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장애인 법 제정 당사자 토론회’ 참여
지난 3월 25일,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발달장애인 법 제정 당사자 토론회’가 열렸다. 발달장애인 스스로 발제하는 토론회는 처음이다. ‘알기 쉬운 장애인권리협약 제작위원회’의 신현욱 씨, 신승희 씨, 그리고 장민원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을 각각의 목소리로, 또 한목소리로 발표해나갔다.
다른 사람보다 신체나 정신의 성장 속도가 더딘 발달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배우고 알 권리, 일하고 쉴 권리, 차별받지 않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권리, 자기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낼 권리 등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다.
발제자들은 ‘우리나라가 발달장애인을 도와줘야 하는 부분’을 요구하기에 앞서 ‘권리를 누리기 위해 발달장애인이 준비해야 할 것’을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일반 학생들을 상대로 발달장애인을 잘 알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하지만 발달 장애인 스스로 자신이 어떤 장애를 가졌는지 잘 알아서 친구들한테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권리 주장과 함께 자신들의 의무에 대한 고민도 빼놓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복지를 함께 고민하고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의무일 텐데, 작년 5월 19대 국회의 제1호 법안으로 발의된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왜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을까?
같은 장애, 다양한 욕구
빨리 돈을 벌어서 결혼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는 현욱씨는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을 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승희씨는 생각이 달랐다.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연애는 해도 결혼할 생각은 없다”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민원씨는 얼마 전에 만났다가 헤어진 남자 이야기를 했다. 정신 지체장애인이었던 그는 민원씨에게 “자신은 배울게 많으니 5년을 기다려 달라”고 했단다. 민원씨는 도저히 5년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그와 헤어졌는데, 모두 잘 한 선택이라고 수긍했다. 민원씨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장애를 가진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지만 성격은 가지각색이다. 추구하는 삶의 방식도 당연히 다르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는 오히려 비장애인보다도 강한 것 같다. 그들의 강한 자립 의지와 다양한 개성 표현을 보며, 나는 발달장애인을 어떤 획일적인 관념의 틀에 가두어 장애인이니까 이러할 것이라고 추정하거나 단정짓는 것이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는 장애인 개개인의 목소리에 귀 귀울이고,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미 발의된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안’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은 법안이다. 발달 장애인만을 위해 만든 첫번째 법이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의견을 물어볼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작년 9월, 발달장애인들은 “자존심 있는 9. 23 발달장애인 권리 선언문”을 작성하여 그들의 자기결정권 의지를 사회에 알리기 시작했다.
국회에서 일년씩 표류할 바에는 지금이라도 당사자 의견을 반영하여 제1호법이 새로 발의되면 좋겠지만, 또 새로 발의하기 위해 걸릴 시간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다. 국회는 신속하게 제1호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빠른 시일 안에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이 꿈꾸는 것은 자유, 그들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
발제가 끝나고 토론이 시작되었다. 발제자들의 의견을 듣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고 입을 모은 토론자들은 토론이라기보다는 소감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달장애인 법제정추진연대’ 법제위원인 김치훈씨는 발제자들의 요구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강요하지 마”, 두 번째는 “돈을 벌고 싶어”, 세 번째는 “괴롭히지 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일은 내가 할래”이다.
이토록 당연한 요구를 우리 사회는 아직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장애인 복지에 인색하고, 장애인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한다.
개인의 자유와 그 개인의 안전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발달장애인들은 보호받는 것보다 자유로운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한 목소리로 크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발달장애인도 실패를 할 권리와 위험에 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은 실패하고 위험에 처해 본 경험을 통해서만 반성하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더딘 속도로라도 성장할 수 있는 권리. 그것을 빼앗아 가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국회는 더디게 움직이고 있고, 사회의 인식도 쉽게 변할 기세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현욱 씨, 승희 씨, 그리고 민원씨가 입을 모아 이야기한 것이 있다. 발달장애인도 알아들을 수 있게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 달라고.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 매뉴얼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 근로계약서 같은 법적 문서도 알기 쉬운 말로 작성하는 것. 병원 의료진은 전문지식을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는 것. TV의 예능 프로그램은 어려운 영어나 한자 단어의 사용을 줄이는 것.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명료한 우리말을 쓰는 것과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배려. 당장 오늘부터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권익지원연대’의 윤혜령 토론자는 발달장애인이 바라는 행복은 비장애인이 바라는 행복과 똑같다는 것을 강조했다. 발달장애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결국은 온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이다.
글_ 한예솔(17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