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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인권운동? 환경운동? Earth Rights!





[월례포럼]  인권운동? 환경운동? Earth Rights! – 국제NGO ‘Earth Rights International’에서 활동중인 Donowitz 변호사 초청 포럼




지난 12월 20일 정독도서관에서 열린 공감의 12월 월례포럼에서는 미국에서 온 Paul Donowitz 변호사를 초대하여 그가 일하고 있는 단체인 Earth Rights International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버마 출신의 인권활동가 Ka Hsaw Wa와 미국 출신의 변호사 Katharine Redford가 1995년에 함께 설립한 Earth Rights International(ERI)는, 현재 미국 워싱턴 D.C., 태국 치앙마이, 그리고 페루 리마에 사무소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국제 NGO이다. ERI는 특히 거대한 다국적기업들이 저개발국가에서 벌이는 천연자원개발사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인권옹호활동과 환경운동을 접목시킨 형태의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사람과 법의 힘으로 인권과 환경을 지킨다(the power of law and the power of people in defense of human rights and environment)”는 슬로건 하에 지역사회, 풀뿌리 시민운동가, 그리고 변호사들이 협력하여 옹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달에 공감 월례포럼의 초대를 받고 기꺼이 발표를 해준 Donowitz 변호사는 이 단체에서 캠페인 책임자로 일하며 법적 활동과 비 사법적 활동을 모두 포함하여 옹호활동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 Earth Rights International, 어떤 일들을 하나요?


 


Earth Rights International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교육·법률 활동·캠페인이 그것이다.


 


-교육


먼저 교육프로그램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태국에 있는 버마 Earth Rights School로, 이 학교는 문을 연지 벌써 15년이나 되었다. 이 학교의 학생들(버마인)은 8개월간의 교육 과정에서 인권침해 및 환경파괴 실태를 조사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고, 태국에서의 연수가 끝나면 버마에 있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가서 몰래 인권 및 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현지 실태조사 후에 태국에 있는 학교로 돌아와 보고서를 쓰면 졸업하게 되는데, 졸업생들은 관련 운동 분야에서 역량 있는 활동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버마의 인권 상황에 초점을 두고 교육/활동하는 학교가 왜 태국에 있는 걸까? 그것은 80년대 후반부터 계속 군부가 지배해온 버마에서는 이러한 활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버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ERI 활동가들은 가명을 사용하며 매우 비밀스럽게 일하고 있다. 활동가가 체포된 적도 있고 또 활동가 가족의 집에 정부관계자가 찾아와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일어나곤 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ERI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사진을 떠올렸다. 버마 Earth Rights 학교를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활동가와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단체사진이 실려 있다. 모두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로 가려진 채로 말이다. 이렇게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시민운동을 하기로 결심하는 버마 활동가들의 결심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며 그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내 머리 속에 떠올랐다.



ERI는 현재 버마 Earth Rights 학교 외에도 메콩 Earth Rights 학교, Health Earth Rights School 등을 통해 (이 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지구의 권리를 지키는 데 앞장 설 활동가들을 지속적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교육기관들을 졸업한 Earth Rights School 동문들이 졸업 이후에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졸업 후에도 ‘따로 또 같이’ 일할 수 있도록 ERI가 각자 다른 캠페인에서 일하고 있는 졸업생들과 함께 연대하거나 파트너십을 조직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법률 프로그램


다음으로, 이 단체의 법률 활동 프로그램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소송, 그리고 그것을 제외한 기타 법률지원활동이다. 현재 Earth Rights International에는 호주, 미국, 태국 변호사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지금까지 미국의 유니온 카바이드(현재는 미국 다우 화학회사 소유), 콜롬비아의 치키타 바나나 회사, 미국의 석유회사인 쉐브론, 유노칼(2005년에 쉐브론이 인수), 영국-네덜란드계 석유회사인 쉘 등 거대한 다국적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소송을 진행하며 인도, 말레이시아, 나이지리아, 버마 등 전지구적으로 분포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써왔다. 예컨대 ‘야다나(Yadana) 캠페인’이라는 이름 하에 ERI가 한 활동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미국 회사(UNOCAL -now Chevron)와 프랑스 회사(Total)가 참여하는 버마 송유관 공사와 관련하여, 공사 시작 전에 이 사업에 반발하는 지역주민과 군대 사이의 큰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군대에 의한 강제노동, 강제이주, 강간, 그리고 마을을 방화하거나 반대하는 지역주민을 사살하는 등의 끔찍한 인권 침해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ERI는 미국 법원에 이 사건을 제소했고, 승소하였다. 프랑스에서도 이와 같은 소송이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미국 회사와 프랑스 회사 모두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야 했다.



