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정에 간 공감 – 탈북 아동이 설 곳은 어디인가
열네 살 된 한 아동이 있다. 여성이고 기독교신자고 탈북자다. 다섯 살 때쯤 가족들과 함께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갔고 부모와 헤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영국으로 갔고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홀로 난민신청을 했다. 영국 내무성은 탈북자는 한국 국적자이기도 하고 한국은 탈북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을 기각했고, 아동은 이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이민난민 1심법원은 2015년 북한에서의 박해가능성을 전제로, 이 아동이 한국에서 입국과 체류가 허용될지 불분명하다는 점, 위탁가정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유럽인권협약에 근거한 난민신청 인정 결정을 내렸다. 내무성은 이민난민 항소심법원에 항소했다. 기존 이민난민 항소심법원의 북한 관련 지침이 되는 판례 GP and others (2014)에 의하면 모든 북한 사람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 가게 되면 북한이나 다른 곳에 보내지지 않기 때문에 탈북자는 난민이 될 수 없다.
공감은 2009년부터 영국과 호주의 변호사들로부터 탈북자 난민신청사건 관련 전문가의견 제출을 요청받고 이에 응해왔다. 영국의 대표적인 판례인 GP and Others (2014)와 호주의 대표적인 판례인 SZOUY & Others (2011)에서도 공감이 제출한 의견서가 인용됐다. 문제는 북한 사람의 한국 국적이 가지는 정치적 성격(북한과 한국은 전쟁 중임), 북한 사람 일반에 대한 한국의 대부분 법률 적용의 배제, 보호신청-합동신문-하나원을 거쳐야만 하는 조건부 국적 등등을 근거로 탈북자의 한국 국적은 난민협약에서 보호주체인 국가와 관련된 ‘국적’, 즉 실효적이고 온전한 국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해 왔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부 판결에서는 공감의 전문가 의견을 다소 왜곡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미 1심단계에서도 의견서를 제출했던 위 탈북 아동 사건과 관련해, 2015년 말 변호인 측에서 추가적인 전문가 의견을 요청해왔다. 의견서 제출과 더불어 직접 전문가증인으로 재판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항소심법원에서 공감 구성원이 가능하다면 전문가의견서에 관한 대질심문에 응할 수 있도록 재판에 출석할 것을 요청했고 영국 법률구조기금에서 재판 출석과 관련된 경비를 모두 지원하기로 했다.
공감은 전문가의견서와 법정 전문가증언을 통해 다음을 주장했다.
1. 탈북자의 한국 국적은 본질적으로 ‘귀순과정’을 불가피하게 전제로 하는 정치적 구성물이고, 이 ‘귀순과정’은 난민협약상 박해가능성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수반한다.
2. 강요된 ‘보호’신청은 탈북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치적 견해 표명의 강요로 이어질 수 있고 자의적 국적박탈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3.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중앙합동심문센터)와 하나원에서의 장기구금은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에 이를 수 있다.
4. 법적 근거가 적법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간첩혐의에 대한 강제수사와 구금이라는 취약한 상태를 이용한 광범위한 개인(과거사)정보수집은 극단적으로 심각한 인권침해를 구성할 수 있다.
5. ‘귀순과정’은 아동도 예외가 아니며, 합동신문에서 하나원 과정에 이르는 수개월 동안 법적 후견인이 존재하지 않고 정규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
6. 한국내 탈북자, 탈북 아동에 대한 광범위한 편견과 차별의식이 존재한다.
GP and Others (2014)에서는 합동신문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공감의 전문가 의견서에 대해, 합동심문과정에 그렇게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다면 왜 그동안 국제인권기구나 국제인권단체에서 이에 대한 아무런 지적이 없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래서 이번 의견서와 법정증언에서는 2015년 유엔자유권위원회 최종견해에서 제시된 합동신문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변호인접견권, 이의신청 등에 대한 권고를 강조했다. 다른 주장을 펼칠 때보다 유엔자유권위원회의 권고를 언급할 때 가장 심각하게 경청하는 재판부의 태도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의견서를 준비하며 몇 분과 인터뷰를 했다. 다년간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교육에 헌신해 온 한 선생님은 탈북 청소년들의 국내적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본인의 활동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이 사례처럼 이미 영국에서 수년간 정착이 되어있는 청소년을 다시 한국으로 보내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주셨다. 다소 혼란스러웠던 인터뷰는 정부 담당자들과의 인터뷰다. 외교부 담당 사무관은 탈북자가 합동신문, 하나원 과정을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통일부 담당 사무관은 탈북자가 이 과정을 통해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정치적인 법령에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와 무관하게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는 “탈북자는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자다.”라는 명제가 사실상 무의미함을 확인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아직 많은 수는 아니지만 한국을 거쳐 가지 않은 탈북 난민, 혹은 난민신청자가 미주와 유럽에 다수 존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수가 급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 인권을 내세워 각종 제재조치를 내놓고, 중국내 탈북자 강제송환금지를 외치면서 정작 한국의 법 때문에 다수의 국가에서 탈북자들이 난민으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는 침묵하는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인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인권을 내세우는 이들은 본인들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인권을 내세우는 접근이 아니라 인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접근이 절실히 요구된다.
글_ 황필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