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존엄한 삶을 위하여 – 대법원 장애인식개선교육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지난 11월 13일 오전에 대법원 지하 대강당에서 대법원장님과 법원행정차장님을 비롯한 대법원 소속 판사 및 직원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국가기관보다 장애인의 인권보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원, 특히 대법원에서의 장애인식개선교육은 참으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강의 전반부는 장애여성 공감의 배복주 대표님이 ‘장애감수성’에 대해 강의를 하였습니다. 배대표님의 강의는 요약하여 참석자들에게 책받침으로 제공되기도 하였습니다. 평소 쓰는 말 중에 흔히 ‘장애자’ 혹은 ‘장애우’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틀린 표현입니다. 1989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장애인’이라는 표현이 공식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반인’ 혹은 ‘정상인’도 흔히 쓰지만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장애는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고 다양한 정체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장애를 앓고 있는’이란 표현 대신 ‘장애가 있는’으로 표현하여야 합니다.
또한 ‘장애를 극복한’이라는 말도 언론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요.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고, 장애인의 다양한 방식과 소통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맞습니다.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혜택’이라는 말은 장애인을 국가와 타인에게 의존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인식하는 차별적 표현입니다.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강의 후반부에 ‘모두의 존엄한 삶’이라는 주제로 강의하였습니다. 장애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걱정합니다. 장애인과 함께 있는 상황이 불편하고 싫어서 장애인이 없는 사회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애발생 원인은 88.1%가 후천적 원인에 기인합니다.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면서 어떤 유형이든 장애를 갖게 됩니다. 장애문제는 특정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장애인은 특정 유형의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거나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삶’으로 낙인 찍어 사회 밖으로 밀어냅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가요? 존엄함의 정도에 차이가 있나요? 아무리 당위적으로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고 얘기하더라도 현실에서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을 존엄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장애인을 시설이나 병원에 가두어 일생을 아무런 꿈과 욕구, 자존감을 상실한 상태로 무기력하게 살도록 하거나 여서는 안됩니다.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단한푼도 주지 않은 채 장애인을 부려먹고 인간 이하의 노예생활을 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될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다른 누군가를 서로 존엄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잘못된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개인으로서 존중받는 삶,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인정받는 삶일 때만이 우리의 삶은 존엄해집니다.
글_ 염형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