다국적기업의 무책임한 해외자원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을 항상 소송으로만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이 단체에서는 소송 외에도 다양한 법률지원활동을 하고 있는데, 인권위원회 같은 준사법적 제도 이용도 이에 포함된다. 이런 점은 공감의 활동과도 닮아있었다. 공감이 공익법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다 다양한 이슈를 ‘법’을 주된 틀로 이용하여 풀어나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면, Earth Rights International은 환경과 인권 이슈가 맞닿는 지점을 중심으로 책임 있는 기업 활동(Corporate Accountability)과 제도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캠페인


마지막으로, Donowitz 변호사가 담당하고 있는 캠페인 활동이 있다. ERI 캠페인의 목적은 이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수준을 높이고, 정부와 기업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며, 자원개발 사업으로 인한 악영향을 줄이는 것이다. ERI는 특히 버마에서 천연자원개발로 인한 수익이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원개발 사업으로 인해 정부가 외국기업으로부터 얻는 수익이 얼마인지 또 그 수익이 어디에 쓰이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 기업이 정부에게 준 자원개발 수익이 군부가 버마 내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자원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Donowitz 변호사는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을 꼽았다. 그의 이번 방한 일정에는 현재 버마 슈에 가스관/송유관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우 측 인사들과의 만남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그 자리에서 ERI 활동가들이 실시한 실태조사를 통해 모은 현지 주민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기업에 전달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자는 기조는 ERI 지역 캠페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실태조사’ 단계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해당 지역 출신의 스태프가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데, 그 활동가를 중심으로 실태조사팀을 조직하고 옹호활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러한 실태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현지 주민 당사자들 스스로의 정보이다. 이것을 Donowitz 변호사는 ‘우리의 언어보다 그들의 언어가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Earth Rights International은 야다나 캠페인이나 메콩강 캠페인 같은 지역 캠페인 외에도 “Publish What You Pay” 캠페인 같은 제도 개정 목적의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기업이 해외자원 개발 시 해당 국가에 지불한 금액을 공개하게 하는 법 혹은 정책이 미국과 유럽에서 제정되는 데 기여했다. (한국에서도 진보신당 출신의 조승수 국회의원이 이와 유사한 성격의 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으나, 통과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 Earth Rights International이 특별한 이유



발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발표를 원래 계획보다 간소하게 해야 했던 점은 아쉬웠지만, 대신에 질의응답 시간에 좋은 질문들이 많이 나와서 매우 반가웠다. 그리하여 발표에서는 그리 깊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던 부분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Earth Rights”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마지막 질문 기회를 얻은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가 마침 같은 질문을 던졌다. “Earth Rights” 개념의 기저에는 지구의 권리와 사람들의 권리가 분리될 수 없다는 철학이 숨어있다고 한다. 지구의 권리가 침해되면 사람들이 고통 받을 것이고, 사람들의 권리가 침해되면 지구도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earth rights’는 환경과 사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혹은 사람 역시 지구 생태계의 일부분임을 드러내면서 광범위한 인권운동을 하기위해 쓰는 용어라고 할 수 있겠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질문은 ERI가 지역 현지 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어떤 경우에는 인권단체가 운동을 위해 지역 공동체에 접근할 때 단체가 주민들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점한 채 혹은 보호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관계를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ERI는 현장에서 직접 지역 주민들을 만남으로써 인권운동의 구체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그들의 메시지를 ‘대신’ 말해준다기보다는 당사자 스스로의 목소리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활동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보기 좋았다.


 


# ‘복잡하게 얽힌 구조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질문… 그리고 ERI의 활동이 던져준 힌트


 


 Donowitz 변호사의 발표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깨달은 점은 지금의 다국적 자본주의 세계에서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주체, 그리고 다양한 이슈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주가, 연 매출액, 순이익 등의 숫자로 나타나는 돈의 흐름은 실제로는 ‘숫자’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돈의 흐름은 실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다국적 기업과 압제적 정부가 손잡고 저개발 국가에서 자원개발사업을 진행할 경우 지역주민들의 삶에서 그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일어난다. ERI는 그러한 과정에 개입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 개입의 핵심에는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기조가 있다.


 


ERI는 독자적인 캠페인 외에도 다양한 연대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The True Cost of Chevron’이라는 연대체이다. ‘The True Cost of Chevron’은 에콰도르와 같은 아마존 강 유역, 나이지리아, 중동,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쉐브론(Chevron) 석유회사의 사업에 의해 영향을 받는 전세계 모든 이들과 인권·환경운동 단체들을 아우르는 연대이다. 이 연대 참가자들은 매년 쉐브론 사의 주주총회에 가서 시위를 하고, 대중 광고를 패러디하며, 쉐브론에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정부, 연금 기금 등)들과도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쉐브론 사가 보다 철저하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압박한다. Donowitz 변호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진 중에는 이 연대가 쉐브론 주주총회 때 벌인 시위에서 이라크 주둔 경험이 있는 미국 군인이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도 있었다. 그 군인은 쉐브론이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행태에 대해 증언했다고 한다.


 


이 연대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규모 초국적 자본이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동시에 ‘돈의 논리’를 기반으로 한 다국적 자본이 압제적 국가권력과 만나는 현상이 전지구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ERI를 비롯한 많은 NGO도 전지구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배웠다. 그러한 전지구적 대항에 기반이 되는 것이 지역적 현장성이라는 사실은 특히 인상 깊었다. 더 세련되고, 더 발전되었으며, 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가를 만들겠다는 이미지 혹은 명분을 내세운 국가와 더 많은 부를 창출하겠다는 자본가, 그리고 이렇게 골리앗과 같이 거대한 주체들의 움직임 사이에서 생존과 자존에 대해 고민하는 지역 주민들은 모두 동시에 움직인다. Earth Rights International의 활동을 주제로 한 이번 월례포럼은, 그러한 지형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이며 또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 _ 김유경 (14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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