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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익법 교육·중개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복귀에 관한 이야기 – 이정하 활동가, 그리고 영화 <위캔두댓!>과 함께한 공감월례포럼

 

  병에 걸리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병원에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곳에 가면 치료를 받아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병이 있습니다. 바로 ‘정신질환’입니다. 정신질환 역시 원인이 있는 병이기 때문에 충분히 치료할 수 있고,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병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비정상인’, ‘위험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 찍혀 버리고 마니까요. 그렇게 낙인이 찍혀버리고 나면 정신장애인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가 힘들어집니다. 지난 5월 30일, 정신장애인 당사자이자 현재 ‘정신장애인 문화예술협동조합 파도손’의 준비위원이신 이정하 활동가님과 함께 정신장애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필요한지 논의해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 강연 중인 이정하 활동가

외계인이 필요한 정신장애인의 현실 

  ‘별에서 온 그대’의 짧은 영상과 함께 포럼이 시작되었습니다. 극중 한 남성이 자신의 잇속만 차리기 위해 부인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고, 억울하게 감금된 부인의 병원 탈출을 주인공이 초능력을 발휘해 돕는 내용이었습니다. 시간을 자유자재로 멈추고 순간이동을 하는 주인공의 초인적인 능력을 보며 피식 웃어버리기엔, 현실을 너무나도 잘 담아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병원에 강제입원 되어있을 수많은 정신장애인들에게 퇴원이란 그만큼 멀고도 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의 강제 입원을 경험하신 이정하 활동가님께서는 정신병원 입∙퇴원과정에 대한 본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들려주셨습니다.


 

 

  정신보건법 24조 1항에 의하면 보호자 2인의 동의와 의사 1인의 진단만 있으면 누구든 강제입원이 가능합니다. 어떠한 객관적 심사 체계도 없이 한 사람의 자기결정권과 신체의 자유가 박탈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강제입원이 되고 나면, 환자는 6개월마다 퇴원 심사를 받게 됩니다. 한 번의 퇴원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 최소 1년 동안을 폐쇄병동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신장애인의 평균 입원일수는 233일(2008년 기준)로, 이탈리아 13일, 스페인 18일, 프랑스 36일 등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깁니다. 이정하 활동가님께서는 이러한 기약 없는 병원생활 속에서는 멀쩡한 사람도 ‘정신장애인화(化)’ 될 수밖에 없다며 정신보건법의 폐지와 정신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정신장애인의 또 다른 이름, ‘생존자’

 

  정신병원의 1차적 목적은 환자의 정신건강을 증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정하 활동가님께서 들려주신 입원과정과 폐쇄병동생활은 과연 그곳이 환자의 치료를 돕는 곳인지 의문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입원 전 강제입원과정에서부터 정신장애인의 인권유린은 심각합니다. 누구라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덩치 큰 남정네들이 자신을 어디론가 끌고 간다면 반항을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강박이 이루어집니다. 강박 중에 언어적∙신체적∙성적 폭력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이러한 경험 후에는 평생을 안고 가야 할 트라우마가 남습니다. 정신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입히는 형국입니다. 우리나라 정신장애인 중 이렇게 강제입원이 되는 비율은 약 70%로 유럽 10%, 일본 30%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우리나라에만 강제입원이 필요한 중증 정신장애인이 유난히도 많은 걸까요? 그동안 ‘정신장애인 격리 패러다임’에 물들어 너나없이 방관자로 살아온 결과일 것입니다. 

 

  정신병원은 교도소와 함께 ‘총체적 통제시설’로 분류됩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접촉은 제한되고, 모든 행동이 통제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 이정하 활동가님이 입원하셨던 병원에서도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이 통제의 대상이 되었고, 화장실에 칸막이가 없는 등 최소한의 삶의 질이 유지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평균 이하의 생활 수준과 더불어 환자가 겪어내야 할 또 다른 고통은 약물 복용입니다. 약물 복용과정에서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철저히 박탈됩니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가는 오히려 흥분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약의 복용량이 느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병원에 입원된 정신장애인은 약의 정확한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정보제공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단순히 ‘이것이 치료다’라는 의사의 말만 믿고 장기간 약을 복용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일까요? 정신병원을 무사히 퇴원한 사람들은 당사자들 사이에서 ‘생존자’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건강해지기 위해서 가야 하는 병원이 살아나와야 할 곳이 되는 비참한 현실을, 오늘도 정신장애인들은 견뎌내고 있습니다. 

▲ 지난 5월 30일에 열린 공감 월례포럼

 

정신장애인이 원하는 치료, 그리고 지역사회로의 복귀  

 

  현재 정신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치료는 약물 일방통행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단일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는 데에는 공급자 중심의 편의주의적 발상, 제약 회사와 정신의학계의 복잡한 이해관계 등 다양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정신질환 또한 약물 복용만이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약은 꼭 필요한 순간에만 최소한으로 복용하여야 합니다. 약 대신 정신장애인들이 원하는 치료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기반으로 한 당사자 지지 치료입니다. 각자의 성격과 배경,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생기는 원인은 다양할 수밖에 없고, 치료방법 역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정하 활동가님의 경우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정신장애인들의 재활과 회복, 그리고 사회복귀를 돕고자 ‘정신장애인 문화예술 협동조합 파도손’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견뎌내고 퇴원을 한다 해도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않거나 일할 곳이 없어 설상가상의 상황에 놓이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조합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협동조합이 설립된다면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사회복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1978년 정신병원의 점진적 폐쇄와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복귀를 골자로 한 ‘바살리아법’이 의회를 통과한 뒤 지역 정신보건센터가 확충되었고, 1998년 정신병원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공∙원예∙청소∙가구 수리∙도예 등을 주요활동으로 하는 다양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생겨났고,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정하 활동가님의 강연이 끝난 후 조합원의 약 30%가 정신장애인인 이탈리아의 대표적 사회적 협동조합 ‘논첼로’를 모티브로 한 영화 <위캔두댓>을 배리어프리버젼으로 단체 관람하였습니다.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나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편견에 끝없이 맞서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는 멋있는 영화였습니다. 낯선 이탈리아 영화인 데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흡입력은 매우 강했습니다. 말 그대로 옆 사람과 함께 울고 웃다 보니 두 시간이 지나갔고,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영화 속 정신장애인들은 서투르고, 어눌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인내심을 갖고 믿어주자 그들은 용기 내어 스스로 판단했고, 결정했고, 일했고, 사랑했습니다.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직도 정신장애인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효과적인 치료방법도 사회적 편견 앞에서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정신장애인은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당신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글_최서연(19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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