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복지]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이제 시작이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이제 시작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세미나와 국회 토론회를 마치고-
“다 불붙여버려. 다 불태워버려.”
13일 새벽 6시 30분. 양복을 입은 육중한 몸집의 사내 50여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10여명의 상인들은 상가로 이어지는 작은 통로를 막고 섰다. 롯데월드 안전과 직원이 “다 불붙여버려. 다 불태워버려”라고 말하며 상인들을 위협했다. 한 상인이 “어떻게 그런 말 할 수 있냐”고 따지자 이 직원은 “우리 집을 태우라는 말이었다.”고 답하며 조롱했다. 상인들은 용역직원들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10여분 만에 쫓겨났다. 한 상인은 직원들에게 저항하다 팔을 뒤로 꺾였다. 합법적인 철거를 지시할 수 있는 법원 집행관은 아침 7시 30분께서야 도착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0615.html)
29일 오전 4시께 서울 강남구청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강남구 포이동 재건마을 일부를 기습 철거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강남구청과 용역업체 직원 50여명은 이날 오전 4시부터 포이동 무허가 판자촌 재건마을에 투입돼 철거 작업을 시작, 10여 분간 7채의 가건물을 허물었다.
당시 주민들 30여명이 철거를 막으려고 했지만 포크레인을 앞세운 용역을 제지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철거를 막고자 가건물 위로 올라가 저항을 했지만 용역에 떠밀려 땅바닥으로 떨어졌으며 일부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80대 노인이 실신하는 등 철거에 항의하던 주민 3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http://www.vop.co.kr/A00000436197.html)
두 기사는 모두 불과 한 달 사이에 있었던 일들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는, 법원이 강제집행 ‘정지’ 결정을 하고 그 ‘결정문’이 상인들에게 송달되기 전에, 또 법원의 집행관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가 지하상가 4개 점포를 기습적으로 강제 철거했다는 기사(2011년 10월 13일 17:06 <한겨레> 홈페이지 등록)이고, 두 번째는 서울 강남구청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포이동의 무허가 판자촌인 재건마을 주민들이 세운 조립식 가건물을 강제 철거했다는 기사이다(2011년 9월29일 08:19, <민중의 소리> 홈페이지 등록). 재건마을 주민들은 지난 6월 화재로 전체 96가구 중 75가구가 전소된 이후 최근까지 강남구청과 주거 환경 복구 등에 대한 협의를 해 오고 있었다.
이 두 사례는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강제퇴거의 실태에 비하면 작은 예일 뿐이다.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로 6명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된 이후에도 강제퇴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주택이건, 상가이건, 세입자이건, 소유자이건, 개발 사업으로 인한 것이건, 다른 이유에서건, 재정착이 보장되지 않고 폭력이 수반된 강제퇴거와 철거를 목격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1970년대 이후 40년에 가까운 강제퇴거의 역사를 뒤로 하고 제2의 용산참사가 다시 일어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현재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내용을 ‘강제퇴거 금지’라는 주제어로 묶어낸 것이 강제퇴거금지법이다.
법률 초안은, 2010년 한 해 동안 공감과 인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주거권운동네트워크에서, 2011년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의 산하 강제퇴거금지법 제정특별위원회에서, 만들고 가다듬었다. 2011년 1월의 용산참사 2주기 기념토론회, 상반기의 강제퇴거금지법 쟁점포럼을 거쳐, 법안은 더 넓은 공론의 장으로 나왔다. 10월 4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주최한 ‘강제퇴거 금지 법제화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세미나와 10월 11일 국회 정동영, 김희철, 김진애, 강기갑 의원실과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특별위원회가 공동주최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토론회’가 그것이다.
두 차례 공론의 장에서 함께 토론하고 나누었던 의견들 중 두 분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이 법이 과연 되겠나’ 하는 생각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립 정부가 2002년 ’원자력 등 개정법‘으로 ’탈원자력발전정책‘을 선언하고 불과 10년 안에 원자력발전산업의 기본방향을 완전히 전환한 것처럼, 10년 후의 관점에서 보면 강제퇴거금지법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법일 수 있습니다.”(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
“법안을 준비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겠지만, 현행법의 보완책을 마련하고 법안 내용을 전 사회로 환기하려면, 강제퇴거금지법은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홍인옥 전 한국도시연구소 연구부장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의미, 삶과 쫓겨남의 패러다임을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이다. 강제퇴거금지법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글_차혜령 변호사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1만인 선언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서명 바로 가기.
http://mbout.jinbo.net/webbs/list.php?board=mbout_33
*강제퇴거금지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특별위원회 블로그 바로 가기.
*2011년 상반기의 3차례 강제퇴거금지법 쟁점포럼의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꽃샘(공감 13기 인턴)의 ‘다시, 여기, 사람이 있다 – 강제퇴거금지법 쟁점포럼 후기’ 바로가기.
http://withgonggam.tistory.com/599
*2011년 10월 11일, 국회 토론회의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이성준(공감 14기 인턴)의 ‘무너질 수 없는 삶 –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토론회를 다녀와서’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