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행복한 노동의 공간으로 변해가길 바랍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거형태는 단연코 아파트다. 아파트는 빌라나 주택과 달리 편리하고 깨끗하며 안전하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간편하고 집을 비웠을 때도 택배수령에 문제가 없으며 진입로는 항상 청결하고 밤늦은 귀가에도 안심이 된다. 경비업무부터 각종 허드렛일까지 24시간 도맡아 하는 아파트 경비원이 있기 때문이다.
공감에서 일을 시작한 지난 4월, 선배변호사인 윤지영변호사로부터 아파트 경비원들의 노동현실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파트 생활을 수년간 해봤지만 경비원들의 일상은 모르고 살았다. 마침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아파트 경비원의 근로조건 개선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윤지영변호사와 함께 무작정 찾아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노원구에서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노원노동복지센터에서 경비원들을 만나 추려낸 요구 사항은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었다. 해고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고용을 보장하자. 무급휴게시간에는 쉴 수 있도록 하자. 관계법령이 보장하는 휴게시설을 요구하자. 실업급여와 퇴직금은 경비원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들을 관철하기 위해 ‘노원구 아파트 경비원 모임’을 조직하고 구청과 입주민들, 용역회사에 경비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자.
결국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경비원모임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경비원 모임에 나와 달라는 유인물을 들고 노원구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다. 한분씩 붙잡고 경비원 모임을 알리며 참여를 호소했다. 경비원들과 만나온 지난 6개월, 조금씩 알게 된 그들의 일상은 다음과 같았다.
경비원들은 A조와 B조로 나뉘어 24시간 맞교대로 일한다. 새벽 6시에 근무가 시작되면 입주민들의 쾌적한 출근을 위해 이중 주차된 자동차를 밀어준다. 밤새 쌓인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화단을 가꾼다. 주차장과 진입로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담고 택배를 수령한다. 점심시간에는 지하실로 내려간다. 석면가루가 비치는 침침한 불빛아래, 쓰레기 정리하다 주워온 매트리스 위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외부차량 통제도, 후미진 계단 청소년들의 일탈행위에 대한 계도도 모두 경비원의 일이다.
휴게시간에 잠시 쉬다가도 복도에 전등이 나갔다는 인터폰이 울리면 전구를 갈러 올라가야한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입찰을 통해 관리계약을 맺는 용역회사로서는 입주민의 민원이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다. 따라서 용역회사가 경비원들에게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각종 민원에 성심껏 대처하라는 점이다. 경비원들에게는 입주민 모두가 사용자로서 고용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자칫 입주민으로부터 불만이 제기되면 해당 경비원의 고용은 그걸로 끝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부당한 해고로부터 보호하지만, 3개월마다 사직서와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며 근근이 일하는 경비원들에게 해고를 다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남의 이야기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같은 아파트에서 수년을 일했어도 그 사이에 용역회사가 바뀌었다면 계속근로가 아니라고 한다.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령 남성들의 마지막 일자리까지 깊게 파고든 간접고용의 사슬이 경비원들을 옭아매고 있다. 당연한 듯 받아들여야 하는 가혹한 근로환경, 어디까지가 업무 범위인지 알 수 없는 각종 민원들, 아무리 성실하게 일했어도 근로계약이 해지되면 묵묵히 짐을 싸야 하는 불안한 일상에 시달리면서도 입주민에게는 항의할 수 없고 용역회사에게는 항의가 무의미한 상황. 이것이 경비원들이 처한 현실이다.
얼마 전 한 아파트단지에서 경비원이 분신하는 사건이 있었다. 특정 입주민의 부적절한 태도가 도마에 올랐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간접고용이 경비원을 항상적인 불안상태에 내몰고 있으며, 입주민의 하대도 이 같은 불안한 현실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이다. 경비원의 고용이 안정되고 아파트 경비업이 양질의 일자리로 자리매김 될 때 비로소 경비원에 대한 처우는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노원구에는 3000여명의 아파트 경비원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6개월의 활동기간 동안 약 300명의 경비원들이 모임에 가입했다. 꽤 많은 아버님들과 제법 친해지기도 했고 경비원모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점차 깊어지고 있다. 갈 길은 멀지만 그간의 성과도 상당하다.
최근에는 경비원모임을 노조로 전환해서 고용안정을 보장받자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5. 1. 1.부터 경비원에게도 최저임금을 현행 90%에서 100%로 적용하게 되는데, 아파트 현장에서는 관리비 상승에 대응하고자 대량해고가 예상되고 있다. 이에 관해 노원구에서는 경비원들 사이에서 공동대응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 연말과 내년 초, 노원구 아파트에서는 단 한명의 경비원도 해고되지 않도록 지역사회에서 공동의 논의를 전개할 계획이다. 부디 노원구가 선례로 남아 전국의 아파트 경비원들이 보다 나은 일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아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가 인간과 인간이 즐겁게 마주치는 행복한 노동의 공간으로 변해가길 바란다.
글_김수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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