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른 ‘자활’
2014. 6. 16.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미화원으로 일하던 최씨가 고열과 부종으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로부터 약 2개월 후, 그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하였다.
최씨는 조건부 수급자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국민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법이「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보장기관(급여를 실시하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은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생계급여를 실시할 때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을 수 있고, 이때 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이 수립한 자활지원계획을 고려하여 조건을 제시하여야 한다. 정부는 현재 근로능력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근로능력판정절차를 거쳐, ‘근로능력 있음’으로 평가된 경우 자활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실시하는 이른바 ‘조건부수급자’로 분류한다. 근로능력판정은 2012년 말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위탁을 받은 국민연금공단이 수행하고 있다.
자활지원계획은 자활사업대상자의 자립과 자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취업능력 평가, 욕구 및 참여여건 사정 등을 통하여 적합한 자활프로그램 제공 및 평가를 목적으로 한다(「2013 자활사업 안내」).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서 근로능력 있는 수급자에게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가가 수급자에게 ‘자활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전제로, 기초수급자의 ‘참가’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즉, 수급자가 근로를 하도록 강제하는 목적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정부가 작년 9월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범실시하고, 올해 5월부터 전국적으로 확대실시하고 있는 ‘근로빈곤층 취업 우선 지원 사업’은 수급자에 대한 조건부과시 전제가 되는 ‘자활계획수립’ 절차를 생략한 채, 국민연금공단 판정 결과 ‘근로능력 있음’으로 판정된 모든 조건부 수급자들을 일단 고용센터로 인계한 후, 취업에 실패한 경우에만 다시 보장기관에 재의뢰하여 자활역량평가를 거쳐 자활지원계획을 수립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위 정책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았다는 것은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근로능력 판정기준을 살펴보면, 수급자 본인이 선호 또는 희망하거나 예전에 종사한 직업 또는 직종에의 취업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물론, 어떠한 근로에 적합한 것인지에 대한 평가도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육체적 근로에 적합한 것인지, 사무직에 적합한 것인지, 수급자가 감당할 수 있는 근로시간 및 강도 등 개별적 사정에 대한 평가 없이 단지 근로능력 있음/없음 판정만 내려진다. ‘근로빈곤층’에게 열려 있는 취업자리란 대부분 단순노무직, 즉 육체노동을 요하는 자리인 점을 고려하면,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취업이 가능함’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일단 고용센터로 인계된 조건부 수급자는 무리를 해서라도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생계비가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근로능력 있는’ 수급자가 취업을 한 사실이 없더라도 (몰래) 취업을 했다고 간주하여 소득(일명 “추정소득”)이 있다는 전제에서 급여를 깎는 현행의 실무관행(추정소득 부과는 법적 근거가 없고,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이루어진다)으로 조건부 수급자는 더욱 궁지로 몰리게 된다. 자활사업 ‘참가’가 사실상 근로 ‘강제’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미취업 기간이 길다든지 하는 사유로 적응을 위한 배려나 지원이 필요한 사람까지도 일단 취업시장에 내몰고 수치스럽고 지난한 탈락의 과정을 거쳐 결국 다시 복지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결코 자활을 돕겠다는「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취지에 부합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최씨는 좌석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다 2005년경 흉부대동맥류 진단을 받고,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혈관 치환수술을 받은 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또 수천만원의 병원비 부담으로 결국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수술 후 최씨는 오래 걷지도 못하고 조금 경사진 곳도 숨이 차서 쉽게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체력과 건강이 악화되었다. 최씨가 2013. 10.경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발급받은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에도 ‘안정시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으나, 계단을 오르는 등의 활동시에는 호흡곤란 증상이 발생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근로능력평가의 첫번째 판단요소인 의학적 평가 기준 중 가장 낮은 4단계인 “심질환을 지니고 그 때문에 신체활동이 고도로 제한되는 환자, 안정시에는 무증상인데 가벼운 일상생활의 신체활동에서 피로, 동계, 호흡곤란, 또는 협심통이 있거나 심초음파에서 심장기능이 40%이하인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진단이다. 그런데 최씨는 어째서인지 의학적 평가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1단계 평가를 받았고, 이는 2014. 1.경 ‘근로능력 있음’ 판정으로 이어졌다.
갑자기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은 최씨에게 아무런 설명도 제공되지 않았다. 최씨의 활동능력평가(근로능력평가의 두번째 판단요소)를 위해 집을 방문한 국민연금공단 직원으로부터 “보기에 건강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다.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은 최씨는 10년 넘게 일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고용센터에 인계되어 1개월 좀 넘게 교육을 받았다. 최씨가 거주하던 수원시 권선구가 ‘근로빈곤층 취업 우선 지원사업’ 시범실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비일을 희망하였으나, 자리가 없다고 해서 결국 아파트 지하주차장 청소일을 소개받아 일을 시작하였다. 고용주에게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알리고 싶어했으나 담당자로부터 “쓸데 없는 얘기는 왜 하냐”는 면박만 돌아왔다. 일 시작 후 최씨의 건강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었고 부종이 심했다. 최씨는 결국 일을 시작한지 2개월만에 쓰러졌다.
2014년 6월 국민연금공단은 최씨에 대해 다시 근로능력평가를 했다. 당시 최씨는 5월 중순 처음 쓰러진 후 10일간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6월 16일 다시 쓰러져 재입원한 상태였다.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에서 최씨에게 내린 의학적 평가는 “심혈관 질환이 진단되었으나 증상은 거의 없는 경우, 고혈압 외의 심혈관 질환으로 지속적으로 약물복용이 요하나, 일상 사회생활이 가능하며, 부작용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약으로 조절이 가능한 경우”에 해당하는 2단계였다.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은 수술 후 가슴을 다시 닫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최씨의 모습을 보고서야 최씨에게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최씨는 당시 이미 이식받은 혈관 주위에 감염이 진행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결국 퇴원 못하고 사망하였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하지만 현행의 제도는 국민의 자활을 돕겠다는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생계급여를 볼모 삼아 사실상 강제 근로로 이어지는 왜곡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강제 근로’로 변질된 ‘자활’은 결국 어려움이 많아도 단란했던 한 가정의 가장을 앗아갔다. 10월 28일, 공감, 건강세상네트워크, 참여연대, 홈리스행동 등 47개 단체로 구성된 ‘기초법 개악 저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민생보위’는 최씨의 유족과 함께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수원시 권선구청장과 고용노동부장관을 상대로, 「국미기초생활 보장법」에 위배되는 ‘근로빈곤층 취업 우선 지원사업’의 전면적 재검토, 자활지원계획 수립시 수급자 참여 및 의사반영, 자활지원계획을 반영한 조건의 제시, 국민연금공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근로능력판정사업의 전면적 재검토 및 근로능력판정과정의 공정성, 전문성, 객관성과 투명성 보장, 근로능력판정결과 통지시 구체적 판단근거 공개, 근로능력판정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의 실질적 보장, 재판정 및 이의제기 결정시까지 조건부과 유예를 내용으로 하는 정책권고와 최씨 유족에 대한 배상 및 재발방지대책을 구하는 진정을 제기했다.
글_박영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