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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하마와 별,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 공감 월례포럼에서 나눈, 시설의 문제점과 탈시설 지원체계 구축의 필요성




 


2013년 7월 11일 저녁 7시 정독도서관 제1세미나실에서 탈시설 문제를 주제로 한 공감 7월 월례포럼이 열렸다. 실제 탈시설을 한 김탄진씨 장애경씨 부부를 통해 시설에서의 삶과 그곳을 나오는 과정 그리고 사회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임소연 활동가(장애 인권 발바닥 행동)를 통해 시설의 문제점과 탈시설 지원체계 구축의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들어가면서



포럼은 일명 ‘시설 장애인의 역습’이라고도 불리는 마로니에 공원 8인에 관한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8인의 장애인들이 물 좋고 공기 좋은 산골짜기의 시설을 나와 세상과 마주하게 되는 이 영상을 통해 ‘장애인은 시설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영상이 끝나고 김탄진씨와 장애경씨의 애칭에 관한 퀴즈를 통해 두 분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경씨의 몸은 매 순간 경직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는 줄곧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떨림을 김탄진씨는 ‘춤추는 별’이라는 애칭으로 표현하였다. 김탄진씨는 뇌병변장애와 언어장애 때문에 다하지 못한 말들을 가슴에 담아 17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활짝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애칭을 ‘시 쓰는 하마’라 했다.



포럼에서는 김탄진씨의 시 두 편이 낭송 되었는데 그 중 장애경씨를 생각하며 쓴 시 한 편을 소개해 본다.




나는 행복한 사람


– 김탄진



나는 행복한 사람


장미꽃보다 아름다운


그대하고 살고 있어서


나는 행복한 사람



나는 행복한 사람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그대가 있어서


나는 행복한 사람






별과 하마



본격적으로 김탄진씨와 장애경씨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김탄진씨는 2살 때 연탄가스중독으로 장애인이 되었고, 커가면서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한 부모님에 의해 9살 때 시설로 보내졌다. 장애경씨는 27살까지 부모님과 살았지만, 부모님 걱정을 덜어드리려는 마음에 스스로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다.



시설에서 두 분이 만나게 된 계기는 보치아(장애인 스포츠의 하나로 선수들이 공을 경기장 안으로 굴리거나 발로 차서 표적구에 가깝게 보내는 경기)였다. 김탄진씨가 장애경씨에게 보치아를 가르쳐줌으로써 애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설 원장은 두 분의 사랑을 방해했다. 시설에서는 사랑조차도 원장의 통제하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장애경씨 부모님의 반대도 매우 심했다. 하지만 두 분은 서로 의지하며 몰래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에 먼저 탄진씨가 탈시설을 하였고, 애경씨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 인권단체에 연락하며 무던히 애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애경씨와의 연락을 위해 휴대폰을 사서 보냈는데, 그 휴대폰을 원장이 압수하였다고 했다.




“먼저 나간 지 한 달 후에 휴대폰을 사서 보냈어요. 몰래몰래 전화를 했어요.


그제야 안심이 됐어요. 그런데 휴대폰을 뺏기고 나니깐 절망감에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탄진씨를 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그녀는 밤 10시에 탈출을 감행하였다. 무릎이 다 깨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도 그녀에겐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렇게 탈출해서 택시를 잡았지만 결국 도착한 곳은 경찰서였다. 연락을 받고 온 시설 사람들이 다시 데려가려고 하였지만 애경씨는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짐이라도 챙겨서 가라고 달래던 사람들을 따라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짐을 모두 버려둔 채, 새벽 2시에 연락을 받고 달려온 활동가의 도움을 통해 결국 그곳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시설에서 나와서 탄진씨는 아차산에 있는 체험홈에, 애경씨는 혜화동에 있는 평원재에서 거주하였다. 애경씨는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왕복하며 탄진씨를 만나러 갔다. 1년을 그렇게 다니다 보니 탄진씨가 합쳐서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여 아차산에 보금자리를 찾았고, 지금은 임대 아파트에 당첨되어 살고 있다.



담담하게 때로는 웃으면서 시설에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해주셨는데, 실제 겪었던 상황들은 얼마나 긴박하고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니 두 분의 의지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시설을 나와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냥 모든 게 너무나 좋다. 쇼핑하고 버스도 타고 그냥 다니는 것이 좋다.”




라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 장애경씨의 꿈은 앞으로도 이렇게 건강하게 아프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김탄진씨는 정치외교를 공부해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들을 펼치는 김탄진씨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그렇다면 탈시설은 단순히 거주시설 장애인들만의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장애인들을 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의 심정(공적 지원체계 없이 모든 부담을 진 가족)과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본인의 심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들이 자립하여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적 지원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다면 과연 시설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했을까?




