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국적의 처제를 성폭행한 형부에게 1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가 선고 되었습니다
지난 3월 14일, 필리핀 국적의 처제를 성폭행한 형부에게 징역 7년형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이 이루어졌습니다. 1심에서 내린 무죄 판단을 뒤집은 판결이었습니다. 공감은 1심 판결 선고 후 제주 지역 이주여성 쉼터로부터 연락을 받고 공동변호인단(김수진, 김차연, 이은혜 변호사)과 함께 피해자지원에 나섰습니다. 항소심 결과로 피해자가 두 번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마음 졸이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언니는 가해자인 한국인 남성과 먼저 혼인 신고를 마치고 혼인동거생활을 하던 중 피해자와 가족을 초청해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언니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버지, 오빠와 함께 한국에 입국하여 언니 집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결혼식 4일 전, 언니는 결혼 축하를 해 주는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해자는 아내가 없는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집에서 자고 있던 처제를 추행하고 강간했습니다.
가해자는 1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와 성관계를 하면서 반항을 억압하거나 항거를 곤란하게 할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성관계를 거부하지도 않아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해자의 명시적인 동의는 없었으나 강간은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가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특히 성폭력 피해 다음 날 아침 피해자가 가해자의 차를 타고 결혼식 답례품을 찾으러 가고, 카페에 가 사진을 찍기도 한 피해자의 행동이 강간 피해 당사자의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답지 않다”는 비난과 책임추궁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전형적인 2차 가해 유형입니다.
이에 대하여 공동변호인단과 검찰은 피해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구조를 요청하지 못한 것은 피해자의 과거 강제추행 경험으로 인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친족에 의해 강간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극도의 공포감과 충격 자체로 항거 불능상태에 처하며, 가족이기 때문에 피해를 알리기 더 어렵다는 점을 주장·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본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가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순간 언니의 결혼 생활이 파탄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해졌습니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몸에 올라타 자신의 몸으로 누르거나, 양손으로 피해자의 두 손을 잡아 제압한 것은 강간을 구성하는 폭행, 협박에 해당한다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피해자의 피해 진술이 구체적이며 일관성이 있고, 결혼식을 앞둔 언니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했다는 상황 설명도 신빙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아가 “성폭력 피해 이후에 주변 가족들에게도 쉽사리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예전과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은 친족관계에서의 성폭력 사건에서 이례적이지 않은 점 등에 비춰 보면 피해자가 가해자와 단둘이 차를 마시고 사진을 찍었다는 점은 범행 사실을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 지원을 위해 이주여성단체들이 모여 꾸린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하여 “한국 사회의 ‘미투(나도 당했다)’ 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는 크다”며 “피해자의 관점을 고려한 법원의 판결이 이주여성 친족성폭력 피해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렸다”고 논평했습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을 상대로 한 성희롱·성폭력 피해로부터 이주여성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이주여성이 처한 취약한 지위는 더욱더 피해를 말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 친족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좀 더 힘을 낼 수 있기를, 그리고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미연에 경종을 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_ 소라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