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의 인권 침해, 더 이상 이론적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공감은 2004년부터 해외 한국기업의 인권침해에 대한 감시활동을 벌여왔다. 국내소송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도 하고, 유엔에서 주최한 자문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OECD 다국적기업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근거한 진정 절차의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사례와 관련해 현지조사와 국가인권위 진정 등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유엔에서는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새로운 국제기준이 마련되었고 OECD 다국적기업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개정되었다. 유엔인권이사회 산하에 기업과 인권에 관한 전문가그룹이 구성되기도 했다. 2013년 11월 5일에서 7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인권과 기업에 관한 포럼(부제 : 구속력 있는 규율과 효과적인 구제책을 위한 집단적 전략 개발)은 이러한 그동안의 국제 흐름을 현장의 목소리를 통하여 종합하고자 하는 장이었다. 공감은 전 세계 약 100명의 국제 및 국내 NGO 활동가들, 변호사들과 함께 이 포럼에 참가했다.
개막식에서는 오랫동안 버마 민주화운동을 해 온 활동가인, 프랑스 소재 국제 NGO FIDH 사무총장의 다국적기업의 인권 침해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발표가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활동가는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인권옹호자들에 대한 묵념을 제안해 잠시 비장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기업과 인권 문제에 대한 다수의 저술을 한 식량권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의 관련 국제기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 있었다.
주요 세션에서는 기업의 인권 침해에 대한 각 국가 내에서의 사법적 메커니즘, OECD 등과 관련된 비사법적 메커니즘, 캠페인 기술과 국내 네트워크, 유엔 인권 메커니즘의 활용 등 다양한 주제들이 다뤄졌다. 특히 기존 여러 아시아 네트워크 모임과는 달리 남미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함께 했고, 그들은 아시아 활동가나 변호사들과 또 다른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모든 세션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서로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 지난 11월 5일에서 7일까지 열린 인권과 기업에 관한 포럼
다국적기업의 인권 침해와 대한 사법적 접근의 경우, 그동안 주로 미국의 법제와 미국에서의 소송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경향이 있었고, 다국적기업이 활동하는 국가에서 어떠한 법적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수준에 그쳐왔다. 그러나 아시아만 보더라도 한국, 일본, 중국 등 여러 다국적기업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에서 해외진출기업에 대한 어떠한 법적 대응이 가능한지 충분히 논의되거나 정리된 바가 없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다국적기업의 본사 소재국과 자회사 등 소재국의 NGO 간의 협력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적, 물적인 한계, 그리고 정보나 계획의 부족으로 인해 극히 일부 사례에서만 이러한 협력이 이루어졌다.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다국적기업이 소재하는 국가에서 해외진출기업에 대한 어떤 소송이 가능한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 다국적기업이 활동하고 소재하는 다양한 국가의 NGO 간의 긴밀한 협력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비사법적인 메커니즘의 경우,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OECD 다국적기업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입각한 진정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거의 논의가 되고 있지 않지만, 세계적으로는 주요 개발프로젝트에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등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 기관 내에 존재하는 진정 메커니즘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자발적 메커니즘으로서 이들 진정절차가 가지는 한계가 지적된다. 비사법적인 메커니즘과 관련하여 국제기준이나 국제기구에 기반한 접근도 계속 그 강화가 논의되어야겠지만 각 국가에 현존하는 혹은 향후 개발․활용 가능한 기관이나 절차에 대한 좀 더 풍부한 논의가 필요하다. 올해만 하더라도 영국에서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행동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실행에 옮기려고 하고 있고, 중국은 해외에 진출하는 중국기업이 지켜야 할 환경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으며, 인도는 회사법을 개정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부서의 설치 및 운영을 의무화시켰다. 국회는 정보의 수집, 조사, 감독의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기관으로 국회의 적절한 활용은 그 어떠한 진정 메커니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국가인권기구가 존재하는 국가들의 경우, 국가 인권기구간의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은 특정 다국적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감독과 문제제기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다국적기업의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네트워크 구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이러한 활동과 단체들을 ‘반 기업’, ‘반 개발’, ‘빨갱이’ 등으로 낙인찍고, 이를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대다수 정부와 기업의 대응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위 ‘자원안보’가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의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제기가 정치적일 이유는 없다. 문제제기의 대상은 인권침해를 하는 기업이지 기업 일반이 아니다. 이들 단체들은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개발’을 원하는 것이다. 대안 없는 문제제기라는 비난이 있지만 이러한 비난에는 인권, 환경은 폐기 가능한 요소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위와 같은 낙인찍기가 단기적으로는 관련 단체들 또는 피해자들을 고립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기업 일반에 대한 반감을 증가시키고 특정 기업 활동의 비용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인권침해를 문제 삼는다고 해서 사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
▲ 지난 11월 5일에서 7일까지 열린 인권과 기업에 관한 포럼
공감은 여러 세션에서 발표자로, 토론자로 다양한 발표를 했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해외진출기업에 대한 대응과 관련한 세션에서는 기존 해외진출한국기업 감시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현재 한국시민사회가 직면한 한계에 대하여 언급했다. 해외한국기업 감시의 역사는 20년 가까이 되지만 어느 정도 체계적인 네트워크가 구성된 것은 채 5년이 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 진정, OECD가이드라인 진정, 형사고발 등 다양한 사법적, 비사법적 대응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향후 활동의 출발점은 기존 실패사례 혹은 한계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지조사 한번을 가기 위해 3년 동안 돈을 모아야했을 정도로 열악한 자원상황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여기저기서 접수되는 다양한 사례로 인해 특정 사례에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투여할 수 없었던 것도 문제이고,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 단체들에게 제대로 손을 내밀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창의적인 캠페인 등 좀 더 다양한 활동방식을 채택하지 못했고, 자원의 부족,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인해 현지 단체, 피해자 등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결국 국회, 투자자를 포함하는 다양한 주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법제의 개선을 꾀하고 기존 법제를 활용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
이 포럼에서 아쉬웠던 것은 구속력 있는 국제규범을 만들자는 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기존 각종 가이드라인이나 자발성을 강조하는 유엔에서의 논의가 가지는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나 새로운 국제규범을 만드는 작업에 과도한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식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다국적기업의 소재국과 자회사 등 소재국의 인권옹호자들이 긴밀히 협력하면서 모든 사법적, 비사법적 수단을 통해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으로,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영역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영국의 한 인권변호사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한국 회사 등이 수출하는 최루탄이 바레인에서 3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고, 최근에도 한국 정부가 160만 발에 이르는 최루탄에 대하여 수출 허가를 하였다고 한다. 유엔과 OECD가이드라인 진정절차 등은 진행할 계획이지만 한국에서는 어떤 법적인 대응이 가능하냐는 문의였다. 이러한 문의에 즉각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응하고 한국, 바레인, 영국 등 관련되거나 관심 있는 다양한 국가의 단체와 변호사들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틀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 이러한 것이 가능해질 때 인권을 침해하는 기업은 줄어들고 각국의 사회구성원들은 그 사회의 주인으로서 좀 더 인간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본국의 법을 피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한 다수의 다국적기업들, 이제는 최소한의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의 존재의의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글_황필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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