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대중’교통이 되려면
긴장 탓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내리쬐는 햇빛이 유독 나를 향해 화를 내는 것만 같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던 2019. 7. 3. 오전 10시 30분 서울동부지방법원 앞. 평소와 달리 비교적 한산했을 법원동문 앞거리에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유인즉 ‘누구에게나 안전한 지하철 이용을 보장하라’라고 함께 외치면서, 지하철 단차로 인한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하여 구제를 청구하는 소송의 제기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단차(段差)는 높낮이 차이를 의미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① 지하철 승강장 연단으로부터 차량까지의 ‘간격’과 ② 차량바닥면으로부터 승강장 연단의 ‘높이 차이’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사건 청구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피고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차량과 승강장 연단의 간격이 10cm를 넘거나 지하철 차량과 승강장 연단의 높이 차이가 1.5cm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 장애인 승객의 사고를 방지하고 정당한 이동편의지원을 위한 안전발판 등 설비를 설치하라. 2. 피고는 원고들에게 차별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 |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8조 제2항과 같은 법 제46조 제1항을 근거로, 서울교통공사(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에 지하철 단차에 의한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해 적극적인 시정조치와 함께 이 법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한 것입니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법원으로 이끌었을까요?
올해 4월의 마지막 날, 공감으로 참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지체장애1급으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지하철 승강장과 차량 사이 넓은 간격으로 인해 하차하면서 바퀴가 그 틈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동휠체어는 차체에 충격이 가해지면, 전원이 자동으로 꺼질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조금만 더 조치가 늦었더라면, 승강장과 차량 사이에 전동휠체어가 낀 상태로 스크린 도어가 닫히고 극단적으로는 차량이 출발해버리는 상황까지 발생할 뻔했던 것입니다. 사고 직후 피해자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페이스북에 심경에 대한 글을 남겼습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되었지요.
한편, 사연을 전해 들은 공감은 궁금했습니다.
피해 당사자 포스팅에 달린 댓글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니, 이번 사고가 어쩌다 발생한 것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언젠가부터 인지 ‘발 빠짐 주의’라는 경고 방송 음성이 익숙하게 들리게 된 기억만 흐릿할 뿐, 지하철 단차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워,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
현재 서울지하철은 ‘대중’교통이라고 할 수 없겠구나 라는 것입니다. 대중교통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버스, 지하철 따위의 교통. 또는 그러한 교통수단’입니다. 당연히 지하철은 대중교통에 해당하고요.
넓고 깊은 지하철 단차로 인해 꽤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인명사고가 발생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뿐 아니라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 교통약자를 넘어 누구에게나 사고위험이 있고요. 특히, 이 사건 피해자와 같이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은 환승해야하는 역이나 목적지에서 내리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가거나 결국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이제 지하철이 진정한 ‘대중’교통으로 거듭나기 위한 세 가지를 기억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첫째, 장애인 및 교통약자들은 지하철을 통해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둘째, 서울교통공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도시철도법에 따라 장애인 및 교통약자가 지하철을 통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안전발판 등 설비를 설치할 의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기본적 인권으로서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서울교통공사의 예산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시민의식의 지표이자 지하철이 장애인을 포함한 대중의 이동수단 및 시설이 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지하철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대중교통이 되는 그날까지 위 세 가지를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후 소송 경과나 승소 소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글_조미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