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회권 규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토론회를 다녀와서
“국제시스템상 인권 보호의 역사적 간극을 메우는 이 선택의정서는…보편적 인권 역사의 진정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나비 필레이 (Navi Pillay)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의 유엔총회 보고 중에 했던 말이란다. 이 선택의정서를 비준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인권 역사의 큰 획이자, 온몸으로 외치고, 투쟁해야만 했던 많은 이들의 작은 결실이란 말이다. 그만큼 의미 있고, 귀중하고, 비장한 토론회를 가는 발걸음이 왜 이리도 엄숙하지 못할까?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까지 가는 길,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린 개나리, 벚꽃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어찌나 가로막던지……
숱한 유혹을 뿌리치고 의원회관 토론회장에 들어서니 토론회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토론회는 두 가지 세션으로 이루어졌다. 세션 1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이찬진 위원장을 좌장으로 한 「국제인권기준을 통해 본 국내 사회권 보장 실태」로 노동권 (민주노총 이승철 정책국장), 주거권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이원호 활동가), 사회보장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상임활동가), 여성인권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 국제연대센터장)에 관련한 발제였고, 세션 2는 국회경제사회정책포럼 박원석 의원을 좌장으로 한 발제 및 토론회였다. 신혜수 사회권 위원회 위원의 “유엔 사회권 위원회 경향과 쟁점” 발제와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의 “사회권 규약 이행과 선택의정서 비준에 대한 의견” 발제가 있었고, 정부 관계자들과의 토론이 이어졌다.
사회권 규약 선택의정서란?
사회권 규약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의 줄임말로서 노동권, 사회보장권, 교육권 등을 규정한 대표적인 국제 인권법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사회권 규약을 비준하여 당사국이 됐고, 현재 이 조약의 전체 당사국 수는 160개다. 선택의정서는 이 규약의 이행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별도의 조약을 말한다. 선택의정서는 해당 국가에 의해 사회권 규약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 또는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제3자가 유엔 사회권위원회에 권리 침해를 진정할 방법과 절차를 담고 있다. 200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후, 정식 국제법으로 발효되기 위해서는 10개국 이상의 비준이 필요했는데 그 10번째 비준을 얼마 전에 우루과이 정부가 한 것이다.
사회권 규약 선택의정서의 내용에서 눈여겨볼 것은 개인통보제도이다. 즉 유엔사회권규약 선택의정서 제1조에서의 “당사국은 사회권위원회가 사회권 규약상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진정을 접수하고 심사할 권한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 동의한다”라는 규정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 정부는 유엔사회권규약 선택의정서를 비준은 물론 서명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유엔기구의 권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려 중’, ‘비준 필요성과 비준에 따른 영향 등에 관하여 검토 중’ 라는 뜻만을 표명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정책과 법제도가 광범위하게 국제심사의 대상이 됨으로써 당사국과의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과다한 국가적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으며, 국제심사의 일관성·통일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선택의정서는 정부가 이미 법적 의무로서 수용한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는 사회권규약을 근거로 하며, 국내에서 구제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국제적 구제에 있어서의 비용지출은 당연히 감수하여야 할 것이며, 각 당사국의 구체적인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은 사회권규약 제2조에서 표방되어 있다. 선택의정서의 의의에 비추어, 그리고 이를 비준하지 못할 그 어떠한 법적인 걸림돌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비준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국회는 정부가 조속히 유엔사회권 규약 선택의정서를 서명, 비준할 것을 촉구하여야 하고, 정부는 민생경제가 강조되는 현 시점에 걸맞게 서명, 비준에 적극 나서야 한다.』 – ‘황필규 변호사 발제문‘에서
토론에서도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었다. 계속 검토 중이고, 계속 조사 중이란다. 그나마 검토 중이라는 법무부 관계자와는 달리, 외교부나 노동부에서 온 담당자는 토론과 무관한 말만을 앵무새처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귀에 경을 읽혀도 이보다 낫진 않을까? 선택의정서의 의의와 필요성은 토론회의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느꼈다. 정부 관계자들만 제외하고.
맺으며
토론회를 마치며 돌아오는 길. 아침에는 그리도 예뻤던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가 났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왜 정부 담당자들은 마치 남의 일 이야기 하듯 말하는 것일까. 그들이 당사자라면 그렇게 방관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검토한다는 것이고, 언제까지 조사한다는 것일까. 이 일이 누구는 부정하고, 몇몇 사람들만이 걱정해야 할 일의 문제일까. 지하철에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다들 행복하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어디에서는 단지 살아갈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이 있다. 정부도 돌보아 주지 않는 그들은 누가 보살펴 주어야 할까?
난 곧 아빠가 된다. 요즘 잡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탈이지만 오늘 생각이 하나 추가되었다. 어느 날 아이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냐고 물어보면 과연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대한민국은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인권대국!” 후자를 뿌듯이 말하며 아이와 수다 떨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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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임석민(17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