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과 인신매매 – 「동아시아의 인신매매와 효과적 대책」 국제회의에 다녀와서
‘이주노동은 인신매매일까’, 이주노동 사건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자발적으로 국경을 넘어왔고 형식적으로는 원하는 때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주노동을 인신매매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차별적, 반인권적 이주노동정책을 입안하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점, 즉 이들에게도 자유가 있다는 점을 주요한 논거로 삼는다. 그러나 노동조건이나 업무 내용에 대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한 채 입국하였다가 (만약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미리 충분히 알았더라면 과연 대한민국에 들어왔을까), 브로커 비용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게 이주노동자의 현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노동을 인신매매로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 이는 결혼을 목적으로 한 이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주여성들은 자신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 제대로 알지 못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남성과 결혼을 하고 결혼 후 식모나 씨받이, 즉 성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고민을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동아시아의 인신매매와 효과적 대책」이라는 국제회의가 그것이다. 이 국제회의는 「동아시아의 인신매매와 법제도・운용실태의 종합적연구」 프로젝트 주최로 지난 12월 10일, 11일 이틀 동안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 대학 키누가사 캠퍼스 평화뮤지엄에서 열렸다. 참고로 리츠메이칸 대학은 서승 선생이 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코리아연구센터’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대학이다. 총 4부로 진행되었는데 1부에서는 ‘동아시아 및 일본의 인신매매와 대책의 현 단계’라는 큰 주제로 미국 George Mason 대학의 Louise Shelley 교수, UN의 Matthew Freadman 박사, 일본 메이지 대학의 사이토유리코 교수가 인신매매의 개념, 형태, 실태, 방지책 등 인신매매 전반에 관해 발표를 하였고, 2부에서는 ‘인신매매의 현상과 과제’라는 큰 주제로 태국 Chamber of Commerce 대학의 Pisawat Sukonthapan 교수, 필리핀의 Golda Myra R. Roma 연구관, 중국사회과학원 법학연구소의 Chen Genfa 교수,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가 각국(태국, 필리핀, 중국, 한국)의 인신매매 현상과 과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3부에서는 ‘일본의 노동착취와 인신매매’라는 큰 주제로 리츠메이칸 대학의 요시다 미키오 교수가 ‘일본의 노동착취 인신매매의 현상과 과제’에 대해, 일본 전통일 노동조합의 토리이잇페이 씨가 ‘노동연수, 실습생 문제’에 대해, 오노데라노부카츠 변호사가 ‘노동연수생, 실습생 소송의 현재’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인신매매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이주노동 실태 및 제도에 대해 발표를 했다. 4부에서는 지금까지의 발표를 토대로 전체 토론을 하였는데 인신매매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문제부터 일제시대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정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첨예한 문제까지 열띤 논의가 진행되었다.
국제협약상 인신매매란 사람에게 협박이나 완력을 행사하거나 또는 강제납치, 사기, 기만, 또는 권력을 남용하여, 혹은 희생자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하거나, 희생자에게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의 동의를 얻기 위해 보수나 편익을 주고받는 방법을 통해, 착취할 목적으로 희생자를 모집하거나, 유배, 이송, 가두거나, 또는 인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착취란 성매매를 비롯한, 여러 다른 형태의 성적 착취행위, 강제노동력 동원, 노예, 노예에 준하는 행위 및 노예상태, 신체장기를 척출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이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노동 착취만 인신매매에 포섭되는 것은 아니며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주노동 역시 인신매매에 포함될 수 있겠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인신매매가 아직도 동남아시아 및 중국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인신매매로 인정될 경우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의 문제로 인하여 인신매매에 대한 논의는 아직 그 범위가 좁은 상황이다. 그 결과 강제결혼이나 매춘이 주된 논의 대상인 이주여성의 경우와 달리 이주노동, 특히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은 인신매매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반적인 의견이며 인신매매에 관한 법제 개선 운동도 이주여성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이주노동자를 연수생이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하는 한국의 고용허가제도를 모범으로 삼거나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고용허가제도는 형식적으로는 강제노동을 금지하지만 사실상 강제노동 및 노동착취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고용허가제도는 산업연수생제도와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법 제1조는 “이 법은 외국인근로자를 체계적으로 도입• 관리함으로써 원활한 인력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사용자는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 하에서 알선 받은 이주노동자를 원하는 만큼 사용할 수 있다. 국가는 중소기업에 이주노동자를 중개, 알선하고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통해 국익을 증대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는 자발적으로 한국에 들어왔지만 입국한 순간부터 자유로운 결정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의 노동은 오로지 사용자의 뜻에 따라 결정되며, 정부는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이주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자의 역할을 맡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합법적인 인신매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인신매매의 개념은 생물과 같다. 시대에 따라서 그 개념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주노동을 인신매매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글_윤지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