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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이주와 난민

[이주]농촌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사건


1.


 


모두 떠나버린 농촌으로 가는 젊은 사람들이 있다. 결혼 이주여성이 그렇고, 일손이 없는 텅 빈 들판과 하우스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다. 그렇게 가장 토착적인 지역 농촌에서, 가장 국제적인 ‘풍경’과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농촌은 하나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 풍경 속의 관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시선이 보지 못하는 ‘상처’들이 있다.


 


 


2.


 


이주‘여성’노동자 A씨의 이야기는 그 풍경 속 ‘상처’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대면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태국 사람인 A씨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해 전남 영암군의 한 화훼농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고된 일이었다. 월급도 제 때에 지급되지 않았다. 농원에서의 일은 하우스에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혔다 펴고,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하루의 일을 마칠 때가 되면,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곤 했다. 그러나 작업이 끝난 후의 휴식이 제대로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일이 끝난 후에는 한국인 ‘사장’이 안마를 요구하는 등 성적인 폭행과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A씨와 4명의 동료들은 성추행과 임금체불을 이유로 사업주를 고발했다. 성추행 고발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 종결되었다. ‘증거’가 없으면, ‘상처’도 없다고 보는 것이 법의 눈이다.


 


 


3.




불행 중 다행, 임금체불 부분은 지방노동사무소에서 인정되었다. 그러나 A씨와 동료들이 제기한 체불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에서 1·2심 법원은 모두 사업주에게 체불임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한다. 이번에는 ‘증거’가 아니라 ‘해석’이 문제였다. ‘공감’은 상고심 단계에서 이 사건을 수임하여 소송을 진행했다.


 


하루 10시간을 일했다면, 일반적으로는 11시간(8시간+2시간×1.5))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제63조의 규정은 그와 다르다. 제63조에 의하면 농축수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과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규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연장근로(2시간)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연장근로에 대한 가산수당(1시간)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당사자간에 다른 합의가 있다면 어떤가, 또 최저임금법을 고려한다면 달라지는가?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들이 지급받아야 하는 임금이 11시간, 10시간, 8시간의 세가지 중 어느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1·2심 법원의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대한 해석은, 10시간을 일했더라도 8시간 임금만을 지급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2심 법원은 “근로기준법 제63조 제1호에서 규정한 사업장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이 규정하는 연장 및 휴일근로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매월 지급되는 임금에 총 근로에 대한 대가가 포함되어 지급되는 것”이라는 이유를 제시하였다.


 


반면 대법원은 10시간의 임금을 지급해야한다는 입장에서, 원심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9다51158) 이 사건 근로계약서에「근로기준법」제63조 제1, 2호에 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연장, 야간, 휴일근로에 대해서는 시간외 근로수당 지급”이라는 기재가 있고, 정규근로시간 이외에 2시간의 추가근로를 기재한 이상, 계약서상에 2시간의 통상임금은 지급한다는 당사자간의 합의가 존재한다는 점이 대법원 판결의 근거였다.


 


원고들의 상고이유는 설사 당사자간에 합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추가근로(2시간)에 대한 통상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결과가 되는 경우에는 제63조가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였으나, 이 부분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은 ‘생략’되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대법원 판결은 이후 표준근로계약서를 수정하여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상처’에 대한 분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상처’를 대면하는 법원의 ‘해석’은 관계 속 약자의 현실을 온전히 고려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4.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이 사건은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A씨와 동료들이 11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근로기준법 제63조의 제1, 2호는 농축수산업이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는 등 근로시간이 불규칙하다는 업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계화된 대규모 영농이 이루어지는 곳에서의 근로 환경은, 이전 법률의 취지와는 다른 것이 현실이다. 이 사건 태국인 노동자 A씨의 경우처럼,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며 날씨와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반 제조업 노동자와 동일한 수준의 근로를 요구하는 사업장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수 없다면, 근로기준법 제63조 제1, 2호는 풍경 속의 상처를 외면하는 규정이 될 것이다. 오늘의 ‘현실’을 모르는 낡은 법률인 것이다. 이 부분은 법을 개정하는 ‘입법’의 몫이다.


 


 


5.


 


새로운 풍경은 새로운 상처를 만들기 마련이다. 농촌 속 이방인들의 풍경과 상처는 선과 악,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의 대립구도로 재단할 수 없는 문제다. 소외된 농촌이 소외된 이방인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 현실을 아프고 정직하게 대면하여야 한다. ‘증거’(우리의 관심)와 ‘해석’(법원), ‘법률’(국회)이 그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것, 그것이 소외된 농촌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글_정정훈 변호사


 


[관련기사 : 법률신문 2010. 1. 5.]  “근로계약체결시 초과근로수당 지급약정했다면 예외업종 근로자도 수당 받을 수 있다”


 http://www.lawtimes.co.kr/LawNews/News/NewsContents.aspx?kind=&serial=5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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