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골웨이대학 국제장애법 연수 참석
우리 모두는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중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도 그저 비장애인들만큼의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정말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장애를 개인적 손상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더불어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일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네버엔딩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지금 바로 해야할 일이기도 합니다.
장애인식개선의 지평을 넓히고자 장애인법연구회 멤버들은 아일랜드 골웨이 대학에서 주관하는 국제장애법 연수에 참여하기로 하였습니다. 장애인법연구회(이하 ‘장법회’)는 2011년 장애인법 공부모임에서 출발하여 장애인 관련 법제도를 연구하고 장애인 인권신장을 위한 공익소송, 제도개선, 입법활동 등을 벌이는 법률가단체입니다. 저는 장법회에서 총무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장법회가 국제장애법연수에 참가하려는 것은 장애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목표도 있었지만, 주된 목표는 골웨이대학의 국제장애법 연수를 직접 보고 배워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그와 유사한 국제장애법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태 지역의 장애인단체들이 서로 교류하고 배우며 국제적인 연대를 쌓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장법회 멤버들의 국제장애법 연수 프로그램 참가와 아태 국제장애법 연수(가칭 ‘제주 아일랜드 국제장애법 겨울학교’) 기획까지 모두 오픈소사이어티재단(Open Society Foundation)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연수 전부터 장법회의 장애인법 관련한 다양한 활동(공익소송, 입법활동 등)을 소개하는 포스터를 제작하고, 연수를 충실히 받기 위한 사전공부, 골웨이 대학 국제장애법 연수 사무국 미팅준비 등을 착실히 해나갔습니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서쪽에 위치한 인구 450만명의 작은 섬나라로 1937년 정식 독립할 때까지 약 400여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일랜드에 도착하여 한번은 현지 이동을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우리 보고 일본에서 왔느냐고 물어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대단히 미안하다며 자기들도 외국여행에 가서 영국사람이라고 하면 대단히 분개한다고 같은 식민지 경험의 설움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국제장애법 연수(11TH INTERNATIONAL DISABILITY LAW SUMMER SCHOOL)는 2019년 6월 17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연수는 아일랜드 골웨이 국립대학 (National University of Ireland, Galway)의 장애인 법과 정책센터(Centre for Disability Law and Policy institute for Lifecourse and Society, 약칭 ‘CLDP’)가 주관하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장애인 당사자, 장애인단체 활동가, 교수, 법률가 등 190여명 참여한 이번 프로그램의 큰 주제는 장애와 가족생활권(Persons with Disability and the Right to Family Life)이었습니다. 첫날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RPD_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에 대한 개관과 장애인권리협약상의 가족생활권 조항에 대한 소개시간을 가졌고, 둘째 날은 본격적으로 가족생활과 관련한 다양한 권리(지역사회에 소속할 권리, 법적 권리능력, 재생산권, 독립생활권 등)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하였으며, 셋째 날은 장애아동의 권리, 장애부모의 권리, 위탁과 양자 등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하였고, 넷째 날은 가족생활권 보장을 위한 국제적인 연대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마지막 날인 다섯째 날은 지적장애 남성의 동성혼 인정 여부에 대한 모의법정을 개최하여 열띤 변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내용도 있었고, 익히 알던 내용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함께 자신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은 장면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중증지체장애여성인 Frejya Haraldsdottir씨의 기조연설이었습니다. Frejya씨는 장애인시설에서 나온 탈시설의 경험과 아이 위탁양육을 위한 법적 투쟁의 과정을 조곤조곤 얘기하였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거의 움직이기 어려운 와상장애인으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활동지원인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위탁양육하기를 원하여 정부에 신청하였지만 거부당하여 정부를 상대로 위탁양육을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활동지원제도를 통해 아이를 기를 수 있고, 신체적인 양육은 어렵더라도 정서적인 교감과 사랑으로 충분히 아이를 양육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심에서도 패소하였으나, 레이캬비크 항소법원은 아이슬란드 정부가 그녀의 입양자격을 적법절차(due process)에 따라 심사하지 않았다면서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현재 사건은 정부의 상고로 아이슬란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합니다. Frejya씨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장법회 멤버들 간에도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가족의 권리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권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현재의 한국에서라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과 절대적으로 부족한 복지여건 때문에 굳이 입양을 해서 아이를 기르려는 장애인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주제까지 논의된다는 것이 상당히 놀라웠고,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일랜드 국제장애법 연수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위해 문자자막 서비스와 수화가 함께 제공되었고, 온라인 링크를 연결하면 스크립트를 노트북으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장법회 멤버 중에 탁월한 영어 실력을 보유하신 몇몇 분들은 구글독스(google docs) 공유를 통해 한국어로 해당 내용의 개요를 작성해서 실시간으로 공유해주었습니다. 저도 이런 지원을 통해 강의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지원제도는 비장애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됨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장애 친화적인 교육환경이 우리나라 모든 교육과정과 연수프로그램에도 도입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드디어 5일간의 국제장애법 연수 일정이 끝나고 수료식 및 시상식을 진행되었습니다. 연수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한명씩 앞으로 나가 수료증을 받았습니다. 대단하진 않지만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더욱 뿌듯했던 것은 우리 장법회 멤버이자 시각장애 당사자인 김현아 변호사(미국 미네소타 주 변호사)가 마지막 날 모의법정에서 최고 변론상을 받았고, 우리 장법회가 최고 포스터 프리젠테이션상을 받은 것입니다. 장법회는 오픈 소사이어티재단의 후원에 부합하였고, 2020년 말(혹은 2021년 초)경에 진행될 아시아–태평양 지역 장애인법 연수를 추진하기 위해 아일랜드 장애법연수 사무국과 긴밀한 미팅을 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보니 아일랜드에 있었던 시간들이 꿈을 꾼 듯합니다. 한국에 돌아오는 날 바로 업무에 복귀하여 다시 일상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일랜드 국제장애법 연수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장법회 멤버들과의 깊은 교류를 가졌고, 이들의 배려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오픈소사이어티재단과 장법회 그리고 우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감사 말씀을 드리며 연수보고를 마무리합니다.
글_ 염형국 변호사
ps. 아일랜드는 살면서 한번 가볼 만한 곳이에요. 길거리 버스킹과 기네스 맥주,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공기, 공연과 떼춤 그리고 술이 어우러진 멋진 템플바까지~^^
염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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