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포럼] 집과 복지, 그 지긋지긋한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보다
2월 11일 금요일 정독도서관 제1세미나실에서 12기 인턴들이 마지막으로 준비한 1월 월례포럼을 가졌습니다. 이번 기수 마지막 월례포럼이니 재미있게 기획해 보자는 취로 동물권, 사회적기업 등 여러 아이디어를 검토해 보았지만 결국 ‘주거와 복지’라는 다소 무겁고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근 진보/보수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가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차기 대권의 핵심 이슈는 복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며, 가수 김장훈이 등장해서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외치는 텔레비전 광고도 방영되고 있고, 매 해 겨울 거론되는 홈리스 및 쪽방촌 주민들 이야기, 그리고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용산참사에 대한 기억 등으로 시기적절한 주제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강사를 어떤 분을 초청할지 고민하다가 주거권 분야에서 많이 알려진 미류 활동가님의 소개로 한국도시연구소 서종균 연구원님을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원님은 ‘주거권은 지긋지긋한 문제’라는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 왔지만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나서 조차도 주거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매우 적은 듯 합니다. 하지만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지금의 주거권 논의는 점차적으로 많은 발전을 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귀찮은 일을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힘들고 재미없는 일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활동해 온 사람들 덕택에 그나마 강제퇴거금지법과 같은 발전이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동시에 주거권 문제를 연구하고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정부와 기업을 설득할 능력이 있었으나 이런 노력을 기울이기 ‘귀찮아서’ 행동을 취하지 않은 다수의 지식인들의 탓이 크다면서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반성의 말씀도 강의 중 여러 번 하셨습니다.
주거권 운동의 가장 큰 문제: 대화의 단절
연구원님이 쓰신 글(“주거권 운동의 역사와 과제”: 2010년 (사)한국공간환경학회 등과 함께 주최한 학술문화제 “도시와 정의, 도시와 권리”에서 발표한 글)에는 주거권 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고립과 대화의 부족이며, 따라서 주거권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주거권 운동 활동가들과 정부, 시공사 등 여러 이해관계자/당사자들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연구원님의 생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주거권운동 활동가들과 함께 해 오면서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주거권운동의 한계와 문제점, 극복 방안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쓰신 글 입니다. 70년대, 80년대부터 철거반대운동으로 시작하여 더 포괄적인 주거권 운동으로 발전해 왔지만, 과거의 ‘1세대’ 주거권 운동과 현재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2세대’ 주거권 운동 사이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정부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아무도 주거권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던 70-80년대의 경험 때문에 1세대 운동가들은 대화하는 경험도, 능력이나 기술도 부족했고,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투쟁적인 방법으로 ‘싸워서’ 약간의 보상금을 받아내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2세대 운동가들은 대화에 더 열려 있으며, 주거권 운동도 공공선을 추구하는 방법의 하나라는 논리를 발전시키고 주거권 운동을 더 세련되게 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주거권 운동의 희망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서종균 연구원님과 함께 2세대 활동가들이 주거권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대화를 통해 주거권의 희망을 찾다
대화를 통해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리 물꼬를 트게 된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영주시의 쪽방에서 매달 주거비로 5만원을 지불하고 계신 50대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 쪽방촌에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어 그 아저씨는 거리로 내몰릴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아저씨는 “내가 주거비용을 한달에 5만원 넘게 내게 되거나, 내가 홈리스로 전락한다면 이 재개발 사업은 나쁜 사업”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이 말이 시공사 측에 전달되었습니다. 이미 공사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고 이 아저씨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둔 것이 없어서 시공사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국토해양부를 설득하여 월세 5만원에 살 수 있는 집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재개발 사업시에 쌍방간의 정보전달만 제대로 되더라도 이와 같은 작은 변화들이 일어날 수 있고, 따라서 주거권 분야에 있어 ‘대화’가 가지는 파급력은 매우 클 것 입니다.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좋은 집을 – 효과적인 주택분양제도 필요
질의응답 중에 우리나라의 주택분양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70년대에는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공급을 늘리기 위해 건설업체가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많은 주택이 미분양 상태로 있는 등 더 이상 실정에 맞지 않는 제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서종균 연구원께서 80년대에 나온 정부 보고서에 “현대에 분양제도는 문제가 있으므로 차차 시장에 맡기는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규제 없는 주택시장은 오히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주택의 수요와 공급을 효과적으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네트워킹을 통해 재미있는 일을 찾아라
참가자 중 어느 분이 예비 법조인들에게 해 주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인지 질문하시자, 연구원님은 김칠중 변호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임대아파트 분양전환 (낡은 아파트 분양가 내리기) 및 아파트공동체 운동을 하신 분인데, 소송을 하기에 힘든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답니다. “혼자서 하면 재미 없지만, 네트워크와 엮이면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시며 그렇게 할 때 새롭게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고, 기분좋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분야 밖의 사람들을 두루 접하고 함께 일하는 경험을 하라는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던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12기 마지막 월례포럼을 마치며..
인권법캠프 직전인데다가 설연휴 다음 주라는 악조건 속에서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아 참석자가 적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지난달에 공감에서 시보를 하셨던 로스쿨 학생분들이 많이 와 주셨습니다.^^ 참석해 주신 분들과 알찬 강연을 해 주신 서종균 연구원님, 그리고 포럼준비팀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글_12기 인턴 고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