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복지] 국가인권위원회,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조치에 관한 정책 권고 안건을 부결하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은 작년 8월부터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 철회/공공역사 홈리스 지원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서울역 공대위)라는 긴 이름의 연대단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대위는 한국철도공사 서울역이 2011년 7월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나중에는 철도공사가 ‘노숙인 야간 노숙행위 금지’라고 명칭을 바꾸었습니다만 방침의 내용이나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시행을 예고한 후부터 강제퇴거방침 철회를 위하여 인권위 진정, 인권위의 실태조사 참여, 1인 시위와 집회, 각종 여론 환기 활동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공대위의 활동이 6개월이 넘어간 지난 1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012년 제3차 전원위원회에서 ‘노숙인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권고의 건’을 심의하고 부결(정책권고를 하지 않기로 함)하였습니다. 인권위가 서울역 야간노숙행위 금지조치가 언론에 의해 보도된 이후 2011년 8월 9일부터 긴급하게 ‘서울역 야간노숙금지 조치 이후 거리노숙인 실태조사’를 하고, 이 실태조사결과를 바탕으로 2011년 12월 7일 상임위원회에서 ‘노숙인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권고의 건’을 전원위원회에서 상정하기로 의결한 후의 일입니다.
이 날 부결된 안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일반에게 공개된 전원위원회 의결안건에는 서울역 조치에 대한 ‘의견표명’의 내용과 서울특별시장에 대한 ‘권고’ 사항이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서울역 조치에 대해서는 ‘한국철도공사(서울역)의 역사 내 야간 노숙행위 금지조치는 차별적 편견이 전제되어 있고 노숙인의 낙인화 등 인권침해적 속성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노숙인의 탈노숙 의지 감퇴를 초래한다고 판단되는바, 노숙인의 초기 탈노숙을 유도하기 위한 공공역사로서의 적극적 역할 수행을 위해 동 조치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고, 향후 유사한 정책을 시행할 때는 인권적 관점에서 면밀한 사전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다’는 내용으로 ‘의견표명’을 하고, 서울특별시장에 대해서는 노숙문제가 근본적으로 빈곤의 극단에 처한 계층의 문제임을 전제로, 1. 서울특별시 관할 내 거리노숙인에 대한 지속적․정기적․체계적인 실태조사 실시, 2. 노숙유형별 맞춤형 쉼터와 상담센터의 확충과 주거․일자리 정책의 지속성 확보, 여성․고령․장애인 거리노숙인에게 특화된 별도의 정책 입안, 3. 거리노숙인, 시설노숙인, 노숙위기에 처한 비주택 거주 노숙인의 지역 사회 정착을 위한 주거, 고용, 의료, 기초보장 등 복지정책에 대한 중장기계획 수립의 3가지 사항의 권고가 안건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안건은 홈리스 처우에 대한 지극히 원칙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정리된 것이고, 인권위로서는 마땅히 표명할 수 있는 수준의 의견과 권고인 것으로 보이는데 왜 이 안건은 부결되었을까요?
당일 전원위원회 회의 속기록에 나타난 인권위원들의 발언을 보면 그 실마리를 조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유보하자.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받자. 시급한 것 같지는 않다. 시급했으면 무언가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현병철 위원장)
“내가 인도의 뉴델리역에 갔는데 노숙인들이 많아서 인도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서울역을 그렇게 하자고 했을 때 어떻게 되겠나? 내가 아는 지인한테 들으니 복지회관에서 노숙인들이 한 달만 있으면 재활을 한다고 하더나. 그런데도 한 달이 싫어서 못 버티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한태식 비상임위원)
“서울역에서 내쫓는다고 하면 누구도 부당하다고 할 텐데 진짜 내쫓는 거냐? (폐쇄)시간을 2시간 늘리는 것을 내쫓는다고 하면 맞나? 서울역서 노숙하게 하면 탈노숙의지가 커지나?” (김영혜 상임위원)
홈리스에 대해 근거 없는 혐오와 차별적 편견이 없는 인권위원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의 과욕일까요? 인권위의 존재의의는 과연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역 퇴거조치가 있기 전 서울역사 부근에 상주하던 거리홈리스는 약 300명, 서울특별시가 서울역 지하도에 마련한 응급구호방 정원은 80명이라고 합니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에 서울역을 떠난 이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 2011년 9월 10일 14시경, 서울역 정문 밖. 특수경비용역과 역무원이 다리가 불편에 일어서지도 못하는 한 거리홈리스를 뒤에서 위협하며 내쫓고 있다. 철도공사는 퇴거시간 외, 대합실 외에 대해서는 퇴거하지 않는다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사진=홈리스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