인권 워킹 그룹의 위원장을 만나 라오스 댐 문제 해결의 시급함을 재차 알리고, 같은 문제에 대해 다른 각도의 대응을 하는 현지 단체와의 연대 계획을 모색하느라 하루가 어찌 지나는지 모를 만큼 꽉 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장의 마지막 날,
KTNC Watch는 태국의 관련 시민단체 여럿이 주관하는 Mekong and ASEAN Environmental Week (MAEW) 행사의 하나로 기자간담회를 하고 그동안 한국시민사회가 라오스 댐 사고 대응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또 앞으로 어떠한 일 들을 해나갈 계획인지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도 발표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한국시민사회의 활동상을 전달하는 책무를 맡아 긴장으로 며칠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질의 시간에는 당시 라오스 댐 사고의 상황을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라오스 당국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아 태국에 망명해 있다는 20대 청년이 누가 이 모든 고통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울컥 목이 멘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자 저라도 사죄를 드려야 할 듯 당황스러움과 함께 밀려오는 미안함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나온 방콕의 하늘은 습한 공기에도 푸르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들에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활기가 느껴집니다. 이제 방콕 기업과 인권 주간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누군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임이 분명합니다. 분주했던 일주일간의 방콕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저희 각자의 일정표에는 새로운 계획들과 서로의 마음과 힘을 합쳐 이룰 아이디어가 빼곡합니다.
돌아가면 새로이 시작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두리안은 과자로 만들어도 그 향이 꽤나 독특하고 짙다는 것, 그래서 사무실 출장 선물로는 조금 곤란할 수 있단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글_박예안 연구원
박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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