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간 불법촬영도 범죄, 피해자 구별 없는 지원 필요
불법촬영 피해를 당한 피해자 분이 사무실로 급하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채팅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남성이 휴대전화로 자신의 신체를 촬영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휴대전화를 급히 뺏어 화장실로 도망가 사진을 찾아 삭제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지갑 속 신분증도 촬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경찰에 곧 바로 신고하고 조사가 이뤄졌지만 이미 사진이 삭제되었다는 점 때문에 경찰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다른 사진(성적 촬영물)이 더 있을지, 다른 기계나 계정 동기화를 통해 온라인상에 확산된 것은 아닐지, 개인정보가 포함된 신분증까지 노출된 것은 아닌지 불안한 밤을 보냈습니다. 며칠 뒤 피해자 조사 차 경찰서 출석을 요청받았고, 피해자는 공감으로 연락해 경찰조사에 동행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피해자 변호사로 위임장을 제출하고 조사에 동석했습니다. 이 사건 피해자도 조사 시작 전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피해자국선변호사 선임 여부, 가명조서 작성, 영상녹화 조사 필요 여부, 여성 수사관 조사 희망여부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조사가 개시되면서 사건 당일에 대한 질문이 오갔습니다. 가해자를 만나게 된 과정, 사진을 찍히게 된 맥락, 삭제하면서 실랑이를 벌인 일 등 조서가 채워져갔습니다. 가해자가 촬영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유포 가능성 때문에라도 저장매체 압수가 필수라는 의견을 더했습니다.
이 사건 피해자는 남성으로 동성 간 불법촬영 피해자였습니다. 조서에 가해 남성과 피해 남성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 담담히 채워졌습니다. 불법촬영과 유포 불안에 더해 본인의 성정체성이 드러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아웃팅 위험성)에 대한 설명도 덧붙여졌습니다. 유포 협박과 아웃팅 협박이 “왜 협박이 되는지” 설명할 것도 없이 “동의 없는 신체 촬영”자체가 성폭력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전달하였습니다.
담당 수사관도 동성 간 성범죄라는 점에 대해 특별히 달리 취급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수정 요청을 몇 번 수용하여 조서 작성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한 달 뒤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가해자의 휴대폰을 압수 한 뒤 포렌식 결과 실제 피해촬영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동성 간 불법촬영은 성정체성을 폭로하는 아웃팅 범죄와 연결되기도 하고 피해촬영물 유포 협박이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하는 성폭력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동성 파트너의 이별 후 스토킹, 트랜스젠더 업소에서의 불법촬영 등 성소수자 지위의 취약성을 이용한 협박 사례를 종종 듣습니다.
불법촬영과 비동의 유포, 성적 이미지 합성, 유포 협박까지 성폭력처벌법상 성범죄에 포함되면서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범위도 세부적으로 확대 되었으며 관련 피해자는 성범죄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수사 전 과정은 물론 재판에서도 성범죄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로서 수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가명조사를 받아 재판까지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이 성소수자들이 사건해결을 맘 먹는 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피해자의 성정체성이나 성별정체성은 피해를 인정하는데 큰 고려사항이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유포 협박이 협박이 될 수 있는 것은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하는 사회구조에서 기인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초기 수사에서의 피해자 지원 절차 안내 및 실천, 피해자 변호사 지원 등은 성범죄 피해자가, 성소수자가, 자신이 경험한 피해 때문에 다시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더 이상 협박이 통하지 않는 견고한 안전망을 만드는 첫 단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