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
지난 10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곽정숙 의원·박은수 의원이 주최하고, 공익변호사그룹 공감ㆍ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ㆍ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가 주관한 토론회는 장애인 성폭력 수사와 재판 절차상 문제와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였습니다. 이 토론회는 성차별적 사회구조 안의 ‘성폭력’, 사회 권력 구조 아래의 ‘장애인’이라는 특성이 실질적으로 고려되지 않는 현행 장애인 성폭력 관련 판례와 법 제도 운용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었던 귀한 자리였습니다.
우선,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김정혜 펠로우 님은 최근 13여년간의 판결문을 분석하여 판례의 흐름과 변화를 살펴보고 관련된 절차상의 쟁점을 검토하였습니다. 장애 성폭력 사건에서 핵심 조항이라 할 수 있는 (구)성폭법 제8조(장애인준강간·준강제추행)에서의 ‘항거불능’ 상태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는 법원의 판단을 지적하였습니다. 나아가 ‘항거불능’상태와 명백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는 ‘성경험 및 성지식’, ‘지적 능력 및 학력’, ‘폭행 협박 여부’, ‘저항여부’를 항거불능 성립을 부정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는 불합리성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장애, 그리고 성폭력의 특성에 대한 재판부의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이후의 발제자와 발표자분들도 모두 공감한 지적이었습니다.
성적자기결정권이란, 다른 사람에 의해 강요받거나 지배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지나 판단에 의해 자율성 있고 책임성 있게 자신의 성적인 행동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권리입니다. 김정혜 펠로우님이 지적하였듯, 성적자기결정권이란, 의사 ‘형성’능력과 그 ‘실현’능력이 구분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장애인과 달리 성적자기결정의사의 표현, 실현 혹은 실행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으로 합리적 근거가 없는 차별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재판부 판단에 있어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불능을 이용하여 강간 추행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여야지, 피해자가 ‘이용할 수 있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는 이후 토론 시간, 양성평등진흥원 활동가가 이러한 피해자의 항거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재판부의 잘못된 판단에 맞추어, 장애인에게 끝없이 ‘저항하라!’고 교육해야 하는 명백히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고민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규율하는 방향에 있어, 입법론적으로 강간죄 가중처벌 등 새롭게 법을 개정하고, 법안을 제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지금 있는 현행 규정을 제대로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현재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으며, 그 방안으로 현행 형법상의 강간, 강제추행죄로 의율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장애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의 부족으로, 육하원칙에 의거한 철저한 일관적 진술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여 무죄판결을 한 경우, 그리고 진술내용이 판사의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일종의 일탈행위인 범행조차 논리적일 것을 요구하는 판결의 제시를 통해 성폭력 사건의 특성과 장애인 성폭력피해자의 특성을 충실히 반영해야 할 필요성을 또 한 번 역설하였습니다.
나아가, 이와 같이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특성을 반영한 수사 및 재판절차의 보완으로, 성폭력전담부의 확대필요성, 진술녹화‘의무’의 현실적 운용(왜곡된 진실 전달 위험 방지의 제도 보완 필요성, 2차 피해 방지의 실효성 확보), 절차보조인제도 활용을 통해 전문가의견조회 시점의 자의적 판단으로 인한 문제 방지, 전문가 의견조회에서 의료인보다, ‘장애인 성폭력 전문가’의 실질 참여 확보 필요성을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실체적 실에 보다 다가가기 위해, 가해자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검증된’ 신뢰관계자 동석, 나아가 진술의 보조와 더불어 절차 참여 보조의 역할을 하는 ‘절차보조인제도’의 운용방향을 지적하고, 성폭력 가해자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보살핌의 지속성 유지’의 필요성과 가정폭력범죄와 같이 피의자, 피고인에 대하여 접근금지명령을 할 수 있는 ‘피해자보호명령제도’의 방안 마련을 제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민병윤 님이 지적여성장애인 성폭력 사건 지원 사례를 발표하였습니다. 실제 지적장애여성 사례 발표를 통해 재판부의 판결분 어느 부분에도 지적장애의 특성이나 지적장애로 인해 성폭력 피해 상황에서 대처능력과 방법이 미약할 수밖에 없는 ‘맥락’의 고려가 전혀 찾아볼 수 없음을 지적하였습니다. 피해자의 오빠 진술이 일부만 인용됨에 따라 진실이 왜곡되어 오히려 가해자 무죄판결에 유리하게 인용되고, 가해자의 화간 주장에 대해서는 일관성과 객관성을 인정하는 반면,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진술의 일관성 잣대를 적용하여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한 것, 그리고 앞서 김정혜 펠로우 님이 지적한 것과 같이, ‘피해자’의 대처 능력과 태도, 저항여부, 비장애인 수준의 일관된 자기주장, 정확한 피해 정황 진술 내용에 초점을 둠으로써, 오히려 ‘가해자’의 범행의도와 범행이 축소, 왜곡되거나 정당화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함을 지적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판사의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렵다는 재판부의 표현은 비장애인의 안목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것으로써, 지적장애인이 성폭력 범죄의 대상이 된 것은 사회와 국가가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주지 못한 책임에 근거한다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의식 내면화 필요성에 대한 고민을 낳았습니다.
