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아피왓은 이주노동자다
아피왓은 이주노동자다. 아피왓은 2007년 7월 18일 한국에 들어온 후 3년의 체류 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일을 해왔다. 회사도 아피왓과 계속 일을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3년의 체류 기간이 끝날 무렵 회사는 아피왓과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로 약속했다. 참고로 기존의 고용허가제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3년의 체류 기간이 끝나면 무조건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2009년 10월 9일에 개정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고용허가제법’)은 3년의 체류 기간이 끝난 경우 이주노동자는 그 기간을 2년 더 연장해서 한국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고는 체류 기간의 만료를 앞두고 벌어졌다. 체류 기간 연장 신청 기간을 도과하여 연장 신청이 이루어진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기간 도과를 이유로 기간 연장을 거부했다. 아피왓은 억울했다. 아피왓은 법규상 3년의 체류 기간이 끝나는 날로부터 15일 전(2010. 7. 2.)까지 재고용 연장 신청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체류 기간 연장의 당사자가 바로 아피왓이니까. 그래서 아피왓은 연장 신청을 서두를 것을 회사에 요청했다. 그러나 회사는 아피왓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고, 고용노동부는 바뀐 제도를 회사에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다.
2010년 8월 6일 공감에서는 아피왓을 대리하여 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또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함께 2010년 8월 10일 정부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체류 기간 연장의 당사자인 아피왓이 체류 기간 연장 신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법은 사용자만이 체류 기간 연장 신청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행법제가 ‘노동’허가제가 아닌 ‘고용’허가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주노동자가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것을 허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를 원하는 국내 사업자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이주노동자에게는 결정권한이나 신청권한이 없다. 이주노동자는 사용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사업장을 변경하기 어려우며 사용자가 신청하지 아니하면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도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용자는 이를 빌미로 이주노동자에게 강제 근로를 강요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들어오면 먼저 국내 취업활동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작 결정권한이나 신청권한을 행사할 사용자에 대해서는 이주노동자 고용에 따른 교육 의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아피왓 사례처럼 바뀐 법 내용을 이주노동자는 알아도 사용자는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가 적은 사용자로서는 안일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용자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개정된 법규 내용을, 사용자가 먼저 스스로 알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주노동자 고용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나서서 개정된 법규 내용을 사용자에게 안내하고 교육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가 한 것은 팩스 보내기와 문자 알림 서비스가 전부다. 사용자의 잘못과 정부의 안일한 조치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이주노동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주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다. 필요한 때에 언제든지 마음대로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 역시 노동자이고 사람이다. 국적이 다르다는 것은, 비전문 인력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들을 배제하고 객체로 취급할 정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글_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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