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포럼] 비닐하우스촌 주민의 주거권에 대하여
정리: 서범욱 _ 공감 5기 인턴
서울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지에는 보는 사람을 압도할 만큼 으리으리한 대형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그러한 아파트 사이사이로 비닐하우스나 합판을 덧대어 만든 ‘집 아닌 집’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대형 아파트단지와 비닐하우스촌, 이들의 극명한 대조는 현재 대한민국의 주거문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닐하우스촌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비닐하우스촌의 주민들은 어떤 어려움과 불편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이들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 나가기 위해, 공감에서는 지난 7월9일 김영수 변호사가 결합해 활동하고 있는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의 임덕균 팀장을 모시고 “비닐하우스촌 주민의 주거권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비닐하우스촌 형성의 시대적 배경
비닐하우스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비닐하우스촌의 형성은 1950~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및 6.25 전쟁 이후의 국가재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 부산 등의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들 과잉인구 중 상당수는 도시 잡업에 종사하면서 판잣집, 가건물, 토막집 등의 무허가 건물을 지어 거주했으며, 이로 인해 불법 주거지가 다수 형성됐다. 이러한 불법 주거지를 해소하기 위해 1960~70년대에 정부는 시민아파트 건립과 양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시민아파트 건립 사업은 정부가 정리공사와 건물 골조를 시공하고 외간벽 기타 부대공사는 입주자의 자비로 시공해 해당 불법 주거지의 주민 전원을 수용하되 입주자의 실정에 맞는 한도에서 장기 월부로 정부의 투자비를 상환하도록 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불법 주거지 주민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배당 받은 아파트의 내부공사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골조만 지어 놓고 아파트를 배당해 주는 방식으로는 정책적 효과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양성화 정책은 기존 무허가 건물을 대상으로 하여 주민 스스로 건물을 개량할 경우 그 건물을 합법화해주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 역시 주민부담에 의한 주택개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불법 주거지 해소에 대한 정책적 실패와 함께 1980년대에 불어 닥친 재개발 열풍은 비닐하우스촌의 형성을 가속화했다. 1980년대는 비닐하우스촌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 시기에 정부는 서울 강남권 개발에 열을 올리며 무분별한 합동재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불법 주거지들이 철거되는 한편, 투기열풍이 불어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때맞춰 열린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겨서, 도시 미관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철거와 재개발이 성행하게 됐다. 철거지역 주민들에게 높은 집값을 감당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리 만무했고, 따라서 이들은 빈터를 찾아 비닐하우스와 합판으로 집을 짓고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닐하우스촌 형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
흔히 비닐하우스촌 거주는 거주자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즉 거주자 개인의 무능력․무의지로 인해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의 임덕균 팀장은 “비닐하우스촌의 형성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비닐하우스촌 형성의 중요한 계기는 주택정책의 실패와 투기열풍의 확산이며, 이러한 것들은 비닐하우스촌 거주자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는 비합리적인 불법 주거지 해소 정책과 무분별한 재개발 추진으로 불법 주거지 주민들이 설 곳을 잃게 만들었으며, 다수의 국민은 그러한 정부의 재개발에 편승해서 집을 재산을 불리는 도구로 삼아 집값을 폭등시켰다. 그나마 제대로 된 정책이었던 영구임대아파트 건설도 노태우 정권 시절 반짝 지어진 것이 전부이며, 보증금과 월세가 비싸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입주할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비닐하우스촌의 주거 문제는 거주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국민의 문제이며 사회가 나서서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비닐하우스촌의 구체적인 문제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함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과 불편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도 공급 문제이다. 물은 인간이 생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자원이다. 따라서 수도 공급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비닐하우스촌에는 수도가 공급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마을 공동 우물에서 물을 퍼다 사용했으며, 그나마도 가뭄이 오거나 우물이 오염된 경우에는 물을 구할 수가 없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수도가 공급되는 마을이 늘어가고 있는 점은 다행이지만, 아직도 수도 공급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전기 공급 문제이다. 대부분의 비닐하우스촌은 마을의 모든 세대가 하나의 전선에 의지해 전기를 공급받는 경우가 많다. 무허가 건물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전기공급시설을 마련해 주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선에 과부하가 걸려 누전이 일어나기 쉬우며 그만큼 화재발생의 위험도 크다. 매년 수건의 비닐하우스촌 화재가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전기공급방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셋째, 주소지 문제이다. 현재 비닐하우스촌이 다수 위치하고 있는 강남구, 서초구 등지에서는 비닐하우스촌 주민의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받아주지 않고 있다. 2001년 법원이 판결로써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전입신고도 수리해야 한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자체들은 아직까지도 전입신고를 받아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편물을 제때에 수령하지 못해서 과중한 연체료를 부담하거나 소송에서 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아이들 학교를 거주지 주변으로 배정받지 못해 위장 전입한 다른 구에 있는 학교로 매일같이 통학해야 하는 일도 일어난다. 지자체의 주민등록 전입신고 수리거부는 법령과 법원의 판결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하루빨리 시정돼야 할 것이다.
넷째, 체비지 변상금 문제이다. 체비지는 개발사업의 비용에 충당하기 위해서 국․공유로 남겨 놓는 토지를 말하는데, 대부분 빈터로 남아있기 때문에 비닐하우스촌이 많이 형성돼 있다. 정부는 이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에 대해 사용료에 갈음하는 변상금을 매년 부과하고 있으나, 주민들은 이러한 변상금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다. 그리하여 매년 부과되는 변상금에 연체료까지 가산돼 변상금 액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정부도 이들의 사정을 감안해 해당 비닐하우스촌에서 거주하는 동안은 변상금 징수절차를 집행하지 않으나, 이들이 비닐하우스촌에서 이주하는 순간부터 그동안 누적된 변상금을 징수하기 위해 바로 압류 등의 절차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태도는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그 곳에 계속 머무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행정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비닐하우스촌의 해소가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변상금의 전액을 면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닐하우스촌의 해소방안
비닐하우스촌 주민의 주거권 운동의 목적은 계속해서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주거권 운동의 최종적인 목표는 비닐하우스촌의 해소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부의 정책목적과도 부합한다. 비닐하우스촌의 해소방식에는 공공개발방식과 민간개발방식이 있다. 이 중 민간개발방식은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할 만한 충분한 보상금이 지급되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서초구 두레마을 주민에 대해 가구당 8300만원의 보상이 이뤄진 것이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따라서 비닐하우스촌의 해소는 공공개발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개발을 통해 정부에서 임대주택을 건설하고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에게 그 임대주택을 분양해 그들이 안정된 주거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보증금과 월세가 적정하게 책정이 된다면 예전의 정책처럼 주민들이 비닐하우스촌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비닐하우스촌을 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원의 마련 등 여러 가지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지만, 정부와 온 국민이 조금씩만 더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하루빨리 비닐하우스촌의 주민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넘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