세 번째로, 장애여성공감 황지성 님은 상담소의 지원사례를 중심으로 장애여성 성폭력사건에서 수사 재판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장애여성 성폭력 상담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일 뿐만 아니라, 그 중 약 80% 이상이 지적장애여성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서 두 발제자 분이 지적하였듯이, 육하원칙 요소에 비추어 지적장애인 피해자들에게 지나친 논리적 일관적 진술 요구하는 수사 방식 및 재판 방식을 통해 ‘장애를 뛰어넘을 것’을 요구하는 현실, 그리고 효율성을 이유로 진술녹화 의무규정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운용의 문제, 그리고 장애에 대한 이해 없는 수사 환경과 재판부의 문제를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지적장애여성들의 특수성을 지적한 부분이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관계’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자원인 ‘몸’을 도구로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로 인해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행해진 강압적인 성관계를 타인(남성)이 자신을 받아들여준 경험으로 해석하는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이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관계맺음을 끊어버렸을 때, 인관관계 또한 단절되는 그녀들이 이러한 불편한 관계맺음을 거절하지 못하는 현실은, 재판부가 흔히 표현하는 ‘경험칙상’ 이해될 수 없는, 단순한 사실관계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맥락’이 분명히 존재함을, 그리고 수사환경, 재판 등 법 제도 운용과정에서 그 ‘맥락’ 이해가 필요함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법원 젠더법연구회의 정지원 판사님의 토론문이 이어졌습니다. 앞서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특성 이해가 현저히 부족한 재판부의 문제를 많이 지적했기에, 더욱 정지원 판사님의 토론은 주의를 집중시켰습니다. 문제가 지적되었던 ‘항거불능’의 판단문제는 과거에 비해, 종합적으로, 완화해서 해석하고 있는 법원의 긍정적인 방향에 대해 제시하고, 반면, 피해자가 자신의 장애를 더욱 비하하고, 성적자기결정권이 없는 존재임을 강조했을 때, 그 침해를 인정받고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로 사고될 수 있는 현실적인 딜레마를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김정혜 펠로우 님이 현행법상 강간 강제추행죄로 의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강간죄의 경우 판례가 취하고 있는 최협의설의 폭행 협박 정도를 완화하여 판단할 필요성을 제시하였습니다.
나아가, 재판부 판단의 문제점이 많이 지적되고 있지만, 법관의 판단에 있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라는 현실적인 문제점, 그리고 현재 판례가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진술의 일관성, 논리적합성보다 편견을 배제하는 장애인 성폭력 범죄를 다루는 재판부의 기본적인 자세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공판중심주의가 노정하고 있는 피해자 진술 반복의 악순환 문제에 대해 형소법 제184가 정한 증거보전절차를 통해 피해자를 한 번만 불러서 제대로 조사를 하자는 실무적 제안을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이경환 변호사는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판단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김정혜 펠로우님이 지적한 있는 현행제도를 잘 활용하자는 것에 동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해결의 방향은 현행 성폭법 제6조(구 성폭법 제8조)의 확대적용이 아니라,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되, 보충적으로 적용하고,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 강간 및 강제추행죄로 의율하는 것이 타당하며, 나아가 형법 제302조의 비친고죄화와 형량 강화, 그리고 비장애인을 전제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절차상 보완점에 대해서는 진술녹화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하며, 신뢰관계자의 동석을 의무화, 그리고 현실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실무 개선, 진술녹화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판부의 이해능력과 전문가를 통한 제도 보완의 필요성, 그리고 상담소의 상담원을 적극적으로 신뢰관계자로 인정할 필요성, 나아가 피해자에 대한 국선변호인제도 제안, 마지막으로 전문가 의견조회에서 상담원과 같은 활동가의 전문성이 무시되는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이는 실제 상담과의 토론에서도 상담소 의견을 전문가 의견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치적 의견으로 치부하는 현실적 한계의 문제점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소장 이윤상 님은 앞에서 발표한 토론자, 발제자가 지적하였듯이, 사력을 다한 저항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최협의설과 비례적으로 사력을 다해도 저항할 수 없는 정도의 항거불능상태를 요구하는 재판부의 태도의 문제점, 그리고 성폭력특례법 제6조의 신체적 정신적 장애자의 성적자기결정권 보호라는 입법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김정혜 펠로우 님이 지적하였듯이, 장애인 성폭력 조항을 별도로 정할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폭행협박에 대한 최협의 해석을 극복하고 범위를 넓힌다면 현재 있는 법체계, 강간죄 강제추행죄로 의율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성폭력특례법의 가중처벌과 같은 맥락으로 장애인 성폭력 가중처벌은 필요하며, ‘영상조서 대체’에 대한 적극적 검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성폭력특례법 제31조(증거보전의 특례)를 활용하여 형사소송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증거보전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을 주장하였습니다.
오늘 모든 발제자와 토론자가 공감한 부분은, 현행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장애인’, 그리고 ‘성폭력’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었습니다. ‘법’은 사회의 시대적 사상을 반영한 인간 행위에 대한 사회의 윤리적 가치 기준이며, 그 사회의 변화를 유도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아가 사회적 질서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 삶의 전반적인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법을 만들고, 법을 적용하여 재판하고, 법을 집행하는 일과 법학을 연구하는 일은 주로 남성, 그리고 소위 비장애인이었기에, 법이 전제하고 추구하는 객관성과 합리성, 그리고 성중립성이 주관적, 비합리적, 그리고 성차별적, 장애인차별적으로 운용될 수 있음을 절감할 수 있었던 토론이었습니다. 장애인과 같이 힘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에 고민을 공유하는 변호사, 판사 등 법조인, 정부기관, 그리고 시민단체가 한 데 모일 수 있었던 자리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 신장을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건전한 성장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기 인턴 강정은
[참고] 토론회 동영상
http://channel.pandora.tv/channel/video.ptv?ch_userid=happychange&prgid=39749588
[참고] 토론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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