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강간으로 인한 ‘출산경력’, 혼인취소 사유인가
가사사건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여성의 출산경력이 미성년 당시 입은 강간 피해로 인한 결과일지라도 혼인 당시에 상대방에게 고지하지 않았다면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작년 9월,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해 인사차 들른 이주여성인권단체에서 처음 사건을 접했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의 사연이었다. 결혼생활 6개월 만에 함께 살던 시아버지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첫 번째로 놀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부는 강간 사건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남편 쪽에서 제기한 혼인취소 소송이 1심에서 인정됐다는 사실에 두 번째 놀랬다. 시부의 강간 사건 형사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 변호사가 여성의 출산 전력을 제기했고, 이후 남편 쪽에서 이를 문제 삼아 혼인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혼인 당시에 여성이 출산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으므로 기망에 의한 혼인이라는 주장이었다. 1심 법원은 혼인 취소 판결과 더불어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위자료 1천만원을 지급해야한다고 선고했다.
마지막으로 놀랬던 것은 여성의 출산이 미성년 당시에, 베트남 소수 민족 사이에 현존하고 있는 ‘약탈혼’ 풍습 결과였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보쌈’같은 풍습이 베트남에는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사건 당사자인 결혼이주여성은 14살 때 이웃마을에 놀러갔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납치되어 그 마을에 사는 남성 집에서 3일간 감금되고 강간 피해를 입었다. 그 결과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었으나, 여성은 아이를 낳은 후 남성을 피해 집을 나와 아이와도 남성과도 소식이 끊긴 상태로 지내왔다.
1심 판결대로 혼인취소 판결이 확정된다면, 결혼이주여성은 실재로는 시부에 의한 강간 피해로 인해 혼인이 파탄 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혼인 취소를 당하고 한국에서 내쫒기게 될 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의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결혼이주여성의 삶이 너무 기구했다. 항소심 사건을 지원하기로 했다.
항소심에서 여성의 출산경력은 미성년 당시 약취, 감금, 강간으로 인한 결과이므로, 통상 혼인취소 사유와 달리 판단해줄 것을 주장했다. 혼인취소가 인정된 기존 판례의 경우, 출산경력이 성인으로서 본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른 결과였다. 성폭력 피해 결과 출산하게 되었다는 점도 다른 지점이었다. 출산경력을 말하려면 미성년 당시 성폭력 피해까지 말할 수밖에 없고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출산경력의 고지 자체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곧바로 2차 피해를 야기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혼인의사를 결정함에 있어서 출산경력이 차지하는 중대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고지의무를 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1심 법원의 혼인취소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에 상고장을 접수했고 이주여성 지원 단체들은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미성년 당시 입은 강간 피해로 인한 결과임에도, 아이를 낳은 후 다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출산’ 경력만으로 혼인을 취소하는 것이 타당한가? 보다 근본적으로는 남성의 ‘출산’ 경력도 여성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는가? 대법원에, 토론회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통계청의 2013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3세부터 24세 사이의 청소년의 경우 58.4%가 동거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동거는 필연적으로 임신, 출산 또는 낙태를 수반한다. 그렇다면 ‘낙태’ 경력도 ‘출산’ 경력과 동일하게 판단할 것인가? 법원 판례 역시 변화하는 시대상을, 일반인의 법감정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의 혼인취소 판단 기준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며, 어느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글 _ 소라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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