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포럼] 낙태, 건강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다.
Pro-life vs. Pro-choice? 이분법에서 벗어난 낙태문제, 건강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다.
지난 11월 29일 저녁, 가회동 아름다운 재단 대회의실에서 공감의 11월 월례포럼이 있었습니다. 의사이자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연구원로 활동 중인 윤정원님의 강의와 대회의실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의 화기애애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차가운 12월 날씨도 녹일 수 있을 만큼의 열정적이었던 포럼의 따끈따끈함을 전해드립니다.
여태껏 낙태에 관한 논의는 태아의 생명을 옹호하는 Pro-life와 여성의 자유권,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는 Pro-choice 측면으로 이분화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재생산권 개념이 대두하고 생식권, 재생산 건강개념이 발전해 갑니다. 이는 보편적 인권 차원으로 성관계, 임신, 출산, 낙태를 개인이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으며, 정보와 수단에의 접근권, 과정에 있어서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받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를 계기로 낙태 논의의 패러다임은 “건강권으로서의 낙태권”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윤정원 연구원와 함께 진행한 공감 월례포럼에서는 이분법적인 관점을 탈피해서 “건강권으로서의 낙태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포럼은 점점 강연을 해주신 윤정원 연구원 뿐만 아니라 포럼에 참가한 변호사, 대학생들의 시각에서 낙태권을 확장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낙태를 많이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가장 온전하고 합리적이며 건강한 조건에서 임신, 성관계, 출산, 피임 낙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윤정원 연구원이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임신, 출산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의 메시지입니다. 낙태를 불법화 하면 할수록 안전하지 못한 낙태가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서, 루마니아가 독재정치 하에서 낙태를 강력히 제제하기 시작하자, 모성사망의 87%가 안전하지 못한 낙태로 인한 사망이었다는 것입니다. 낙태의 불법화는 사회경제적 약자계층의 여성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미혼여성이나 난민, 성폭력 피해 여성의 건강권이 불평등적으로 훨씬 침해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우리나라 형법(제 269조, 제270조)과 모자보건법(제14조)의 예를 보면, 낙태는 의학적 〮우생학적 〮윤리적 이유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이 됩니다. 그러나 배우자의 동의롤 요하고 있으며, 태아가 질병을 가진 경우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밖에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수가지의 사회경제적 이유들(경제적 어려움, 혼인상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낙태죄 처벌 현황이나 낙태 허용여부 문제가 역사적으로 인구정책의 방향에 따라 때마다 달랐다는 사실은 낙태죄의 형태나 존재의 이유에 의문을 갖게 합니다.
OECD 주요 국가의 낙태 허용범위 및 낙태율, 모성사망율을 비교한 표를 보면, 무엇보다,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와 같이 본인요청에 의한 낙태까지 허용한 국가의 낙태율이 본인요청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들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멕시코, 폴란드와 같은 몇몇 나라를 제외한 많은 국가들이 본인요청에 의한 낙태, 사회경제적 이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를 통해 낙태 합법화와 낙태율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낙태 허용여부에 관한 법의 개정과 사회적 인식 전환에는 많은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낙태를 안전하게 시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적절한 시기 내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는 것, 안전한 약물 복용을 허용하는 것, 낙태 후에 꾸준히 정신적, 신체적 상담을 받고 케어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까지… 의료적 관점에서 여성의 건강권을 고려하게 된다면, 법학적 관점에서도 사회 경제적 이유에서 평등하게 이러한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의 개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만일 낙태를 허용한다면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시기는 언제인가, 이러한 관점에 대하여 사회적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는 것인가, post-abortion system으로는 어떤 것이 필요한가…와 같이 포럼 참가자들의 열띤 토론과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한 참가자가 ‘이미 결혼과 두 번의 출산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는가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낙태 문제에서 보호되어야 할 산모의 입장이나 진심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접근이 가장 필요한 것 같다.’라는 조언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 조언에서 느낄 수 있었듯이 태아의 생명이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를 다투는 편협한 시각 보다는, 산모의 건강권, 여러 사회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될 수 있는 현실적 요소들이 반영된 낙태문제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근영을 닮으신 어린 나이의 연구원님이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활발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개인적으로 따뜻하고 상큼한 inspiration을 받은 11월의 월례 포럼이었습니다.
글_ 12기 인턴 윤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