임소연 활동가는 김탄진씨와 장애경씨의 탈시설 과정을 처음부터 함께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힘들고 위험했던 순간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탈시설에 대한 지원 체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서로의 사랑에 대한 믿음 하나로 김탄진씨 자체가 하나의 시스템(국가가 해야 할 탈시설 체계를 대신함)이 되어 장애경씨의 탈시설을 가능케 했다고 하였다. 시설의 폐쇄성 때문에 단체에서 시설로 접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대로 김탄진씨는 스스로 먼저 편지를 써서 장애경씨가 시설에서 나와서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편지를 매일 썼다고 하는데 정말 굉장한 의지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탄진씨에게 있어 자판 하나를 치는 것은 전신운동이나 마찬가지임에도 편지를 매일 쓰신 것이다.






그렇다면 시설에서 나오는 과정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이는 정상적이지 않은 입소과정에서 비롯된다. 장애인 당사자는 배제된 채 원장과 가족들만의 합의로 입소가 결정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증과 장애인등록증, 통장 등이 모두 원장의 관리하에 맡겨진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수급비는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머릿수로 계산되어 일괄적으로 법인의 운영비로 귀속되는 현실에서 자신이 수급권자인지도 모르고 사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를 먹이고 재워주는 고마운 원장의 눈 밖에 나는 일을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시설 거주민들과 원장의 대등한 계약 때문에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이 이런 비정상적인 입소과정 속에서 사라져 버리게 된다.


 



학교나 병원, 군대, 감옥, 그리고 시설은 모두 규율로서 집단생활을 통제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설과 다른 곳들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시설이 아닌 다른 곳들은 정해진 기간이 있지만, 시설은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시설은 형기 없는 감옥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거주시설 장애인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그런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1위였다.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서로의 선호가 고려되며 이해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집단과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통제일변도의 집단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시설에 있다는 이유로 호불호를 무시한 집단적 통제를 따라야만 하는 것일까? 위의 설문조사에서 나온 대답이 한 사람의 응답이 아니라 시설 거주 장애인들 대부분에서 나온 응답이라면 이것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설의 구조적인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설은 공공재일까? 시설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탈시설을 강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대립하는 문제라고 했다. 법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기자본이 들어가는데 그 초기자본을 설립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탄탄한 자본 아래서 그 운영이 계속해서 세습되기 때문에 쉽게 공적영역으로 포섭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정부가 거주시설 혁신 방안을 세우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이유가 대규모 시설이 가지고 있는 이권과 지역경제와의 유착관계를 해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설에 관한 운동이 1기에는 비리 시설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2기에서는 시설의 구조적인 문제(집단적 통제)에 대해서 다루었고, 3기에서는 탈시설 당사자들을 통해 민간(시설) 대 민간(인권단체)의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 대 민간의 다툼은 해결점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이고 따라서 공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과제는 공적으로 탈시설 체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탈시설에 대한 국민의 의식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물론 한순간에 모든 장애인의 탈시설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적인 탈시설 지원 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김탄진씨 장애경씨와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시설에서 벗어나고 있다. 또한, 나가고 싶은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았던 것은 주거 지원과 초기 정착금 지원이다. 현재 서울은 600만 원 전북은 1,000만 원으로 지자체 차원의 초기 정착금이 지원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 단위의 일률적인 지원체계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리고 활동보조 지원의 확대가 필요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장애등급 1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고 2급은 아예 신청 자체가 불가능했다. 올해 겨우 2급까지 확대되었으나, 아직 부족하다. 필요에 따라 활동보조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탈시설한 경우 장애등급을 재심사하고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하는 제도적 모순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장애인 보호라는 핑계로 입소를 강요하고 또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인의 의지를 꺾는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나가면서


 



김탄진씨 장애경씨 부부는 여느 신혼부부와 다를 것 없이 수입을 걱정하기도 하고 ‘어휴 이 사람 하고는 못 살겠다’고 한탄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한바탕 웃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는 어떤 집단을 배제하는 쪽이 아닌 통합하는 쪽으로 정책을 세우고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이라고 떨려 하시는 김탄진씨 장애경씨 부부처럼, 더 많은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자립하여 서로 어울리고 소통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시간이 흘러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장애인 시설에 대해 물어봤을 때 ‘당연히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인데 왜 따로 시설이 필요한가요?’ 하고 되묻는 그런 상황이 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글_ 이준석(17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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