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의 자유와 법정책의 문제점
「집회·시위의 자유와 법정책의 문제점」토론회 공동주최
-아스피린이냐, 아달린이냐?
1.
“아내는 한 달 동안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이상(理箱)의 소설 『날개』에서, ‘아내’는 자신의 경제 행위(매춘)가 방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면제(아달린)를 치료제(아스피린)라고 속여 ‘나’에게 먹인다.
아스피린, 아달린? 이상의 이 질문을 다시 고쳐 묻는다. 집시법은? 단언컨대, 민주주의적 열정을 왜곡하고 잠재우는 마취제, 아달린이다. 치명적인 것은 그 ‘아딜린’이 ‘아스피린’ 통에 들어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집시법이 열정의 과잉과 남용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해열제(아스피린)라고 속아왔고, 속아주었다. 그러나 오늘의 집시법은 1962년의 출생부터가 민주주의와 그 열정에 대한 공포의 산물이었다.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우리는 그 실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야간집회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시민들이 집시법의 마취제(아달린)적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중요한 승리였다. 그러나 야간집회에 관한 현재의 결정이 집시법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것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의 질문은 이 결정 이후를 기점으로, 다시 본격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아스피린, 아달린?
2.
지난, 12월 17일, 새사회연대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공동주최로 「집회·시위의 자유와 법정책의 문제점」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를 개최하게 된 계기는, ‘공감’에서 대리인으로 진행했던 헌법소원사건의 결정(헌법재판소 2009. 5.28. 선고 2007헌바22 결정)과 관련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청구인(이창수 새사회연대 대표)은 집회 개념의 불명확성과 사전 신고제 및 형법적 규제의 위헌성을 주장하였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중요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지만, 충분한 변론을 하지도, 유의미한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는 자책이 있었다. 사후적으로라도 현재 결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라고 생각했고, 또 다시 한번 이 문제를 통해서 집시법의 근본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제시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토론회에서 발표자 김종서 교수는 헌재 결정에 대한 비판점 검토를 진행해주었다. 「현행 집시법의 문제점 : 집회 개념, 신고제의 문제점과 헌재 결정의 비판」이라는 발표를 통해, 현행 집시법상 집회 개념의 불명확성으로 기자회견과 같이 언론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행위까지 집시법의 적용대상으로 규제되고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했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서는 “헌재가 집시법의 한계에 대해 눈을 감은 것”이라는 비판을 제시했다. 또한 집시법의 구조가 노동조합법의 설립신고제도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고 그 취지도 거의 동일한 것으로서, 신고의무가 적용되지 않는 소극적 요건을 확대하는 방향을 개선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창수 대표는 집회의 규제와 민주주의의 진전과 관련된 함수관계를 규명하는 입론적 시도를 해주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대한 비교법적 접근」이라는 발표를 통해, 각국 대사관을 통해 확보한 집회 관련 법령을 분석하고, 유형화하였다. 비교법적 분석을 통해 우리의 집시법 형식을 ‘자유-규제 통합형’ 국가로 분류하고, 다른 아시아, 유럽 국가와 달리 정치적 정당성과 결과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어 결과적으로는 후진국형에 속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발표에 대한 토론에서, 윤영철 교수와 김도현 교수는 현행 집시법을 규제법에서 보장법으로 전면 개정하거나, 또는 전면 폐지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3.
마취제로서의 현행 집시법이 수행하는 기능은 분명하다. 정치를 사유화(私有化)하는 것. 민주주의와 정치를 직업적 정치가들의 수준에 묶어놓고, 소수의 목소리와 열정을 잠재우는 것이다. 집시법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해악이 큰 만큼, 그 근본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오늘의 현실에서 기획되어야 할 과제다. 당장의 실현가능성을 이유로 시급한 문제의 기획을 외면하는 것은, 정치공학에 불과할 뿐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의식은 더 긴 호흡으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 방향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원론적으로 제기되었고, 또 헌재 결정의 반대의견에서도 제시된 바 있다. 토론회 주최의 계기가 된 헌재 결정에서 조대현 재판관이 제시한 반대의견을 옮겨놓는다.
‘2인 이상이 옥외에서 공동의 목적으로 모이기만 하면 어떠한 집회인지 상관없이 언제나 사회질서가 침해된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옥외집회라는 사실만으로 헌법 제37조 제2항이 요구하는 기본권 제한사유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 집회의 자유는 집단적 의사표현의 자유로서 우리의 헌법질서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므로, 타인의 법익이나 사회질서를 침해할지도 모른다는 추상적 염려가 있다는 사유만 가지고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유로 삼을 수 없다. 집회의 목적ㆍ시간ㆍ장소ㆍ인원 등에 비추어 사회질서를 직접적으로 침해할 개연성이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인정되는 경우에는 집회신고의무를 부과하여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사회질서를 해칠 개연성이 확실한지 여부도 묻지 않고 집회신고의무를 부과하여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부합된다고 보기 어렵다.“
글_ 정정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