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을 위해 퇴소에 처한다? _ 김수영 변호사
처우 개선을 요구하자 내려진 퇴소결정
A씨는 아버지와의 불화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오게 된 20대 여성입니다. B씨 역시 가정폭력과 경제적 문제로 홈리스가 되었습니다. 자립을 모색하던 이들은 “여성 노숙인 자활시설”에서 생활하며 직업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머물던 시설은 한겨울에도 온수가 적절히 제공되지 않았고 음식의 질도 낮았으며, 기부금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투명하게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A씨와 B씨는 시설장에게 처우 개선과 시설의 운영 및 회계에 관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청은 법률에 따른 정당·적법한 요구입니다. 사회복지사업법은 복지시설 거주자의 대표를 포함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해당 운영위원회에서 생활환경 개선 및 고충 처리, 시설 종사자와 거주자의 인권보호 및 권익증진에 관한 사항 등을 논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씨와 B씨는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가 없었고, 시설 내부에 고충처리절차가 작동하지 않자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게 됩니다. 문제가 외부로 불거지자 시설 원장은 이들을 퇴소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원장은 퇴소심사위원회를 소집하고 이들에 대한 퇴소를 결정합니다.
문자로 통보된 강제퇴소
퇴소심사위원회가 열린 다음 날, 직업훈련을 위해 외출해 있던 이들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시설의 대문 비밀번호를 바꿨으니 들어올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사자들에게 시설에서 문자로 보낸 강제퇴소 통보
정당한 문제제기가 강제퇴소로 이어졌습니다.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그녀들은 다시 홈리스가 되어 패스트푸드점에서 밤을 새고 고시원을 찾아 갔습니다.
위법·부당한 권한행사에 악용된 ‘탈시설’
시설 원장이 이들의 퇴소 사유로 제시한 것은 ‘탈시설화’라는 인권적 요구였습니다. 퇴소심사위원회는 이들에 대한 퇴소결정문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근로능력이 있다면 <탈시설화를 목표로> 사회로 복귀시켜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탈시설이란 노숙인이나 장애인들을 당사자의 의지와 욕구에 반해 시설에 묶어 두었던, 그리하여 이른바 “정상 사회”로부터 이들을 배제해왔던 구래의 복지정책에 대한 반성이자 극복입니다. 노숙인 등에게 지역사회로의 복귀라는 복지의 기본적 권리를 돌려주기 위한 정책 방향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시설의 원장은 권리로서 퇴소가 아닌 자신의 위법·부당한 권한행사로서 불법적 강제퇴소를 자행하였습니다. 탈시설이라는 우리 사회의 반성을 자신의 필요에 악용하였던 것입니다.
인권위 진정을 통한 구제 및 법령 개정
5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좌), 기자회견에서 발언중인 김수영 변호사(우)
공감은 강제퇴소 당한 시설 이용인들을 대리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습니다. 시설 원장의 잘못된 권한행사를 시정하고 홈리스 상황에 처한 이들을 위기로부터 구해달라는 내용입니다. 또한 이 같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관계 법령의 정비 필요성도 요구하였습니다. 노숙인 복지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시행규칙에는 퇴소절차에 있어 퇴소 대상자의 참여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퇴소 대상자는 자신의 퇴소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정보도 받을 수 없고 자신의 퇴소를 논의하는 심사위원회가 열린다는 것도 미리 고지 받을 수 없으며 퇴소심사위원회에 참여할 권한도 없습니다. 그저 퇴소가 결정되면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시설의 강제퇴소 결정에 대한 이용인의 이의신청 절차를 포함한 당사자 참여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긴급한 해결에 나서기를 촉구합니다. 시설장의 독재적 권한 행사로 퇴소가 강제되는 일이 없도록, 또한 탈시설이라는 인권의 가치가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보건복지부에게 관계 법령의 개정을 함께 권고하기를 기대합니다.
글_김수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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