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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성소수자

군형법 제92조 계간 처벌 조항 위헌제청사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2011년 3월 31일 12시 35분. ‘군형법 제92조 위헌제청’의 선고를 기다리며 방청권을 받기 위해 헌법재판소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군대 내 동성애 웬 말인가? 동성애 허용하면 우리 국군 무너지고 김정일만 좋아한다.”라고 쓰인 피켓,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 걸리면 책임져라”라는 광고가 실린 유인물, “학생은 어느 편인가? 위헌~? 아니, 그럼 지금 동성애를 찬성해야한가는 거야?”라는 질문…. 신, 혹은 대한민국에서 그에 버금가는 위상으로 존재하는 국가 안보의 이름을 빌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는 그들 앞에서 이유 없는 혐오, 방향 잃은 공격을 마주했고 조금 지쳤다. 하지만 어쨌거나 햇살은 따사로웠으며, 옆에는 지금까지 군형법 제92조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해 오셨던 활동가분들, 변호사님이 계셨고, 아직 결정은 나오지 않았기에 희망은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힘을 내볼 만 했다.



그리고 오후 2시. 선고가 시작되었다. 군형법 제92조 위헌제청 사건(2008헌가21)은 첫 번째 순서였다.
“2008헌가21호 군형법 제92조 위헌제청 사건 … 구 군형법(1962년 1월 20일 법률 제1003호로 제정되고, 2009년 11월 2일 법률 제982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2조 중 “기타 추행”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힘이 스르르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무겁게만 느껴졌던 재판정의 분위기가 어깨를 더욱 더 짓눌러 오는 기분이었다. 방청했던 다른 분들과 함께 굳은 얼굴로 재판정을 빠져나왔다.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구 군형법 제92조는 “계간 기타 추행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계간’은 남성 간 동성애 행위를 차별적으로 이르는 말로, 이 조항에서는 규율대상의 대전제인 ‘추행’의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예시로 제시되고 있다. 이 조항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모호한 법익에 의존함으로써 ①강제/비강제 여부, 주체 및 상대방,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나 행위 장소 등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죄형법정주의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원칙 위배), ②형법 상 강제추행죄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한편, 비강제에 의한 행위의 경우 징계 등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있다는 점(과잉금지원칙 위배) ③이성 간의 성행위와 달리 동성 간의 성행위만을 제반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차별적으로 처벌하고 있다는 점(평등권 침해)에서 위헌 제청이 있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의 보호법익은 ‘개인의 성적 자유’가 아니라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이라고 확인하며 군형법 제92조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계간’은 판단하지 않는다?



먼저, 헌법재판소는 심판의 대상을 군형법 제92조 전체가 아니라 ‘기타 추행’부분에 한정하였다. 이 조항에서 ‘계간’은 ‘기타 추행’의 유일한 예시로서 명확성의 원칙의 위배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이 둘 사이의 관계를 검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판단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사실상 ‘계간’에 대한 판단은 결정문 전체에 걸쳐 이미 전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타 추행의 정의에 대해 대법원의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여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만족 행위’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폐쇄적으로 단체생활을 하면서 동성 간에 내무반, 화장실, 샤워실 등의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여 하는 군대 내에서는 … 비정상적인 동성 간의 성적 교섭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하여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재확인하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는 동성애에 대해 ‘비정상적’, ‘비윤리적’이라는 가치판단을 내리고, 따라서 ‘특수한 공간’인 군대에서 동성 간 행위를 이성 간 행위와 달리 규제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전제한 채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졌다면?



명확성의 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서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군인이라면 이 조항에서 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충분히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떠한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되고 어떠한 행위는 그렇지 않은지 의문으로 남아있다. 남성 간 행위만이 아니라 이성 간 혹은 여성 간 행위의 경우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 합의에 의한 관계의 경우나, 병영 밖에서 근무시간 외에 이루어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 확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연인 관계에 있는 두 동성애자가 휴가 기간에 병영 밖에서 어떠한 형태의 성적 관계를 가지더라도 현재 조항에 따르면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조항의 적용실태에 있어서도, 명확하지 않은 구성요건으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남성 간 성행위이기만 하면 처벌할 수 있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말하는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의 실체는 무엇인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한편, 과잉금지원칙의 위배 여부에 대해서도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확립을 목적으로 동성 군인 간의 성적만족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형사 처벌하므로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며, 다른 법률에 규정된 추행 관련 범죄와 비교하여 그 법정형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볼 수 없고, 군인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침해 정도가 나아가 ‘국가안보’라는 공익보다 크다고 할 수 없어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군대가 엄격한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인간관계로 이루어져 있어 하급자가 원하지 않은 행위에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는 형법 상 강제추행죄나 개정된 군형법 상의 강제추행죄로 충분히 포섭할 수 있으며 친고죄라는 성격으로 인해 생기는 공백은 군형법 상 강제추행죄의 비친고죄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비강제에 의한 관계일 경우 징계 등을 통해서도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규율할 수 있는 내용이다. 더욱이 동성 간 행위가 전투력 보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증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헌법재판소를 의도적으로 묵과하고 있다.



