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 항소심에서도 승소하다
사회권에 관심 있는 여러 변호사[김영주(법무법인 지향), 권영실/정제형(재단법인 동천), 류다솔/서채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송진성(지율S&C), 조영관/황준협(법무법인 덕수)]와 함께 ‘다니엘 블레이크 소송’을 수행해온 공감의 변호사들은 1심 승소 후 항소심에서도 반드시 승소해야 한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었는데요,
[관련글 : ‘나, 다니엘 블레이크’ 조건부 수급자 故최인기님 사건 국가배상 소송 승소]
지난 2020. 10. 29. 수원지방법원 제5민사부가 고 최인기님의 사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원심 판결을 재확인하고 피고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는 다행스런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와 관련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최저생활보장을 담보로 하는 조건 부과가 가지는 빈곤층에 대한 폭력성을 지적하며, 정부와 국회에 대해서는 제도개선을 추진할 것, 그리고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에 대해서는 유족에 대한 공적 사과를 요구하는 공동논평을 발표하여 공유 드립니다.
[공동 논평]
한국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사건, 조건부 수급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재확인한 항소심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 수원지방법원은 2020. 10. 29. 잘못된 근로능력판정과 조건부과로 인해 강제로 취업에 내몰린 결과 지병 악화로 세상을 떠난 고 최인기씨(이하 ‘고인’)의 유족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을 유지하고 피고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하였다(수원지방법원 2020. 10. 29. 선고 2020나51686 판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은 2017. 8. 28.부터 소속 변호사들로 구성된 대리인단을 구성하여 고인의 유족을 지원해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비롯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부당한 근로능력평가의 위법성을 재확인한 항소심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 고인은 버스운전기사로 근무하던 중 심혈관계 질환인 흉복부 대동맥류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에 걸쳐 심장과 연결된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교체하는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후에도 건강과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3년 11월 수원시는 8년간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온 고인에게 갑자기 근로능력이 있다는 판정을 하였다. 그리고 고인을 조건부 수급자로 선정하여 급여 중 60%를 삭감하는 한편, 취업해서 자활해야 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급여가 끊길 수 있음을 통보하였다.
기초생활보장급여로 겨우 최저생활을 유지해온 고인은 수원시가 부과한 조건을 따르기 위해 취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대형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 청소부로 취업한 고인은 일을 시작한 직후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고인은 취업한지 3개월 만에 쓰러졌고, 그로부터 다시 3개월 뒤인 2014년 8월 28일 사망하였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가장 관료적으로 대하는 영국의 복지제도를 비판한 켄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가 예견한 상황이 이역만리 한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조건부 수급자로 선정되면 기관이 제시한 조건을 따라야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자활을 돕기 위해서라지만, 최저생활에 필요한 급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빈곤이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구실로 될 위험이 크고, 고인의 경우처럼 조건부 수급자 선정의 근거가 되는 근로능력판정이 잘못된 경우에는 건강권과 생명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국민연금공단의 근로능력평가, 보장기관(이 사건의 경우 수원시)의 근로능력판정과 조건부수급자 선정과 조건부과, 조건이행 관리의 모든 단계마다 막중한 책임이 따르지만,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은 1심에서 패소하고도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그토록 엄격했던 기관들이 정작 자신들의 과오에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항소심 법원은 제1심판결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근로능력평가에 기초하여 근로능력 있음의 판정을 받았고, 그에 따라 근로능력이 없음에도 일을 하다 망인이 사망에 이르렀음을 인정하였다. 항소심 법원도 제1심판결과 같이 잘못된 근로능력평가와 망인의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사건은 잘못된 근로능력평가, 그리고 본인의 의사나 상황과 무관한 조건부과로 고통받으면서 이의조차 제기할 수 없는 빈곤층의 상황을 대변한다. 항소심 판결은 고인이 어쩔 수 없이 국가가 하라는 대로 따르다 사망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재확인함으로써 부당한 근로능력평가가 빈곤층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라는 것을 명백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자활은 강요될 수 없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1조 역시 자활의 “강요”가 아닌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최저생활보장을 담보로 하는 조건 부과가 가지는 빈곤층에 대한 폭력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6년이 넘도록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제1심판결에 대해 무의미한 항소를 제기하는 등 유족의 고통을 가중한 수원시와 국민연금공단은 지금이라도 고인의 유족에게 진정성 있는 공적 사과를 하여 보호받아야 할 국가의 손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2020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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