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2일, 공감이 국경을 넘어 인권활동을 하는 법_황필규 변호사
일본변호사들과의 첫 교류는 2005년이었다. 당시 난민사건 지원을 처음 시작하면서 동일한 사유로 승소를 한 일본 사례를 알게 되었고 그 사건을 담당한 Watanabe Shogo 일본변호사님과 연결되었다. 두 박스나 되는 소송자료를 받아보았고 증거로 제출한 일본 항소심 판결문은 국내 재판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후 관여하고 있는 정책이슈나 개별사건 관련하여 서로 자문을 구하고 지원하는 관계가 유지됐다. 2007년부터 시작된 난민법 제정 논의에서도 먼저 논의를 시작한 일본 변호사들, 단체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한국에서 난민법이 통과된 후에는 일본에 초대되어 일본변호사들의 난민법 제정 전략회의에 자문을 하기도 했다.
이주민 인권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교류의 장이 마련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2010년 일본변호사회연합회가 주최하고 공감과 도쿄공설법률사무소가 공동으로 주관한 한일 이주민 인권 세미나를 들 수 있다. 당시 도쿄공설법률사무소의 Suzuki Masako 변호사님이 주된 협의의 상대였는데 지금은 Watanabe Shogo 변호사님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 그 전후로도 이주민 인권을 위해 일하는 여러 일본 변호사들과 국제결혼, 산업연수생제, 귀화, 무국적자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하여 상호자문하며 관계를 유지해 왔다.
최근에는 과거 공감에서 자원활동을 했었고 현재는 Human Rights Now라는 일본 소재 국제인권단체에서 사무차장으로 일하는 김창호 일본변호사님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다국적 기업과 인권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공감은 기업과 인권문제, 특히 해외한국기업의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지난 10여년간 해왔지만 일본, 중국, 인도 등에서는 관련된 일을 하는 변호사나 단체를 거의 찾기 어려웠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 국가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자하는 변호사들과 단체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교류와 공동행동의 출발과 중심에 일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김창호 변호사님이 아시아 법률가들의 조직인 로아시아 총회에서 기업과 인권 관련 발표를 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동안 비싼 참가비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분위기를 보고 싶었던 로아시아 총회이고 다른 만남의 기회들이 마련되거나 스스로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아 수락했다.
9월 21일(목) 오전, 로아시아 총회의 기업과 인권 세션이 Emi Sugawara 오사카대 교수님 사회로 진행됐고 일본, 홍콩, 인도에서 기업과 인권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공익변호사, 로펌변호사, 국제단체변호사 등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공감도 한국의 기업인권 상황과 법률가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다국적기업 감시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재정적 기반의 문제, 법적 구속력 있는 다국적기업 규제 국제인권법의 필요성 등의 문제에 대하여 질의응답이 오고갔다. 아시아 내 기업과 인권 관련 지역차원의 감시의 가능성이 점점 싹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로아시아 차기회장으로 당선된 최정환 광장 변호사님과 로아시아의 인권사업과 관련해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21일 오후, Watanabe Shogo, Suzuki Masako 변호사님 등이 일하고 있는 Izumibashi Law Office로 향했다. 최근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등 여러 권리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일본변호사들에게 자문을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은 2012년 몽골인 고등학생의 강제퇴거 사건을 계기로 실천적인 이주아동 관련 네트워크가 구성되었고, 이주아동과 관련된 기본법 제정운동, 의식개선 캠페인, 개별 사건에 대한 개입 등의 활동을 해왔다. 일부 지침을 변경시키기도 하고 특히 개별 사례들의 경우 비록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체류권을 부여받게 한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인도적 체류허가제도인 “재류특별허가”제도가 함께 논의되었는데 자세히 들어다보니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부여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일본의 제도가 적어도 한국보다는 앞서있었다. 자문을 하러갔다가 자문을 받고 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21일 저녁, 아직 일본에는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전업적으로 일하는 공익변호사(단체)에 대하여 관심 있는 일본변호사들 약 30명을 대상으로 일본변호사회연합회 건물에서 일본판 공익변호사 활성화를 위한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다. 공감의 역사, 조직, 운영, 활동 내용 및 방식, 재정확보 등과 관련된 내용을 소개했다. 질문은 공익변호사들에 대한 인식, 재정확보 가능성에 집중됐다. 한국에서는 가능한데 일본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 하냐는 질문에 대해 단호하게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서는 단지 시도해보지 않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재일동포 변호사들도 여럿 오고 이주난민 쪽 일을 하는 변호사들도 몇 명 오고 진지한 저녁과 뒤풀이가 이어졌다.
22일(금) 오전, 일본변호사회연합회 주최 기업과 인권 국가행동계획(NAP) 세미나에 참석했다.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유엔기업인권워킹그룹 의장이자 City University of Hong Kong 로스쿨 교수인 Surya Deva 박사님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정부 측의 태도는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변호사들의 진지한 접근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공감에 찾아와 공익변호사, 법률가들의 국제인권활동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바 있는 Emi Omura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인권위원회 위원장님, 국제적 기업의 사회적 책임투자 자문회사인 BSR 홍콩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는 김재원님 등과 점심을 함께 했다. 다음 행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재일동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문화센터 아리랑에 잠시 들러 재일동포 인권 현안을 경청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22일 오후, Sato Yasunobu 도쿄대 교수님이 이끄는 난민국제보호아시아네트워크(ANRIP) 주최로 도쿄대에서 아시아 내 난민보호를 위한 양국의 활동과 협력가능성을 논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공감은 이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였는데 한국의 난민법의 현황과 그동안의 난민인권운동의 역사, 그 성과와 한계를 이야기했다. 학자, 변호사, 법무부, 유엔난민기구,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이 발표와 토론에 참가했고, 참가자 중에는 나중에 이메일도 주고받은 일본판사도 있었다. 새로운 내용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그동안 법무부 출입국 관계자와 변호사가 공개토론회에서 같은 패널에 앉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의 일정은 9월 20일(수) 밤에서부터 23일(토) 아침 일찍까지로 사실상 2일의 활동 기간이었지만 거의 쉬는 시간 없는 계획을 잡아 여기저기를 누볐다. 그동안 진행해 온 일본변호사들과의 교류와 공동활동에 기초하고 공감의 국제적인 활동의 영역인 이주, 난민, 다국적기업, 공익변론 등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출장이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공감의 국경을 넘는 국제인권활동을 종합하는 이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감의 국제인권활동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제 조금씩 어디로 가야할지가 보이고 있다.
글_황필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