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 정신요양시설 생활자 실태조사 참여 _염형국 변호사
2017년 여름의 끝자락인 8월말 정말 오랜만에 지방 어느 지역(시설명을 밝히고 싶진 않습니다. 시설전반의 문제이기도 해서요.) 정신요양시설 방문조사를 이틀에 걸쳐 다녀왔습니다. 정신요양시설은 정신질환자를 입소시켜 요양과 사회복귀를 위한 훈련을 행하는 시설입니다. 입소대상은 자의입소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소자(강제입소)입니다(구 정신보건법 규정에 의하여 시장·군수·구청장이 보호의무자가 되는 입소시키는 경우는 최근 법 개정으로 삭제되었습니다).
2015년 보건복지부의 정신요양시설 59개소에 대한 ‘정신요양시설 장기 입원자 현황‘을 보면, 가족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6476명(59.1%), ‘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소‘가 3351명(30.5%)에 달해, 타인에 의한 강제입원 비율이 9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4년 말 기준 장기입소자 1만 693명 중 40년 이상이 28명, 30~40년 618명, 20~30년 1,600명, 10~20년 3,119명으로 10년 이상 장기 입원한 환자가 전체 환자의 50.2%에 달하였습니다. 특히 30년 이상 장기 입원환자는 646명으로 교도소에 30년 이상 수감된 수형자 15명에 비해 43배나 많았습니다.
제가 8월말에 방문하였던 정신요양시설 2곳도 입소자의 대부분이 20~30년 이상 시설에서 거주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27살에 들어와 지금 72세가 되신 분도 계셨습니다. 두 곳 모두 외출·외박이 엄격히 통제된 시설이어서 시설직원이 대동하거나 가족 혹은 지인이 면회를 오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개인물품이 전혀 없거나 극히 조금 밖에 없어서 속옷도 다 공용으로 사용하였고, 원복이라는 단체복을 입고 외출도 통제된 채 삼시세끼 밥 먹고 정신과약을 먹으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시설 1곳에서는 조사원들이 개별조사 전에 시설 전체를 둘러보는데 우리 조사원들(외부인)이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들어서인지, 곱게 화장을 하고, 꽃무늬 치마를 차려입은 여자 생활자가 몇 분 계셨어요. 같이 간 여성 조사원이 어리고 고운 여성생활자를 꼬옥 안아주는데, 그 광경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너무 슬프고 아름다워 눈물이 나왔습니다.
정신요양시설에 27살에 들어와서 72살 되신 분께 이 시설에서 40년 넘게 지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분께서 “고단하고요. 피곤한데 그냥 참으면서 보내요. 나만 잘 생각하고 여러 사람 보면서 살아요.” 하셨어요. 31살에 들어와 35년을 이곳에서 살고 66세가 되신 분을 면담하였습니다. 그분은 대학원 공부문제로 크게 부모와 크게 다투다가 정신요양시설에 입소하게 되어 지금까지 그곳에서 지내셨습니다. 그분은 “마음이 힘들어요. 여기서 나가 지금이라도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라고 하시며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 강한 의지를 표하셨습니다.
2016년 5월 30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요건을 대폭 강화시켜 정신병원·정신요양시설에의 강제입원을 쉽게 못 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입원요건을 ①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등에서 입원치료 또는 요양을 받을 만한 정도 또는 성질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② 정신질환자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어 입원 등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의 두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경우(기존 법에서는 ① 또는 ②의 요건 중 어느 하나만 충족시켜도 입원이 가능하였다)에만 입원을 시킬 수 있도록 강화시켰습니다. 자해·타해 위험에 관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시행규칙에서는 ‘본인 또는 타인의 건강 또는 안전에 중대하거나 직접적인(혹은 급박한) 위해를 가하거나 가할 개연성이 높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매우 좁혔습니다.
그런데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자·타해 위험성을 좁게 해석한다면, 치료적 관점에서의 비자의입원이 제한되어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질병 초기의 치료적 개입이 어려워져 오히려 정신질환자 당사자 및 보호자와 사회에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자 복지부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으로 증상의 악화 혹은 중독성 약물의 갈망/중독/금단으로 인한 건강의 악화, 위생 불량, 난치성 증상, 자기관리능력의 저하 등까지도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것으로 그 기준을 완화시켰습니다.
이처럼 완화된 자·타해위험 지침에 따라 정신요양시설에서 20~30년 생활한 입소자들도 거의 대부분 입원이 계속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타해 위험요건에 관한 이러한 복지부의 완화된 지침에 따라 자·타해위험 요건은 치료의 필요성 요건과 거의 같은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부의 지침은 치료의 필요성 요건과 별개로 자·타해 위험 요건을 둔 정신건강복지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적 구속력이 있는) 정신건강복지법시행규칙에서 ‘본인 또는 타인의 건강 또는 안전에 중대하거나 직접적인(혹은 급박한) 위해를 가하거나 가할 개연성이 높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법한 지침입니다. 현장의 정신과 의사들도 법령에 정해진 요건에 따라야할지 복지부의 완화된 지침에 따라야할지를 몰라 매우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복지부의 위법한 지침은 당장 철회(혹은 폐지)하여야 합니다.
시설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되고 괴로운 일이지요. 자유가 없는 그곳에서 젊은 시절을 몽땅 보내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무기력하게 노년을 맞이하시는 분들을 보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 강화와 정신질환자 지역사회복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장애인들의 탈원화시대를 여는 법입니다. 이러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의 취지에 발맞춰 멀지 않은 미래에 정신요양시설에서 20~30년 이상 오래도록 지내고 있는 생활자 분들이 지역사회에 돌아와 우리의 이웃이 되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통합되어 자립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지역복지정책들을 시급히 만들어 시행하여야 합니다.
시설 방문조사 때의 에피소드 하나 더! 시설 앞마당 벤치에서 생활자들 개별면담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 생활인 한분이 다가와 저에게 커피믹스 한 봉과 봉지 차 한 봉을 건네주고 얼른 가버리셨습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순박하고 더없이 착한 분들이 계실까요?
이분들의 지역사회로의 탈시설을 위해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겠습니다.
글_염형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