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요 요기, 배달 근로자가 있습니다!
(사진 출처 https://flic.kr/p/8ghTGV)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학생도 돈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알바’라는
이름의 노동현장에 뛰어드는 학생들이 많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알바의
권리를 외치는 혜리가 최저임금 준수와 근로계약서 작성을 강조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바생은
근로자일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법원은
배달일을 하던 알바생이 ‘개인
사업자’라
판결했습니다.
공감은
이 사건 1심
변호사들과 함께 항소심을 시작했습니다.
문제의
사업장은 배달대행업입니다.
사업주
H
씨는
오토바이를 여러 대 마련하고 동네 학생들을 모집했습니다.
지역
음식점들을 찾아다니며 배달 앱을 깔고 사용료로 매달 10만 원씩
받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20개
업체면 월 200만 원의
수입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편
모집한 학생들의 스마트폰에도 배달 앱을 깔아줬습니다.
고객이
주문하면 학생들의 스마트폰 앱이 한꺼번에 울립니다.
먼저
응답한 학생이 음식점에 달려가 사업주의 상호가 부착된 배달통에 음식을 싣고 고객에게 배달합니다.
업계에서는
이런 방식을 이른바 ‘전투콜
배차’라
부릅니다.
그냥
경쟁 수준을 넘어,
아주
전투적으로 일하게 만든다는 뜻이겠지요.
학생들의
배달 건수는 자동으로 기록되고 H
씨는
2주에
한번 씩 건당 수수료를 학생들에게 지급했습니다.
정보화시대의
스마트한 배달업입니다.
기존의
요식업 배달은 음식점에 고용된 배달원이 음식을 배달하는 형태였습니다.
음식점
사장님은 배달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여러 대 구매하고 유지비와 유류비를 꾸준히 지출해야 하며,
배달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했습니다.
배달원에게
매달 급여를 줘야 함은 물론 근태관리도 직접 해야 했고,
사고가
잦은 배달업의 특성상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에도 가입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달 앱을 이용하는 순간,
한 달
10만 원의
앱 사용료에 배달 건당 수수료만 지급하는 것으로 이 모든 리스크를 떠넘길 수 있습니다.
이 점에
주목한 H씨와
같은 배달대행업자들은 아래와 같은 전단지를 지역 음식점들에 뿌렸습니다.
<배달대행업자들이 지역 음식점에 뿌린 전단지>
그렇다면
배달원의 사고와 같은 사업 운영의 리스크는 누구에게 떠넘겨진 것일까요.
H 씨로부터
오토바이를 지급받고 건당 수수료라는 임금을 위해 전투적으로 일하던 K
학생이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였고 산재보험에 들지 않았던 H
씨에게
절반의 책임을 부담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H
씨는
K
학생이
자신의 근로자가 아니라며 산재결정의 취소를 구했습니다.
1심
법원은 K
학생이
근로자가 아니라며 산재처분을 취소하였고 K
학생은
그동안 지출된 치료비 전액을 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업
운영의 리스크는 배달일을 하던 학생에게 떠넘겨졌던 것입니다.
법원이
K학생을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주요 근거는 이렇습니다.
“배달원은
콜이 울려도 받지 않을 자유가 있었고,
건당
수수료라는 점에서 이윤과 손실의 부담이 배달원에게 있었다.
H씨가
출퇴근 시간 등 근무 태도를 엄격히 관리한 사실이 없다.
K 학생으로서는
배달 앱을 여러 개 깔 수도 있고,
그렇게
했다면 다른 회사의 배달일도 할 수 있었기에 H
씨에게
전속된 근로자로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건당 수수료는 근로의 양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성과급입니다.
성과급
근로자를 이윤과 손실의 부담을 스스로 지는 사업주라 할 수는 없습니다.
배달
앱을 여러 개 깔 수도 있었다는 판단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가정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전투콜 방식은 근로자들끼리 알아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콜이
울려도 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보는 것은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해야 하는 근로자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입니다.
전투콜이
있는 한 H씨가
따로 근태관리를 할 필요도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회사 밖에서 업무를 하는 것은 오늘날 근로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배달이나
고객 운송의 경우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이 사건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용자가
제공한 각종 프로그램과 인터넷을 통해 업무 구속력은 예전보다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구래의 근로 현실만을 생각한 채,
사무실이라는
일정 공간에서 면대 면으로 이루어지는 업무지시가 아닌 경우,
즉
스마트워크에 있어서 근로자성을 지속해서 부인하고 있습니다.
배달대행사업은
사업주가 배달 앱 프로그램과 오토바이를 구비하고 배달원을 모집한 후 음식점과의 배달대행계약을 통해 시작됩니다.
배달원들은
오토바이처럼 이 사업의 실현을 위한 구성요소입니다.
사업주는
배달원들이 성실하게 배달한다는 전제하에 음식점들과의 배달대행계약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배달대행계약이
줄어들면 손실을 보게 됩니다.
배달
건당 수수료는 사업의 전제가 되는 성실 배달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배달대행업의 본질적인 이윤과 손실은 H
씨와
같은 배달대행사업의 사업주에게 귀속되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배달원의 사고와 같은 사용자로서의 책임 또한 배달대행사업의 사업주에게 귀속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배달원 또한 H
씨와
같은 동등한 개인사업자라 판단된다면,
신종
배달대행업은 사업주의 사용자 책임을 증발시키고 위험을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탈법적인 사업이 될 뿐입니다.
이러한
탈법을 ‘스마트’하다고
보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신종
배달대행업에는 엄연히 근로자가 존재합니다.
이들은
사장님이 깔아준 프로그램이 울릴 때마다 성실하게 근로를 제공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이윤과 손실을 결정한다는 건당 수수료 책정에 관여할 위치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을
개인사업자라 보는 순간 사고의 위험은 근로자에게 전가됩니다.
“배달업에
배달 근로자가 있다”는
상식이 확인되어야 하는 몹시 중요한 이유입니다.
글_김수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