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포럼]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침해 사례와 대응과정
정리 _ 공감 5기인턴 오예진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침해는 ‘신노예생활’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심각한 현실이며 우리 사회 가운데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그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못할 뿐더러, 해당 장애의 특성상 자발적 제보가 힘들다는 사실 때문에 이를 발견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힘들게 적발해 낸 사례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구제할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지원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공감은 6월1일 금요일에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침해 사례와 대응과정”을 주제로 월례포럼을 개최하게 되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김희선 인권팀장님이 활동 과정에서 직접 겪은 사례를 소개하고, 이에 대한 대응 과정이 어떻게 진행됐는가와 그 과정에서 발견한 문제점은 무엇인가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님이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침해 사례 중 특히 성폭력 피해 사례와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침해사례
정신지체장애인이란 지능지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으로, 정신질환을 가진 경우인 정신장애와 구별되는 것이다. 장애 등급표에 의하면 지능지수 70을 기준으로 50 이상 70 이하인 사람을 3급, 35이상 49이하인 사람을 2급, 34 이하인 사람을 1급으로 구분한다. 이들에게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해 생계비와 장애 수당이 지급된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삶이 단지 지능지수와 이에 따른 급수라는 다분히 가변적이고 인위적인 수치기준에 의해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침해 사례는 이처럼 자명한 사실을 무색하게 할 만큼 심각하다. 월례포럼에서 소개된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침해사례와 대응과정 중 몇 가지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정신지체 3급 장애가 있는 37세 남성 이00씨. 그는 10여년 동안 성남에 위치한 가방공장에서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일을 했고, 일상적인 구타를 당했으며, 퇴근 후에는 사장이 구해준 월세방에 가두어졌다. 이 월세방은 밖에서 잠그도록 돼 있어 아침에 사장이 문을 열어주어야만 나올 수 있었다. 그의 주민등록은 말소돼 있었고, 장애 등록도 돼 있지 않았다. 익명의 전화제보로 이를 발견하고 가방공장을 탐문했는데, 담당 경찰은 이씨를 가방공장에서 데리고 나와 봐야 갈 곳이 없는데 그냥 거기 두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씨를 위해 가족을 찾아가 보았으나, 19년 만에 찾아간 아버지는 “원래 아들이 없다”는 말로 이씨를 문전박대했다. 무려 13년간 받지 못한 임금과 번번한 폭력행위, 감금행위를 포함해 고작 500만원의 배상을 받아낸 그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② 정신지체 2급 장애가 있는 여성인 정00씨는 한 노부부와 함께 살며 하루 종일 과수원에서 일한다. 이렇게 일하면서 임금은커녕 그가 먹는 음식은 그가 새벽 5, 6시에 일어나 주변 식당에서 수거한 음식 찌꺼기로 끓인 쇠죽과 황토색을 띠는 삭힌 김치 하나 뿐이다. 그녀의 방은 재래식 화장실 바로 옆에 있는 150cm 정도의 작은 그녀가 혼자 편히 누울 수도 없는 좁은 공간이다. 노부부는 그러나 그녀를 거두어 준 것을 선행이라고 자랑하며 그녀의 장애수당과 생계비를 챙기고 있었다. 처음엔 노부부를 떠나는 것조차 두려워하며 폭력에 길들여져 있던 정씨이지만 일단 그 곳을 나온 후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32년간의 고통으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운 상태였던 그녀는 노부부의 집에서 나온 후 건강과 장애상태가 훨씬 호전됐다. 다만 지난 세월 받은 고통과 상처는 채 다 치유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드러나지 않는 문제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 침해사례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비해 이를 실제로 발견하기는 매우 힘든 편이다. 김희선 인권팀장은 위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정신지체라는 장애의 특성상 자신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나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에 스스로 대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인권침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최근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장애인 권익의 개선이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의 적극적 문제제기와 활동, 참여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신지체장애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개선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염형국 변호사님은 이에 더해, 정신지체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문제의 경우에도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의 특성을 악용하는 사례가 매우 많음을 언급했다. 즉 성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수립되지 않은 정신지체장애인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왜곡해 성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자는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입은 것인지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의 해결이 지난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신지체장애인의 경우 그 특성상 물리적 저항의 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법률적으로 불리한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가진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물리적으로 저항할 능력이 있는데도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해석은 정신지체장애인이 갖는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으며, 저항 능력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게 된다는 점을 염형국 변호사님은 지적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해인지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데 뭐 어떻느냐, 혹은 지체장애인을 돌보는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식의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장애 특성상 자발적인 제보가 힘들고 따라서 제3자에 의한 제보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무관심은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상황 개선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게다가 보호자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에 경우 대부분이 단순히 정신지체장애인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처우에는 무관하게 선행이라고 포장되고 있어 사례의 발견을 더욱 어렵게 한다.
대응과 해결 과정에서의 문제점
위와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사례가 발견된다고 할지라도 그 대응과정에서 여전히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최근 TV 시사프로그램 등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루면서 이 문제가 조명되고 있음은 긍정적이나,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해결에 대한 고민 없이 충격적인 실태를 보고하는 데에 그치며 대부분 시설 수용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식으로 결론을 맺고 있어 이와는 다른 구체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의 제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 스스로 내린 결정이 존중되지도 않고, 그에 앞서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릴 만한 여지가 사실상 없다. 피해자가 원하는대로 가족에게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자식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슬프지만 현실이다. 이처럼 가족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조건 생활시설로 보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러한 생활시설에서도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인권침해를 가한 기존의 보호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경우조차 있다. 성년이 된 이후에는 어느 정도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고용이나 교육을 적극적으로 제공받지 못하는 현실도 정신지체장애인 특히, 성인의 경우에 있어 문제의 해결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 침해는 대부분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폭력에 길들여지게 된다. 설사 폭력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고 해도 자립이 불가능하고 자립하기 위한 고용의 기회 등도 매우 드물기 때문에 별다른 자력 구제의 방도가 없다. 그나마 지급되는 생활보조비와 장애수당도 대부분의 경우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보호자가 착복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를 돌려받기 또한 어려운 실정이다. 물질적인 측면 뿐 아니라, 이런 장기적인 폭력이나 학대, 인권 침해의 경험은 좀처럼 치유되기 힘든 상처로 남아있게 된다.
개선을 위하여
정신지체장애인의 인권 침해는 절대 한 개개인의 비극적 스토리라는 식의 개별적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장애 특성을 고려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김희선 인권팀장님은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실태의 파악이 선행돼야 하는데, 아직은 이러한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단계여서 이를 진행할 것이 시급히 요청된다고 했다. 이후 정신지체장애인의 독특한 상황을 고려한 공적 대응기구가 마련돼야 하며, 성년 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한 성년후견인제 도입과 행정체계의 지원/보호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또한 지금과 같이 무조건 생활시설 입소라는 안일한 대응이 아니라 심리치료와 자립생활을 위한 교육과 훈련의 기능을 갖춘 중간시설로서의 쉼터를 건설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행정적인 차원의 방안과 더불어 사회적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 월례포럼 전까지 한 번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접해 본 적도 없는 나를 비롯해 자리에 참석한 인턴들에게 반성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전 사회적 차원에서 “내 자식도 때리는데 뭐 어때”라는 식의 폭력에 대한 둔감함과 “보호 차원에서 그러는 거지”라는 정당화,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나보다 했지”라는 무관심이 만연해 있음을 통감하며, 다시금 바로 내 주변 상황에 대한 주의 깊은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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