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포럼] ‘줍는다’와 ‘버리다’ – 간접고용과 비정규직법을 중심으로
청소 노동자들을 위한 한글 교실에서 한글 자모 ‘ㅂ(비읍)’을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종이를 구겼고, 던져 버렸다. 버리는 행위를 통해 동사인 ‘버리다’를 익혀 ‘ㅂ’을 기억하게 하려고 말이다. 그리고는 물었다. “자, 이제 어떤 단어가 떠오르세요?” 위의 이야기는,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한글 교육을 진행 했던 ‘살맛’이라는 동아리에서 소개한 사례다. 종이를 던지는 행동을 통해 ‘버리다’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려 했으나, 오랫동안 청소노동을 해 오셨던 노동자들은 ‘줍는다’를 연상했다. ‘버리다’와 ‘줍는다’의 차이가 곧 우리 서로의 차이이며, 우리사회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환경과 상황에 따라 사고(思考)한다. 그리고 그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는다. 아니, 굳이 거창하게 세상을 바라볼 것 까지도 없다. 그렇게 형성된 시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시각을 통해 생각하고, 시각을 통해 행동하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생각, 각기 다른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결국 문제는 시각의 차이다. 노동과 꿈 대표이신 하종강 선생님을 모시고, <노동자 없는 노동현실을 말하다-간접고용과 비정규직법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공감의 월례 포럼을 진행했다.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노동자 문제, 그리고 노동현실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조금이나마 교정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 갖가지 노동현실 중의 하나.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이번 포럼의 목적은 현 시대의 노동현실 대부분이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노동 유연화 정책이 야기한 많은 문제들을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도모해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포럼을 통해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은 갖가지 노동문제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지만,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 지난 몇 년 동안 정부와 재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노동 유연화 정책’과 정책 안에 전제된 노동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노동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또한 하종강 선생님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이의 부정부패, 그 가운데 이익 네트워크의 확장과 고착화를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어느 구청에서 청소비용으로 나가는 액수가 직원을 직접 고용했을 때와 외주를 줬을 때와 별다를 바 없었지만, 청소업무를 담당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이 절반이상 줄었다는 사례를 통해 그 문제점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비정규직은 그나마 진보적인 정부로 평가 받는 참여정부 때 급증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자서전에서도 밝혔듯이 노동 유연성을 수용하고, 정리 해고를 받아들였던 것이 패착이었다. ‘노동 유연성’과 ‘정리 해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노동유연성과 정리 해고를 적절히 받아들일 수 없는 토대 위에 너무 성급히 정책을 시행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하종강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참여정부가 노동 유연성을 수용했을 때, 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하는 유연성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을 같이 높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실 한 번 마음대로 못가면서 10년 동안 일했어요. 어제가 아버님 제삿날인데 못가 뵈었어요. 휴가 신청했다가 내년에 계약 연장 안 될까 봐요.” “야근 끝나면 택시비 없어서 집에도 못가고 신문지 깔고 회사에서 잘 때도 있었고, 회사일 때문에 어머니 임종도 못 지켜 드린 불효도 저질렀습니다.”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보편적 지식수준인 상식(常識)선에서 이해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노동자들의 입장에 대한 이해는 차치하고서라도 ‘상식’ 조차도 통하지 않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은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시각의 문제 파업, 노조, 노동자, 노동문제. 수많은 노동현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 과연 어떨까? 나부터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격과 폭력, 각목, 가스통, 전투경찰, 화**, 경제손실. 꽤 많은 부정적인 단어와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우선 반성부터 했다. 주류 언론들의 ‘왜곡’된 기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 첫째였고, 어떤 사안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을 넘어 당사자들을 마음으로 이해해 보겠다던 내 신념에 대한 반성이 둘째였다. 하종강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다. 우리는 우리의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얻고, 삶을 영위해 나간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 주변에는 노동자들이 없다. 시각의 문제이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라. 우리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자매들 모두 노동자이다. 나와 상관없는 문제가 내 문제가 되었을 때 우리의 시각과 태도는 바뀌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일컫는 선진국에서의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그 정답은 바로 노동조합에 있다. 선진국에는 경찰 노조도 있다고 했다. 소방 노조, 교사 노조, 심지어는 군인 노**지.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한 것이다. 일하는 사람 스스로가 바로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이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만들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청소부들이 파업을 하는 바람에 도시가 쓰레기로 덮이자 시민들이 쓰레기를 모아 시청 앞에 쌓아 올렸다. 파업을 진행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 측에게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형상이다. 근본적인 시각이 다르다. 하종강 선생님은 이러한 시각의 차이가 제도권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했다. 단체교섭을 가르치는 독일의 초등학교, 일터에서의 투쟁과 협상에 대해 가르치는 프랑스의 고등학교. 노동에 대해 이러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사람들의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노동현실을 대하는 자세는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뻔하다. 대한민국만큼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내가 노동자가 아닌데, 온갖 폭력이 난무한 것 ‘처럼’ 보이는 노동현실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노동자들의 집회도 아닌데, 왜 폭력 진압을 하는 겁니까’라고 묻는 어느 신문사 기자의 시각이 곧 우리의 시각이다. 기자의 시각을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노동자=폭력’이다. 기자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졌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겠는가. 기자의 시각에서, 아니 우리들의 시각에서 노동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자, 이제 포지션을 바로 잡아보자.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다. # 노동의 문제, 역사의 문제 적어도 내가 생각한 이번 포럼의 백미는 노동의 문제를 시각의 문제로 그리고 시각의 문제를 역사의 문제로 확장시킨 점이었다. 하종강 선생님은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성을 언급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의식 형성 과정도 없었을 뿐더러, 식민지라는 비정상적인 상황과 독립 직후의 한국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곧 노동 문제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했다. 다시 말하자면,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로의 발전한 사회에서 일어났던 계급투쟁의 역사도 없었고, 해방과 동시에 친일파라고 일컫는 식민지 시대의 부역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기회를 한국전쟁으로 인해 잃게 된 것이 노동문제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왜 그럴까. 한국 전쟁 이후, 친일파 세력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집권세력이었다. 나라를 배신한 전력이 있는 세력에게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집권세력이 국민들을 지배하기에 더욱 용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되었다. 이러한 가치관들이 식민지배와 전쟁 그리고 독재를 거쳐 형성되는 바람에 사회 기저에 노동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지배세력의 정당성이 취약한 사회에서는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기 어렵다. 아직도 기득권층 내에 존재하는 친일세력들과 독재세력들의 편협한 시각 또한 노동문제의 심각한 원인 중의 하나일거란 생각이 든다.
“……줍는다.”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을 주제로 포럼은 진행되었다. 하종강 선생님 역시 무엇보다 간접고용과 비정규직에 큰 비중을 두고 강의를 진행하셨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문제들은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편향된 시각의 문제이고, 그 시각의 형성은 올바르지 않은 수구지배세력 아래에서 형성된 국민들의 왜곡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노동문제를 뛰어 넘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 그리고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진보하는 역사의 방향추를 잡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자세이며, 올바른 사회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이 짊어져야 할 당연한 의무가 아닐까.
글_13기 인턴 김민욱
공감지기
- 이전글 : 사회복귀시설의 보장시설 제외를 위한 간담회
- 다음글 : [이주] 베트남 노동자 파업 구속사건 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