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진압명령 거부 인터넷 게시물, 대법원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안방에서 긴급체포되다
2008년 7월 2일, 광우병 의심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62일째 되던 날, 수도권의 한 아파트에 서울특별시 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소속 경찰 2명이 들이닥쳤습니다. 이 집에는 대학에서 약 10년간 철학을 강의하며 번역서를 내온 김씨(가명)가 살고 있었고, 경찰은 가족과 평안한 시간을 보내던 김모씨를 긴급체포했습니다. 3일 전인 6월 29일, 김씨가 라디오21이라는 인터넷 웹사이트에 ‘서울특별시 제2기동대 전경대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촛불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글을 올린 일 때문이었습니다.
2008년 6월 28일과 29일
김씨가 글을 올린 날인 2008년 6월 29일과 그 전날인 28일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경찰의 강경진압과 이에 대해 시민의 격렬한 저항이 맞서면서 최악의 충돌상황이 벌어진 날입니다. 촛불집회에 대한 많은 보도와 인권보고서들이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으로 시민들의 피해가 속출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학영 YMCA 사무총장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국가인권위원회나 변호사단체에서 나온 인권감시단과 의료진, 기자도 경찰 진압의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폭력적인 경찰 진압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 또한 거세어서 이날 집회에서 경찰은 112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되었고, 시민들은 3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경향신문 2008년 6월 30일자 기사). 후일 국가인권위원회는 6월 28일과 29일 양일간의 경찰 진압작전을 필요 최소한도를 넘는 공격적인 진압작전으로 판단하고, 시민들 부상을 초래한 경찰 진압에 대해 직접적인 지휘책임이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장과 4기동단장에 대해 징계조치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글을 올렸길래
2008년 6월 29일 새벽, 촛불집회를 인터넷 영상으로 보던 김씨는 경찰의 과잉 폭력진압에 충격을 받고 ‘서울특별시 제2기동대 전경대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저희 전경들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 오늘 자정을 기하여 저희 서울특별시 경찰청 소속 제2기동대 전경 일동은 시민진압 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오늘 자정부터 서울특별시 경찰청 소속 제2기동대 전경 일동은 상부의 명령을 무조건 거부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촛불집회 동영상을 통해서 실제로 전경들이 평화행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과잉진압하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맞대응이 격화되어 가는 것도 목격하였던 상황에서, 김씨는 이러한 폭력의 연쇄가 끊어지기를 원하는 바람을, 즉흥적으로, 전경의 심정에 빗대어 인터넷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건 발생 후 5년 8개월 여만의 무죄 확인
공감은 김씨가 긴급체포된 이후부터 경찰 수사단계였던 영장실질심사, 구속적부심을 거쳐 제1심부터 상고심까지 변론한 끝에, 2014년 3월, 대법원에서 전부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사가 김씨에 대한 공소에서 적용한 죄명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 통신을 했다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 위반과 서울경찰청 제2기동대 소속 전경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형법상 명예훼손이었습니다. 이 공소사실에 대해서 제1심 법원은 전부 유죄로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그 후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대한 위헌결정이 선고되어 효력이 상실되자 항소심 법원은 전기통신기본법위반에 대해서는 무죄, 제1심에서 피고인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증언한 전경 1명에 대해서는 공소기각, 나머지 2기동대 소속 전경들 전원 600여 명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유죄로 판단하여 벌금을 선고했었습니다.
대법원은 허위사실로 서울특별시 제2기동대 전경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시한 항소심 판결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김씨가 쓴 글은 허위사실을 근거로 삼은 것이지만 ‘그 전체적인 내용은 경찰 상부에서 내린 진압명령이 불법적이어서 이에 불복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취지’이고, ’이러한 진압명령에 집단적으로 거부행위를 하겠다는 것이 기동대 소속 전경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객관적으로 저하시키는 표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또한 ‘이 사건 글을 접하게 된 일반인들의 인식이나 사회통념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 글로 인하여 이 사건 기동대 소속 전경 개개인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가 근본적으로 변동될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라고 판시하고, 결론적으로 ‘기동대 소속 전경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하는 형법 제307조의 명예훼손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하였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 정국에서, 김씨에 대한 기소와 유죄판결은, ‘진압명령 거부 허위 글 올린 대학강사 영장’, ‘진압명령 거부 허위기재 대학강사 구속’ ‘진압명령 거부설 유포 대학강사 기소’, ‘촛불 진압 거부설 유포 벌금 700만 원’ 등등의 제목으로 보도되면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또한 제1심 담당 판사는 이 사건에서 공감이 김씨를 변호하며 냈던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심리하던 중 현재 대법관인 당시 법원장의 압력으로 신청을 기각하였고, 이 때문에 판사로서의 자책감이 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이 법률조항은 그 후 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에도 적용되었고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위헌판단을 받습니다).
변호인으로서는 김씨의 무죄를 확인한 대법원 판결이 이제서라도 나온 것이 유죄판결이 확정되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지만, 김씨가 문제의 글을 쓴 이후 이미 5년 8개월이 흐른 지금, 스무 줄이 채 안 되는 인터넷 글 에 대해 전기통신기본법위반과 명예훼손이라는 기소 때문에 잃어버린 김씨의 인생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글_차혜령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