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종차별의 현주소를 진단하다 –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 심의 최종견해에 부쳐
금년 5월 예멘난민들의 집단입국은 유럽의 난민위기가 온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며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곧이어 인종혐오적 언동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온오프라인에서 순식간에 확산되어 갔습니다. 특정 종교를 믿고 있거나, 특정 지역 출신의 외국인에 대한 배척과 혐오는 국민의 안전, 여성의 안전이 염려된다는 명목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12월 4일과 5일 제네바에서 진행된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한국 심의에서 지난 5월 이후 인터넷과 대중매체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경멸하고 혐오하는 발언들이 스스럼없이 이루어지고 아무런 규제 없이 난무하는 상황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위원들은 특히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거의 전적으로 저개발국 출신 이주민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정부정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해 10년 가까이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도록 제한하면서 정주할 권리나 가족과 함께 살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결혼이주민이 아무리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았어도 한국인 배우자와 헤어지면 자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등 이주민을 오로지 노동력과 출산, 양육 및 돌봄의 도구로 간주하는 한국의 이주민정책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위원들은 나아가 이주민들을 사회보장 등 사회적 혜택에서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선별적이고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는 한편, 혜택을 부여하는 경우에도 이주민에게 더 비싼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등 차별이 당연시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12월 14일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인종차별철폐협약 이행현황에 관한 심의를 마치고 최종견해를 발표했습니다. 최종견해는 한국정부가 2017년 11월 제출한 보고서, 시민사회의 반박보고서, 그리고 12월 4일과 5일 이틀간 진행된 위원회와 정부대표단간의 질의응답을 종합한 결과 위원회가 내린 결론과 권고를 담은 문서입니다.
1_국문번역본_CERD_최종__대한민_국의_제1_7,_18.pdf
2. (영문원본)_CERD_C_KOR_CO_17-19_33265_E.pdf
정부보고서에서 자아비판을 기대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시민사회 반박보고서는 유엔심의에서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 됩니다. 이에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공감을 비롯한 여러 인권단체와 개인 연구자들은 사무국을 꾸려서 47개 인권단체들의 참여로 시민사회 반박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었습니다. 그에 앞서 7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사무국은 인종차별 현황과 문제를 진단하고 국내적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 보고대회를 개최한 바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원회가 모여서 심의를 진행한 12월 초 제네바를 방문하여 위원들을 직접 만나 한국의 상황과 문제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당시 위원들은 인권단체들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최종견해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이번 심의에서 한국 보고관(rapporteur)을 맡은 게이 맥두걸 위원[1998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배상을 요구하는 유엔 인권소위원회의 맥두걸 보고서(1998년) 작성자]은 심의 마지막 날 다음과 같이 심의를 종합하며 이주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인종차별적 양상을 띠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나의 개인적인 평가는 한국이 지난 심의 때보다 별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국가적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느낌입니다.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나라의 부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공정한 몫으로부터 배제되는 그러한 공식, … 이렇게 한국의 번영을 누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경계는 명확히 인종, 피부색, 국적, 출신 민족 그리고 사회적 계층에 따라 그어져 있습니다. 한국 시민은 혜택을 얻고, 한국시민이 아닌 노동자는 부를 창출하지만 혜택이 돌아가지 않으며, 그들의 임무를 다하면 한국은 아무런 혜택이 없는 그들의 가난한 출신국으로 돌려보냅니다. 나는 예전에 남아공 같은 나라들이 근본적이고 명확하게 부정의한 것을 보았고, 한국은 어느 시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이틀간 한국의 사회경제가 인종차별철폐협약상 의무와 부합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한국이 인종차별철폐협약을 준수함으로써 부정의를 극복하고 장래 모든 이들을 위한 혜택으로 사회를 통합시킬 수 있음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였기를 바랍니다. … 그리고 정부대표단이 한국에 돌아갔을 때 여기에 있는 엔지오들과 연속적으로 상의하기를 희망합니다. 나는 이들이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와 국회의 정책입안자들이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를 잘 새기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글_박영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