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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인권

해외진출 한국기업과 사회적 책임 – 박영아 변호사

                                               2014 해외한국기업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발표회 자료집 바로가기


  2014. 12. 29.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좋은기업센터, 민주노총, 국제민주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법, 공익법센터 어필, 공감 등 여러 시민ㆍ노동단체, 학자, 연구자 등의 연대체인 기업인권네트워크 주최로 필리핀, 방글라데시와 베트남 해외진출 한국기업들의 인권보장 현지실태조사결과 보고회가 열렸다.

 

  베트남의 경우, 1990년대 초반부터 2013년까지 누계로 3천여개에 이르는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약 290억4,148달러를 투자하였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1987년 (주)대우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와 봉제합작투자를 한 것을 시초로 의류산업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필리핀의 경우 한진중공업, 현대자동차, 삼성전기, LG전자, 한화 등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며,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진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베트남과 방글라데시는 연초 한국계 기업에서 발생한 노사분규 과정에서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이 조사를 결정하게 된 주된 이유였고, 필리핀은 한국기업의 투자역사도 길고,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지만 인권침해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어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해외 진출 한국 기업들은 진출한 나라의 법제도, 사회적 환경, 업종에 따라 문제되는 인권침해의 유형이나 모습이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베트남의 경우 노동자들에 대한 법제도적 보호수준은 높았으나,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약 800여건의 파업이 일어났는데, 이는 대만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대부분의 경우 노동법 미준수가 파업의 원인이었다.

 

  반면 방글라데시는 해고 사유에 따라 1-3개월치의 임금만 주면 해고가 가능하여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가 특히 열악했다. 특히 근로감독관이나 노동법원의 절대적 부족으로 근로감독을 통한 법집행이나 사법적 구제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효성 있게 보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에서 오래된 투자역사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 기업의 경우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가 많이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는 등 현지에서의 한국기업들에 대한 전반적 이미지부터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장비 미지급, 그리고 심지어 해외 바이어 감사기간 동안에만 안전장비를 지급하는 행태 등이 고발되었다. 이번 실태조사로 특히 대외경제협력기금 지원이나 공기업 투자형태로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진행되는 다목적 댐 건설 등 대규모 개발사업 추진과정에서 환경파괴와 강제이주를 비롯한 인권침해 논란이 발생하고 있음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방글라데시, 필리핀과 베트남의 사회적, 문화적, 법적, 그리고 역사적 환경이 다르고, 한국으로부터의 투자역사나 진출업종도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난 문제도 있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한국기업 대부분이 극도의 반노조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리핀의 경우 한국기업들은 노조결성 자체를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적법하게 결성된 노조를 협상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며 탄압한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어 왔으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예로, 한국계 기업인 SH는 2013년 여름 주문량 감소를 이유로 폐업을 예고하고, 퇴직금 지급 조건으로 사표를 요구하였는데, 사표수리 후 며칠만에 공장을 재가동하면서 992명 중 100명만 재고용하여 노조 와해 목적으로 위장폐업을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노동자들의 열악한 법적 지위로 인해 노조결성 및 활동 자체가 어렵다. 특히 수출가공공단(Export Processing Zone)에서는 노동조합 결성이 아예 금지되어 있고, 대신 노동자들을 대표할 조직으로 노동자복지협회라는 조직이 허용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계 기업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지 않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나, 방글라데시 의류업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주)영원무역의 계열사들은 그러한 노동자복지협회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노동자단체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원무역의 현지 자회사에서 2010년에 이어 2014년에도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노사분규가 발생하여 평화롭게 농성 중이던 20세 여공이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아 숨지고, 노동자 십수명이 다쳤다. 영원무역은 위와 같은 사태의 원인으로 ‘의사소통’ 문제를 지목해왔는데, 노동자와의 협상이 가능한 구도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영원무역의 위와 같은 해명이 실로 역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필리핀 모두에서 최저임금이 실제 생활임금에 미치지 못하여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연장근무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 3국 모두 낮은 임금이 주된 투자요인 중 하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전반적 임금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최저생계비에 미치지도 못하는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 특히 필리핀의 경우 일을 주지 않고 연장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노조탄압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법정근로시간이 주 48시간이지만,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초과근무의 강제성도 문제였다. 베트남에서는 긴 노동시간이 파업의 원인이 될 정도로 한국기업의 과도한 초과근무가 문제되고 있었다.

 

  자본의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노사관계 등 자본의 우월적 지위로 인한 역학관계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또한 국제적 양상을 띠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영토에 묶여 있는 기존의 국내법 체계는 위와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고, 관련 국제규범 또한 구속력과 집행력 측면에서 완전하지 않아 법적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기업인권네트워크의 이번 실태조사는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한국기업들의 해외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권문제들을 국내적으로 알리고, 그 과정에서 각국의 현지 시민ㆍ노동단체 및 활동가와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여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14. 12. 29. 있었던 보고대회는 짧은 홍보기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로 발표회장은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가득 메워졌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활동이 현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글_박영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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