◆성적 지향은 헌법 상 차별금지 영역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평등권 침해 여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 역시 헌법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헌법재판소 스스로가 누구보다 더 차별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모순을 보여주었다. 심사척도의 적용문제에 있어서 ‘동성 간 성적 행위와 이성 간의 성적 행위의 차별은 헌법상 차별을 금지한 영역인 성을 이유로 한 남녀 차별의 문제가 아니며, 헌법에서 특별히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에도 해당하지 아니하다’는 내용은 헌법재판소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또한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시하면서 “절대 다수의 혈기왕성한 젊은 남성 의무복무자들이 이성 간의 성적 욕구를 원활하게 해소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장기간의 폐쇄적인 단체생활을 해야 하므로 … 동성 간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거나 ‘상급자가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지지 아니한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애 성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는 동성애를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 행위로 간주하며, 동성 간 성폭력의 가해자로 동성애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위헌 의견 역시 합헌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헌의견에서는 명확성 원칙에 대해서만 위배된다고 판단했을 뿐 이성 간 행위와 비교하여 과잉금지원칙이나 평등권의 측면에서 다루는 것을 회피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 이는 2002년 결정(헌법재판소 2001헌바70, 2002.6.26 선고)으로부터도 크게 후퇴한 것이다. 이 결정에서 2명의 헌법재판관은 공연성과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는 동성 간 행위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보호법익에 어떠한 위해를 가한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며, 국제적으로 동성애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추세이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동성 간의 성적 행위가 비정상적이며 사회의 성도덕을 심하게 침해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점차 벗어나 성적 지향성이 다름을 이유로 고용 등에 있어서 차별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행위로 인정하기까지 이른 만큼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위헌의견을 제시했었다. 이번 위헌의견의 경우, 특히 보충의견에서 한 재판관은 ‘나는 군내에서의 동성애를 금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뜻은 아니다. … 동성애를 금지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여 합의에 의한 동성 간 행위를 처벌하는 것도 합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변론 요지서와 공개변론을 통해 제시했던 해외 사례 등의 참고자료를 무시한 채 국방부의 주장과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복사해 붙인 것과 다름없었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인정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비단 헌법재판소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의 인권 의식 퇴보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로 분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스스로 헌법을 부정한 헌법재판소를 규탄한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군형법 제92조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던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 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군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두 차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먼저 3월 31일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이 선고에 바로 뒤이어 열렸다. 이 기자회견에서는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법리적인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전에 비해 위헌 결정을 내린 재판관이 늘었다는 점에서 희망이 남아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이어서 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 진보신당의 타리 활동가,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정욜 활동가의 발언이 있었다. 타리 활동가 “미국은 동성애자의 군 입대를 금지하는 조항을 폐지하였는데 그렇다면 미국도 군기가 해이해질 것이라고 말한 것인가?”라고 지적했으며, 정욜 활동가 역시 이번 결정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국 사회의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토록 낮다는 점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다른 한편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합헌 결정을 자축하는 것과 대조되는 씁쓸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며 그 자리에 모였던 분들은 여기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결정을 하나의 계기로 삼아 지속적으로 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마음을 서로 나누며 격려했다.



이에 따라 5일에는 군 네트워크, 인권단체연석회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참여한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제 92조의 합헌 결정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및 이를 환영하는 일부 사회단체들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차별금지법제정운동과의 연대 등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제시하는 등 더 나은 내일을 그려보는 자리가 되었다. 장서연 변호사는 31일 기자회견에서의 위헌 결정을 내린 재판관이 늘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는 발언을 거두며, 오히려 2002년 결정보다 퇴보했으며 80년대 만들어진 헌법을 2011년에 명문 그대로 해석하려는 헌법재판소를 비판했다. 임보라 목사는 이번 결정에 대한 비판과 함께 특히 이 결정을 환영하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에 대해 “동성애자가 치유와 회복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야 말로 맹목적 종교성을 치유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통렬한 비판을 던졌다. 또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몽 활동가와 나영 활동가는 최근 85개국이 서명한 UN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기반한 폭력과 인권 유린의 근절’이라는 선언문에 군형법 제92조의 존재를 이유로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며 한국 사회의 인권 수준을 부끄러워해야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한 이러한 부끄러운 판례가 다시 남지 않도록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기자회견 후에는 “2011년 3월 31일 개정된 헌법 제 11호 제 1항 동성애자, 성소수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피켓을 망치로 부수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다시 또 새롭게….



군형법 제 92조의 합헌 결정이 나던 날 밤, 지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가방 속에 종이 2장이 나뒹굴고 있다. “위헌 결정 환영한다!”와 “헌법재판소 규탄한다!”…. 군 네트워크에서 위헌 결정이 날 경우와 합헌 결정이 날 경우에 대비해 각각 다른 버전으로 준비해주셨던 것이다. “위헌 결정 환영한다!”는 종이를 들고 함께 축하파티를 열자 했는데 그 생각을 떠올리니 다시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그 때 갑자기 31일 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보았던 군 네트워크의 박기호 활동가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지쳤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게이답게, 발랄하게 운동을 계속해나갈 겁니다.” 임보라 목사가 인용했던 노래 한 구절도 떠오른다.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자,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차별적 문구가 쓰여 있던 피켓에 시원하게 한 방 날렸던 망치처럼, 또 다시 사람들은 이 편견 가득한 세상에 끊임없이 말 걸고 도전할 것이다. “위헌 결정 환영한다!”는 종이는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해두련다. 이 종이가 쓰이게 될 그 날을 위해.



글_13기 인턴 이수정



* 공감은 지난해 6월 10일, 헌법재판소의 군형법 제92조 위헌제청사건 공개변론에서 피고인을 대리하여 공개변론을 하였습니다. 또한 2008년부터 군대 내 성소수자의 인권을 증진 및 차별법령을 개정하기 위한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 침해 ․ 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군형법 제92조 공개변론” 지난 2010. 7. 활동소식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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