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노예 피해자 국가배상소송 항소심 승소 – 서울고등법원 2018. 11. 23.선고 2017나2061141 판결
“헌법 제10조에 따라 피고 대한민국은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기본권은 공동체의 객관적 가치질서로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적어도 생명․신체의 보호와 같은 중요한 기본권적 법익 침해에 대해서는 그것이 피고 대한민국이 아닌 제3자로서의 사인에 의해 유발되었더라도, 피고 대한민국은 적극적인 보호의무를 진다.”
‘염전노예 사건’은 지적장애가 있는 노동자들이 전남 신안군 등에 있는 염전에서 길게는 20년 넘게 일했지만,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폭행을 당하는 등 인권침해를 당하다가 그중 피해자 1인이 편지를 보내 2014년 1월에 경찰에 의해 구출되었고, 수십명이 염전노예로 지낸 사실이 밝혀진 사건을 말합니다.
63명의 염전노예 피해자 중 상당수가 장애인이었는데, 염전주들은 이들이 지능이 낮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점 등을 악용해 숙식 제공을 빌미로 임금을 주지 않고, 수시로 폭행하는 등 이들을 자신의 노예로 부렸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상태에 놓여 있었고, 그 지역에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며, 지척에 파출소와 면사무소가 있었지만 주민을 보호해야할 이들은 오히려 이러한 관행을 묵인하거나 방조했고, 그럼에도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2015년 11월 공감의 변호사를 포함한 염전노예 피해자 공동변호인단이 염전노예 피해자 8명을 대리하여 경찰·고용노동지청·지자체 누구도 지적장애 노동자에 대한 노동력 착취 행위·폭행 등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국가와 해당 지자체를 상대로 각 3천만원씩 모두 2억4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2017년 9월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에 대해 위법한 공무집행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나 주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고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청구가 기각된 원고 중 3명은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러나 2018년 11월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민사1부)는 1심을 뒤집고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법원은 “인권유린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원고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장기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경제적 자립능력이 없는 원고들은 각별한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정신장애인 또는 이에 준하는 인지능력만을 갖춘 사회적 약자이고, 가족과 사회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었으며, 외딴 섬에서 때로는 가혹행위와 인격적인 수모를 감수하면서 대가 없이 장기간 중노동을 했던 점에서, 당시 원고들은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사건 당시‘장애인을 상대로 한 강제노동의 피해가 적지 않다’는 언론보도가 줄곧 있었고, 이와 같은 폐해가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 되었다. 특히 언론에 보도되었던 강제노동 사건의 발생 장소(전남 신안군 또는 완도군 소재 양식장이나 염전 등), 시기(1997년부터 2012년까지), 대상(정신장애인 등)이 모두 이 사건과 같거나 유사하였던 점에서,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공무원, 근로감독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으로서는 각별한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 관할 경찰 공무원과 근로감독관,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염전노예 상태를 방치하여 피해자들의 피해를 지속되게 하였음을 지적하면서 염전노예 사건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지난 9월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 학대현황 보고 및 노동력 착취 정책 대안 마련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의 17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2018년 1월~6월 옹호기관에 접수된 학대신고 건수는 1,843건, 그중 학대의심사례는 984건에 이릅니다. 하루에 5건이 넘는 수치입니다. 매일 5명 이상의 장애인이 어디선가 어떤 형태로든 학대를 당하고 있다니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2018년 상반기 전국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사례를 분석하고 특히 학대 사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경제적, 노동력 착취에 대한 분석 및 대안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그날 나오신 토론자 한분의 말씀에 의하면 염전노예 사건의 1심 재판을 담당한 판사가 재판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라에서 가족이 지원 못하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그래도 이 염주들이 데리고 있으면서 먹여주고 재우주고 보살펴줬던 거 아니냐?” 장애인은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십수년을 단한 푼의 임금도 주지 않고 말 안 들으면 때려가며 일을 시켜도 괜찮다는 것인가요? 그런 판사들의 인식 덕분에 염전노예 사건은 거의 100% 가해자 염전주들이 실형을 면하였습니다. 항소심까지 가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벌금형, 아니면 무죄, 아예 입건도 안된 사례도 숱합니다. 신안 염전노예 사건 당시 구출되었던 63명(그중 상당수가 장애인입니다) 중 40명이 다시 염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참으로 슬프게도 이들은 자신을 오랜 세월 착취했던 그곳에서만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이들의 자립을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행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수십 년간 노동력 착취를 당한 장애인학대의 경우에 강제근로는 징역 6월~1년(가중요소 있으면 10월~2년6월), 약취유인은 1년6월~3년6월(가중시 3~6년)입니다. 양형이 너무 낮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형평에 맞지 않습니다. 학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미미해서 법원에서 내리는 형벌이 예방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장애인 학대사건에 관해 엄중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노동력 착취 근절 대책을 마련하고,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을 강구해야 하고 장애인학대나 차별사건을 맡는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인식이 확 바뀌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 전체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 염전노예 국가배상 항소심 판결이 장애인 인식개선의 단초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글_ 염형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